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H에 감사하며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3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의 언젠가,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었다.
인턴이 하고 싶었다. 남들이 다 한다는 그 인턴. ‘회사’라는 조직에 가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는 하루의 느낌은 어떨까? 방학이 엄청난 변화를 꿈꾸기에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턴이라는 것이, ‘금턴’이라고 불리는 요즘 시대에 별 스펙도 능력도 없는 나를 뽑아줄 곳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어느 게임 회사 지원서를 작성했지만 서류에서부터 떨어졌다.) 인턴의 길이 아직 멀게만 느껴진 나는 계절학기나 들어야겠다, 하고 계절학기 수업을 신청했다.(그 와중에 경쟁률이 높은 두 수업 수강신청에 성공해서 여름방학을 헛보내지는 않겠구나, 하며 약간의 안심을 했다)
그러던 중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스타트업 인턴십’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화 드림플러스 또는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팜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중 우리 학교와 협약을 맺은 회사를 대상으로 6주 간 근무할 인턴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거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나에게, 인턴을 하고 싶은 나에게 스타트업 인턴십은 딱 맞는 선택인 듯했다.
고민 끝에 신청해 놓은 계절학기 수업을 취소하고, 스타트업 인턴십을 대신 신청했다.
물론, 신청을 했다고 해서 신청 인원을 모두 인턴으로 뽑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뭔가 기운이 빠지더라) 자기소개서, 경력, 희망 분야(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등), 희망 기업 리스트(4순위까지)를 작성한 서류를 제출하면, 면접을 보기를 희망하는 기업에 한해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꽤 많았는데, 회사에서 선발하고자 하는 분야와 회사가 몸담고 있는 분야를 동시에 고려했다. 아이템이 흥미로워도, 선발 분야가 개발 쪽이면 나는 내 희망 기업 리스트로 넣을 수 없었다. 반대로 선발 분야가 내 관심사와 맞아도 아이템이 내 흥미를 끌지 않으면 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회사여야 일의 능률도 더 오를 거라는 나름의 논리로.
선물처럼 다가 온 면접의 기회
정말 다행히도 두 회사에서 면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바로 다음 날이 면접이라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시험기간인 것이 문제긴 했지만, 과 행사가 있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너무나 바쁜 시기였지만 면접 준비는 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었고, 마케팅,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지 등을 중얼중얼 되새겼다.
면접은 화상면접으로 진행되었다. 대면 면접을 진행한 회사들도 있었지만, 내가 면접 보기로 한 두 회사는 모두 화상면접으로 진행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행아웃을 써보았다.
화상면접이라 대면 면접보다는 긴장감이 덜 하겠지만 그래도 어엿한 ‘회사’의 면접이 처음인 나로서는 긴장이 안 될 수 없었다. 무슨 질문을 하실지 감이 오면서도 안 왔다.
무사히 두 회사의 면접이 끝났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 H보다 다른 회사 F의 면접 분위기가 좀 더 좋았다. 비슷한 면접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F회사 면접에서 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었고, 면접을 보신 분께서 굉장히 많은 공감을 해 주셨다. 회사 H 면접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의 의견을 많이 말하지 못한 느낌이었다.(그래서 추가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시기도 했다) 내 느낌상으로 만약에 오퍼를 주신다면 회사 H보다 F가 될 확률이 좀 더 높다고 느껴졌다.
면접 결과는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채용 프로세스가 또 있을까…
'결과'는 언제나 긴장되는 일
심적으로 평소와는 약간 다른 수업 시간이었다. 긴장을 하면 졸린 스타일인데, 수업을 들으면서 졸기도 하고 다리도 떨면서 혼자 요란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내 메일함을 몇 번을 새로고침 했는지 모르겠다.
수업이 다 끝나고 얼마 후에 반가운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인턴십을 주관하고 있는) 기업가센터였다. 두 회사로부터 모두 오퍼를 받았다는 연락이었다. 놀랄 틈도 없이 두 회사 중에 바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속도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참 난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5분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린다고 하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5분을 보냈다. 언제부터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갔는지.. 충분한 고민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원래 회사 H가 내가 선택한 기업들 중 1순위 회사였다. 그런데 면접을 볼 때는 회사 F 쪽과의 분위기에 이 쪽으로 조금 더 끌렸었고, 회사 H는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의 회사 F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 H로부터도 오퍼를 받고 나니 다시 흔들리고 있는 나였다.
결론적으로, 내가 원했던 1순위 회사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처음 희망 기업 순위를 정할 때 1순위로 이 회사를 생각한 것이 이유 없는 결정도 아니었기에, 내 결정을 믿어 보기로 했다. 막상 선택하고 나서 회사 F를 못 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좋은 분께서 잘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게 된 인턴 생활. 짧다면 짧을, 길다면 길 6주간의 여정을 기록해보려 한다. 누군가는 고작 6주 하는 것이 무슨 인턴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더없이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고, 또 그렇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회사 H는 무엇을 하는 스타트업인지, 왜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해보기로 결심했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앞으로 찬찬히 풀어가 보겠다.
인턴 생활을 가감 없이 기록할 수 있게 격려해주신 회사 H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