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에서 꼬마빌딩 주인까지, 현실적인 재테크 기록
(1부에 이어)
경제와 투자,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도 없이
무지성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를 했다.
진득하지 못하게 포트폴리오를 바꿔가며 사고팔기를 했다.
이건 리밸런싱도 아니고,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시절에는 이런 풋내기도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이 벌진 못했다.
21년 말, 그냥 이유나 근거도 없이 느낌이 안 좋았다.
보유하고 있던 미국 주식을 모두 팔았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 주가가 하필 최고점을 찍고 있어서,
어떤 날은 RSU로 받은 주식 소득세를 5천만 원 넘게 내야 했다.
내가 투자했던 주식은 모두 매도하면서,
회사에서 받은 주식은 단 한 주도 팔지 않고 거액의 세금을 냈다.
이런 인지부조화가 있을까.
1년 전부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22년 봄 결국 큰 일을 겪게 된다.
내 인생의 뿌리를 흔들었고, 그 이후 난 깨달았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는 것을.
회사에서 IT 프로그램 개발이나 할 줄 알았지,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이 무엇인지, 금융과 투자가 무엇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일주일에 2~3권 이상 책을 읽고,
수십 개의 유튜브, 블로그를 구독하면서
업무가 끝난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매일 공부했다.
지금까지의 세월을 돌이켜보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성장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재밌게 공부했다.
지금은 결국 책은 고전으로 가게 됐고,
상당수의 유튜브, 블로그는 구독 해지한 상태다.
공부하고 성장할수록 사짜와 사기꾼이 쉽게 보이니까.
그래도 코로나 때 습관이 된 집에서 술 마시기는 계속했다.
금요일, 토요일은 와인과 위스키를 즐겼다.
그러던 22년 가을 어느 금요일 밤, TV로 유튜브를 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난 요즘 술을 거의 줄였더니 정말 좋더라."라고 말했다.
우린 서로에 대한 간섭을 전혀 하지 않기에 그건 강요가 아니라,
어쩌면 내 건강과 생활 패턴 개선을 위해서 한 조언이었다.
내가 왜 술을 끊을 생각을 안 했지?
돈도 아낄 겸 한 달에 두 번만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애매하고 어설픈 습관은 더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아예 끊기로 결정한다.
"그래, 나중에 와인, 싱글몰트보다 더 즐거운 게 많아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하면서 한 잔씩 즐기자."
술을 안 마시니 주말에도 평일처럼 똑같이 일찍 일어나서
하루 종일 공부할 수 있었다.
식단 관리도 더 철저히 하기 시작했고, 운동과 명상도 매일 했다.
몸과 마음이 더 쾌적해졌고, 놀랍게도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셀프 최면에 빠진 거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성장을 위한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술도 잊게 만든 것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큰돈은 주식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주식 투자는 공부한 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컸다.
대신 코인과 부동산은 큰 마켓 사이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비트코인 2만~2만 5천 달러 수준부터
나는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아내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모았다.
이때도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었다.
개발자로서 비트코인 백서에 감동한 사람인데,
속도만 내세우고 버그 많은 솔라나나 제도권의 리플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투자 목록에서 제외했다.
무슨 투자를 이렇게 하나 :)
결국 24년도에는 찰스 호스킨슨은 관종이고 정치성이 짙다는 판단에,
트럼프 당선을 예상하고 ADA에도 투자할 정도로 투자 스타일이 변했다.
우리 부부의 코인 투자 역시 소액으로 진행했지만,
비트코인 10만 달러 부근에서 이더리움을 제외하고 대부분 매도하여
각각 억대의 수익을 실현했다.
부동산 투자는 2연속 헛짓거리를 했다.
우리는 첫 집에서 평생 살 것처럼 생각했다.
사람은 소득이 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부동산 공부를 얼마 안 하고 너무 급하게,
혼자 망상을 그리다가 빌라 한 채를 사버렸다.
지금은 다행히 재개발을 한창 준비 중이고,
가격이 몇억 올랐지만 지금 내 기준으론 최악의 투자인 셈이다.
그래도 큰 실수를 해도 입지 좋은 곳에 투자하면
결국 돈은 벌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더 좋은 기회비용을 날린 게 크지만, 그래도 나중에 방법을 찾고
전략을 세워 꼬마빌딩 투자까지 성공했다.
부동산 폭락 이후 반등장이 오면서 집을 팔고 수익을 실현하고 싶었다.
투자자들이 하는 것처럼 투자와 실거주를 분리하는 게 쉬워 보였다.
우리 집은 팔기 쉬운 물건은 아니었는데, 운 좋게 처음에 집을 본 부부가 덜컥 사버렸다.
집이 너무 깨끗하고 예쁘다고. 내가 정말 아꼈던 집이다.
그때만 해도 난 거액의 대출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집을 매도한 후 서울의 뉴타운 재개발 물건을 매수한다.
재개발을 공부하긴 했지만, 그 구역의 속사정은 깊게 알아보지 못한 채
큰 실수를 범했다. 이곳은 인생 골로 갈 수 있는 투자처였다.
조합원이 된 후 총회에 참석하면서 인간의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
아파트 1채에서 빌라 2채로 포트폴리오가 엉망이 됐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의 핵심은 레버리지 활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목돈이 묶이게 되는 재개발 투자는 정말 안 좋은 투자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년 소득이 조금씩 늘면서 대출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져 갔다.
나중엔 대출금 중 일부를 떼어 놓고 그 돈으로 이자를 갚는 방법도 알게 됐지만, 어쨌든
본업의 현금흐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의 범위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유료 강의나 컨설팅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게 좋았지만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에 투자로 성공하거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러다가 23년 겨울, 우연히 지금의 멘토를 만나게 된다.
귀인이란,
내가 처음 듣는 얘기와 전략을 말해준다.
와, 이거 뭐지? 이런 게 있었어?
내 인식의 경계를 넓혀준다.
그런데 내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귀인이 도와줘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어느 단계까지는 올라가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귀인의 재능 기부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고 배려를 해야 한다.
이런 인간적인 끌림과 매력이 있어야 멘토가 멘티에게
더 진실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빌딩 투자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목표를 크게 세우면 거기에 맞춰 내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