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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TY May 10. 2024

딸의 이름을 '단아'로 지은 이야기

단단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를.

1.

내 딸은 0살, 8개월이다.

오래전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계획대로 가졌고, 건강하게 태어났고, 또 아픈 곳 하나 없이 벌써부터 명랑한 아기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고민하던 작년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 힘든 한 해였다. 특히 내 남편에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생겼는데, 타인의 결정에 의해 자신의 장래가 좌지우지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였으니 그가 느꼈을 불안감에 나도 덩달아 심리 상담을 수차례 받을 지경이었다.


그 시기, 남편이 너무나 측은하면서도, 때로는 바람 앞의 너울대는 촛불마냥 휘청이는 그를 보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하던 적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시련 앞에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2.

나의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과 떠난 국내여행에서 마지막 날 난데없이 쓰러지시면서 6~7세 수준의 아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미 구순을 바라보던 때에 그리 되셨기 때문에 오래 사시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병원에서는 간접적으로 말했지만 평소에 운동과 건강관리를 잘한 덕이었을까, 그 후

8년이나 더 사셨다.


그 8년은 우리 엄마의 50대였다.


퇴원 직후 차마 자신의 아버지를 요양원에 두고 나올 수 없었던 엄마는 스스로 형제들 앞에서 손을 들었고, 그렇게 엄마의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나에게도 치매노인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쓰면 다음은 흔히 '간병의 고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지  시간은 오히려 '행복'이었다. 어릴 때 이렇다 할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나에게 '진짜 할아버지'가 생긴 느낌. 할아버지와 뽀뽀도 하고 하루종일 끌어안고, 산책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일찍이 집에 돌아왔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뭐라도 더 해주고 싶었고, 불편함을 감내하는 사위인 아빠에게도 감사함을 느꼈다. 거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롯이 '가족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나의 부모가 시련 앞에서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가를 몸소 체득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뭐 이미 이렇게 된 걸 어떡해?'라는 듯한 표정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차분히 해나갔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데 환자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요양보호사 수업을 들었고, 자격증을 따면 정부 지원금을 얼마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해서 이듬해 자격증을 땄다. 아빠는 군말 없이 엄마의 결정에 따라주며, 단지 엄마의 다른 형제들에게 '대신 자주 방문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막내 삼촌과 매주 토요일 만두를 빚거나 야구를 보거나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가질 수 없는 시간들이.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를 모시지 않는 다른 형제들을 괜시리 흉을 볼 수도, 해외여행 한 번 갈 수 없게 된 엄마의 50대 시절을 한탄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엄마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이 상황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동네에서 '가장 귀여운 아버지'로 사랑받으셨다.


나는 그 경험으로 명백한 불행이더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내가 불행이라 여기지 않으면 그냥 우리네 삶 뿐이며, 오히려 좋은 점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가는 것은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나의 부모의 말 한마디 없는 가르침이었다.



3.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손흥민의 과거 인터뷰 중 한 문장은 오랫동안 나의 인스타그램 소개글이었다. 그가 유벤투스를 상대로 패배하여 챔피언스리그를 탈락한 상황이었다.


"It hurts, but that's a football and we need to go again."

(뼈 아픕니다. 하지만 그것이 축구이고 우리는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4.

각설하고.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를,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손흥민을 닮은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

그게 이어져 기어코 내 아이 이름에 '단'자를 넣었다.


나의 부모라고 처음부터 단단했을 리 없다. 오히려 어릴 때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엄마나 아빠를 마주한 적도 기억 한편에 있다. 그러니 나도 이제부터 단단해지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언제고 기어코 오고야 마는 시련 앞에서 무너지기보다는 잠시 구부러질지언정 또 얻는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갖기를. 그러고 나면 뛰고 날게 되었을 때도 시련이 두렵지 않을 테니까.


내 딸이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려면 나와 나의 남편부터 단단해져야 한다. 이따금씩 둘이 침대에 누워 의연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거, 말은 쉽지만 참으로 어렵다.


..서로에게 다짐은 오늘도 했다.


그래서 '단아'는, 나의 딸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상이자, 우리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단아야,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든든하고 단단한 엄마가 될게. 나의 엄마가 그리하였듯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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