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에서 꼬마빌딩 주인까지, 현실적인 재테크 기록
당연히 잔고 0원은 아니었지만,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16년 전, 추억의 모 게임회사를 퇴사한 후 1년 동안 중남미 배낭여행을 하며 모았던 모든 돈을 썼고,
한국 복귀 후 넥슨에 취업했는데, 소심한 성격과 연봉 추이를 파악하지 못한 실수로
신입 개발자와 큰 차이 안 나는 연봉을 받게 되었다.
양재시민의 숲에서 무료로 장소를 대여해 야외 결혼식을 했는데,
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기에
실내 결혼식장에서 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었을 것 같다.
거실 없는 방 2개짜리 초소형 아파트 월세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통장 잔고는 거의 0.
미리 말해둬야겠다. 2022년 여름 전까진 난 자본주의, 돈, 투자에 대해 전혀 몰랐다.
우리는 월세를 내면서도 합산 월급의 60~70%는 저축을 했다.
가장 큰 소비는 국내 및 해외여행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적립식 펀드도 했지만, 아무런 지식 없이 했기에
1년 만에 그만두었고 큰 수익은 실현하지 못했다.
그래도 절약과 저축은 계속 실천했고,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와 평범한 IT 개발자의 연봉으론
아파트 가격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당시 서울 아파트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붙는 걸 확인했고,
그나마 더 저렴하게 투자할 수 있는 경기도 아파트 청약을 했는데,
일부러 경쟁률 낮은 타입을 골랐고 운 좋게 당첨됐다.
1년 후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분양권 투자로 번 돈을 합쳐서
서울의 괜찮은 위치의 싸게 나온 아파트 청약에 도전했고,
턱걸이 수준으로 붙었다.
만약 앞으로 저 당시와 비슷한 시즌이 온다면
분양권 수십 개에 투자할 것 같다:)
우리 집을 정말 사랑했다. 집에 냄새 밸까 봐 담배도 끊었다.
나는 그때 넥슨 퇴사 후 혼자 스타트업 업계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몇 년마다 이직하면서 연봉을 올렸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절약하고 저축하면서,
모은 돈으로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다녔다.
가끔 외식을 하고 술을 마셨다.
고양이 두 마리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회사 수준은 떨어졌지만 최고의 팀이 있었던
암호화폐 거래소 재직 시절에도 난 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암호화폐 투자도 안 하고 저축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해서는 안 될
대출 상환도 일부 했다.
이 시간이 멈춰 있을 것만 같았는데 코로나가 왔다.
제로금리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처음으로 미국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지금이 외국계 회사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크드인을 통해 연락이 왔고, 엉터리 영어 실력이었지만
당시 그 회사와 팀은 한국 사업에 나 같은 사람이 필요했기에 나를 뽑았다.
커리어 처음으로 한국 대기업들의 초갑질을 받으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내가 이룬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1년 후 회사에서 주는 주식도 받기 시작했고,
이 자산시장과 행복이 영원할 것 같았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