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중개사에 휘둘리지 말자
어떤 종목이든 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투자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4년 11월 말부터 빌딩 투자 모드에 들어간 후, 7개의 빌딩 법인과 여러 로컬 부동산을 다니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아파트와 달리 빌딩 법인 중개사와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왜냐면 나의 투자금, 보유 자산 및 직업, 투자 목적, 향후 계획 등 현재 내가 처한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인 대표 혹은 중개사들을 만날 때마다 "전 당신을 중개사로만 보지 않고 투자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수뿐 아니라 향후 매도 및 추가 매수까지 오랜 기간 같이할 파트너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역시 난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세상을 모른다.
칩, 댄 히스 형제가 쓴 의사결정 지침서인데 저자들은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흔히 빠지는 네 가지 함정을 지적한다.
1. 편협한 사고틀
2. 확증 편향
3. 단기 감정
4. 과신
난 이 네 가지 함정에 빠진 채 성수동 좁은 골목의 주택 건물에 한 달 이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건물 리모델링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실제 가치보다는 성수동이라는 이름에만 신념을 가졌으며, 무리한 자금계획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 투자금 시나리오 계산을 수 백번 했다. 한두 번 해보고 빠듯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 투자는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인지 편향에 빠졌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고 아찔하기도 하다. 만약 내가 그 성수동 건물을 계약했다면, 대출이 안 나와서 계약금을 날렸을 수도 있고 공사비가 모자라서 회사 주식이나 다른 부동산을 팔았을 수도 있다. 혹은 건축 후 공실 상태의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예상보다 낮은 임대료로 공사비 대비 건물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게 됐을 수도 있다.
이 물건을 소개해 준 중개사는 25년 1월 초에 나에게 "이번 주를 넘기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 아무리 온라인에 공개되지 않은 물건이라도 나 외에 20~30명은 보고 있을 텐데 왜 안 팔릴까? 나와 비슷하게 계산을 한 것이고 건물 자체의 문제와 향후 리스크까지 다 보였기에 아무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어떻게 중개사의 압박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인지 편향에 빠진 상태였지만 반대쪽에서는 다행히 나를 잡아주는 것도 있었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간다. 다른 사람이 매수한다면 이 물건은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부동산엔 다 임자가 있다."
그리고 조금씩 더 경험을 하면서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빌딩 부동산 중개사의 대부분은 결국 계약을 성사시켜 수수료를 얻는 게 목적이지, 내가 생각했던 투자 파트너는 이상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건 나의 성격과 내가 일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난 IT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개발하거나 구축한 서비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난 그 사람이 만족했으면 좋겠고, 작은 피드백까지 모두 개선시켜 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나도 기쁘고 내 마음이 후련하다. 그런데 계약 수수료로 먹고사는 중개인이 계약 전부터 최종 임대세팅까지 다 챙겨주는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도 드문 게 당연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연락하고 있는 빌딩 법인 대표님들이 있지만 내가 전에도 적었던 것처럼 빌딩 중개사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아래 내용을 항상 유념하면 좋다.
1. 지나치게 긍정적인 자금계획과 엑싯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사람
-> 매크로 분석부터 금리, 투자금 시나리오, 매도 계획까지 모두 내가 직접 설계해야 한다.
2. 부동산 사이클 경험이 부족하고 현장도 잘 모르는 사람
-> 요즘 유명 빌딩 법인은 채용할 때 나이제한까지 두는데 그래서 경력이 부족하고 이론으로만 고객을 상대하는 중개사도 있다. 심지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예상 임대료도 매도인에게 전화로 물어봐서 브리핑한다.
3. 투자 근거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
-> 중개사 자신이 추천한 물건인데도 투자해야 할 근거를 말하지 못한다. 그저 좋은 것 같다, 이 정도면 싸다, 괜찮은 것 같다는 말만 한다.
4. 다른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빨리 결정하라고 압박
-> 좋은 물건은 상승장 하락장 관계없이 바로바로 계약된다. 압박 영업하는 중개사는 자신의 설득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5. 고객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
-> 내가 빌딩 투자하는 목적과 원하는 모델을 명확히 설명해도 무시하는 중개사. 내 의견에 반박만 하고 대안 마련이나 설득을 하지 못한다.
6. 아무 물건이나 계속 주는 전략
-> 그냥 닥치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계속 준다. 이 회사와는 다시는 일하기 싫다.
나만의 투자철학 즉, 원칙과 기준이 있어서 결정은 내가 내더라도 그 생각을 검증해 줄 사람들이 있으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부동산 투자에선 나도 초보이기 때문에, 멘토의 조언이 없었다면 난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며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었을 것이다. 위 성수동 물건에 깊게 빠져 세 번이나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나를 잡아주었던 멘토, 심지어 내가 PM(디벨로퍼)까지 의뢰했지만 그것도 거절하면서 내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이 부의 50% 이상을 결정한다고 한다. 최종 투자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지만, 나의 투자 근거를 검증해 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 Decisive(후회 없음) 책에 나오는, 결정을 방해하는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1. 선택지를 넓혀라 (Widen Your Options)
2. 가정을 검증하라 (Reality-Test Your Assumptions)
3. 결정과 거리를 두라 (Attain Distance Before Deciding)
4. 틀릴 때를 대비하라 (Prepare to Be Wrong)
문제는 이 네 가지를 내가 지금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조언그룹이 꼭 필요하다.
이제 나는 성수동 물건을 포기했고, WRAP 프로세스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나니 현실 파악이 됐다. 나는 원하는 지역의 빌딩을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사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한 시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힘도 빠지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각이 복잡할 땐 다 버리고 본질로 돌아간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내재가치만 바라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단순해지니 오히려 결정하기 쉬워졌다.
(다음 편에 결국 빌딩을 매수하게 된 과정과 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