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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첫 출근

편한 듯 편하지 않은, 하지만 새롭고 즐거운.

by INGDI 잉디

7월의 첫날. 드디어 첫 출근날이 밝았다.


고생의 연속이었던 1학기를 마치고, 첫 출근 전까지 나름대로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회사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도 하고, 엑셀도 좀 배워보고, 포토샵도 좀 해보고…하지만 역시나 생각일 뿐인 계획이었다. 심지어 여행을 갔다가 출근 바로 전 날 돌아오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도 거의 못하고 첫 출근 날이 오고야 말았다.


편한 캐주얼 복장으로 오라고 미리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회사 생활 첫날인데 신경 쓰고 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검은 슬랙스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과하지 않게.


이상하게 들뜬 상태로 사무실이 있는 역삼역으로 향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짧은 건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회사에 도착해보니, 새로 근무하는 분이 나 말고도 두 분 더 계셨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나뿐인가 했는데 다행이었다(?). 가자 마자 자리를 배정받고,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어떤 공간에 ‘내 자리’라는 것이 생겼다는 게 참 새롭고 신기했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의 복장은 생각보다 더 자유로웠다. 더 차려 입고 갔으면 오히려 더 민망했을 것 같다.


이 회사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영어로 표현 가능한 닉네임. 나는 큰 고민 없이 브런치 작가명으로도 쓰고 있는 ‘잉디’로 정했다.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이 처음엔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사내에서 쓰고 있는 다양한 툴(tool)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내 회사 계정이 만들어졌고, 여러 툴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업무용 툴을 쓰고 있기에 이 회사도 그러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더 다양한 툴을 쓰고 있었다.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1. Slack(슬랙)

슬랙이라는 툴은 알고는 있었지만 써본 적은 없었다. 회사에서 슬랙은 ‘커뮤니케이션’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Contents, Onboarding, General, Random, Share, Marketers 등 여러 개의 채널을 만들어 성격에 맞는 채널에서 그에 맞는 대화를 하는 용도였다. 예를 들어 General 채널에서는 모든 팀원들에게 공유해야 할 일정을 이야기하고, Contents 채널에서는 콘텐츠 제작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방식이었다. 주제에 맞는 채팅을 위한 툴인 것이다.

채널 일부. 실제로 매우 다양하다.

2. Notion(노션)

노션은 개인적으로도 쓰고 있는 툴이다.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지인이 노션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기에도 괜찮다고 해서 쓰고 있었다. 회사에서 노션은 ‘문서 기록 및 보관용’으로 쓰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ex. 사내 제도), 분야별(마케팅, 개발, 영업 등) 기록 등 웬만한 정보들은 모두 이 곳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노션에 기록된 회사의 다양한 정보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KakaoTalk_20190714_031028075.jpg 사내 제도들에 대한 노션 일부.

3. Asana(아사나)

아사나는 회사에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툴이라고 한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툴이다. 이 툴은 ‘개인별 task 지정용’으로 쓰고 있었다. 각자 task를 직접 지정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task를 지정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나의 task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그날그날 어떤 task를 수행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Task를 지정할 때 시간으로 측정되는 포인트를 매기면, 각자 task를 얼마나 수행했는지 포인트로 확인 가능하다(예를 들어 어떤 task를 수행하는 데 1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되면 1.0pt를 매기고, task를 완료하면 수행한 task에 1.0pt가 쌓인다.)


4. Harvest(하베스트)

아사나에서 지정한 task들은 내가 얼마나 시간을 쏟을 건지 포인트로 매길 수 있다. 그리고 그 task를 시작함과 동시에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harvest가 해준다. 즉, Harvest가 task를 수행함에 있어 걸린 시간을 측정해주는 타이머 역할인 것이다. 내가 이해한 건 여기까지인데, 그 외의 기능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5. Google Drive(구글 드라이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니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노션과는 별도로 다양한 이미지나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회사는 각 툴 별로 최적화된 기능들을 뽑아서 다양하게 쓰고 있었다. 회사도 처음부터 이 모든 툴들을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툴을 사용해보면서 회사에 가장 최적화된 툴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막막하기도 했지만, 한 회사에서 이렇게 다양한 툴을 배울 수 있어 더 좋고 재밌었다.

다양한 툴들의 습격으로 약간 막막하던 시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시간 만세!


사실 어색하지 않을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점심시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편했다. 회사 사람들 간 분위기가 편하다 보니 내가 말을 적게 하더라도 굳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수많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사의 일원으로 밥을 먹고 있다는 느낌이 새로웠다. 인상적인 첫 식사였다.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앞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앱 내 콘텐츠 제작’이다.


퇴근 전까지 업무용 툴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내가 할 일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퇴근 직전에 회사 대표이신 J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대표님도 편하게.. 닉네임으로 부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인터넷 기사로만 뵀던 대표님인데… 하루 만에 이렇게 상황이 달라진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J와의 대화를 끝으로 첫 퇴근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새롭고, 재밌었던 첫 출근이었다.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이 운영되고 있는 방식은 새로웠다. 분위기도 (비교 대상은 없지만) 확실히 편하다.


그렇다고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럴 것 같은데,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매우 뚜렷하다. 적은 인원 속에서 모두 서로 다른, 꼭 필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다. 모든 팀원들이 각자의 역할만 해내는 것만으로도 바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더라도 많은 시간을 나를 돕는 데 투자하기 힘들다. 백 퍼센트 이해하는 부분이다.


내 입장에서 아주 잠깐 생각해보면,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알기가 힘들다. 앉아서 뭔가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맞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주변에서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일의 진행도 느려진다. 다른 분들은 바쁘게 일을 하시는데, 나만 여유롭게 있는 것 같아 편한 분위기 속에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첫날이고, 무엇보다 첫날 해야 할 일은 '적응'이기에 오늘 나의 모습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업무용 툴에 익숙해지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첫날부터 일을 바쁘게 하는 건 욕심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차근차근 배워가면 되니까.


결론적으로 참 만족스러웠던 첫 출근 날이었다. 새로움과 익숙하지 않음의 연속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재밌었다. '일하기 싫다'가 아니라 '빨리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 성공이다.


아,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회사 소개를 못했는데, 다음 편에서 반드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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