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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선생 Sep 01. 2018

#1. 설레는 만남과 시작

파라과이 한국어교육학과 학생들과의 첫만남

학생들과 처음 만났던 2015년, 그때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2학년, 3학년이었던 학생들은 졸업을 하기도 했고, 휴학을 하고 한국을 다녀와서 지금은 고학년이 되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던 학생들도 훌쩍 자랐고, 나 역시 이제 30대가 되었다.


파라과이 교사 생활의 첫 해

힘든 것들이 많은 첫해였다. 파라과이 생활 2년 차였던 2015년, 지난 1년 동안 많은 것들에 이미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교사 생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한국어 교육학과는 3년 차에 들어서고 있었다. 교사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내게 이곳의 학교 시스템은 낯설었고, 학생들도 낯설었다. 사랑스러운 학생들이었지만, 가끔씩은 이 학생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난감해졌다. 부족한 스페인어가 걱정이었다. 제대로 된 교재가 없었는데, 수업들은 모두 전문적인 수업들이었고(한국의 한국어 교육 석사 프로그램을 모델로 만든 커리큘럼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어로 전달하면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를 수업들이었다. 매일매일 저녁 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했다. (교재가 없어서 그때 교육자료로 만들었던 PPT자료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없는, 그저 그런 일에 상처받고 울었던 날들이 아련하다.  


 그때가 '새로운 시작'이었기에 좋았던 점들도 물론 많이 있다. 신생학과인 만큼 학생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가족 같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 선생님이 학생들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조촐한 종강파티를 하기도 하고 개강파티를 하기도 했다. (이제는 학생들이 많아져, 이런 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다ㅎㅎ) 시작하는 학과였기에 흰 도화지와 같았다. 내가 원하고 계획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학과의 성장과 함께 나의 성장도 이뤘다. 경쟁도 치열하고 쟁쟁한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는 감히 오를 수 없는 무대를 누비며 많은 것에 의연해졌고, 어깨에 얹어지는 무거운 무게를 버티기 위해 더 튼튼해졌다. 나 역시 교사로서는 흰 도화지 같았기에 학과와 나는 서로의 도화지에 마음껏 색을 채워나갔던 것 같다. 

2015년 1학기를 마치며 동료 선생님 집에서 함께 했던 종강파티 (3학년/2학년/1학년 학생들과)


우리의 시작은 이름을 새기는 일 

 내 마음속 흰 도화지에 가장 먼저 새겼던 것은 학생들의 이름이었다. 첫 만남은 늘 어색하다. 첫 해의 첫날은 더욱 어색했다.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도 낯설었다. 성도 두 개, 이름도 두 개인 학생들의 이름은 출석을 부를 때마다 난감했다. 이제는 두 개의 성과 두 개의 이름 중 첫 번째 성과 이름을 쓴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늘 다른 조합(첫 번째 성, 두 번째 이름을 쓰는 경우라든지)이 있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이름을 쓰는지 늘 확인한다. 발음하기 힘든 이름도 있어서, 발음을 잘못하면 어찌나 미안했던지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강세가 붙은 이름은 (부르는 건 상관없지만) 쓸 때는 쓸 때마다 어느 모음 위에 강세표시가 있었는지 헷갈린다. 첫 해 첫날은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본인의 이름을 쓰도록 했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빨리 외우려고 그 종이를 들게 하여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ㅎㅎ 지금은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학기 초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진행하는 것은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한글을 모르고 오는 학생들도 많기에, 스페인어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쓰는지 칠판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모두 적는다. 그리고 학생들이 칠판을 보고 본인이 이름표를 만들어 책상 앞에 붙이는 활동도 많이 한다. 그 후 매 수업 출석을 부를 때 학생들의 이름을 한글로 칠판에 적는다. 얼굴을 보고, 입으로 부르고, 손으로 쓰면 기억도 더 잘 되지 않을까. 그다음 시간부터는 출석부를 보지 않고,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기억하려 노력하면서, 칠판에 이름을 적는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계를 기억하는 일이기에, 학기 초에는 꽤나 열심히 이것을 반복한다. 학생들도 낯선 한글로 쓰인 본인의 이름을 여러 번 보면서 조금씩 한글과 가까워지리라. 

출석을 확인할 때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칠판에 쓴다


2018년 또다시 찾아온 '시작' 

 많은 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어떤 이름은 남고, 어떤 이름들은 떠나며, 4년의 해가 지나 올해도 입학식이 있었다. 이제는 선배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도 준비한다. 파라과이의 신입생 환영회는 한국만큼이나 요란하다. 의대나 치대의 경우 아주 요란하다. (아마도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머리를 자르고 옷을 찢고 기름을 붓고 기차놀이를 하며 캠퍼스를 누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학과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지는 않지만, 작년부터 나름 입학이라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두기 위해 행사를 시작했다. 고학년 선배 학생들이 준비하는데, 풍선과 물감을 가져와서 신입생들의 머리에 풍선을 달고 물감으로 재미난 그림들을 얼굴에 그린다. 그리고 기차를 만들어 학교 캠퍼스를 돈다. 올해에는 다 같이 <곰 세 마리>를 부르며 학교를 돌았다. 학과 선생님들이 작은 축하상(샌드위치와 간식들로 이루어진)을  마련하고 다 같이 모여 선후배가 자기소개를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기를 기도한다.  

선배 학생들의 정성스런 터치(?)
기차놀이를 하며 캠퍼스를 도는 중
선배 학생에게 <곰 세마리>를 열심히 배우는 중
2018년 신입생 환영회

여기는 입시 시험이 없이 첫 학기가 입시 학기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첫 학기의 성적이 학과의 입학을 결정한다. 그때 성적이 낮으면 입학이 되지 않는다. 첫 학기를 통과하면 7월에 입학을 하며 지난 첫 학기가 1학년 1학기로 인정이 된다. 어찌 보면 본인이 학과와 맞는지 고민해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인 듯하다. 이 입시 과정을 겪고 통과한 학생들은 2학기 때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지각과 결석이 잦아지며 출석률이 떨어지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만두게 되어 나중에는 입학식 때 몇 명이 있었는지 믿기 어려운 숫자의 학생들이 남는다. 우리 학과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이 문제를 겪는다. 대학 교육이 중요하지 않은 분위기이고, 이 곳의 사람들은 핑계가 많기도 하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기에 힘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딱뜨리기도 하며 학생들이 떠난다. 


 한국어 교육학과를 선택해줘서 고맙다. 정작 졸업 후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를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고맙다. 쉽게 떠나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남아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이 정말 기특하다. 아침에 출근하기 힘든 날마다 그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학교에 간다. 나는 학생들이 단순히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을 떠나, 이들의 삶에 이 배움들이 조금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학과를 찾아준 올해의 신입생들에게도, 

재학생들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입학할 모든 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학과>의 배움이 이 학생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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