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히든트랙’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16년 겨울,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타트업답게 자유로운 출퇴근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야근이나 초과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재직 기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며, 현재 15명 정도 규모의 회사다.
팀원들 모두 본인의 업무를 페이스에 맞게,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출퇴근하는 것이나 각자의 업무에 대해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다. 회사 문화는 앞으로 글을 써가면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올 것 같으니, 이 정도로만 쓰겠다.
히든트랙은 ‘린더’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린더는 관심 있는 일정을 모두 받아 볼 수 있는 일정 구독 서비스다. 쉽게 말하면 덕후 앱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축구팀 A를 좋아한다면, A팀의 캘린더로 경기 일정을 몽땅 받아볼 수 있다(단, A팀 캘린더를 구독해야 한다).
현재 린더에는 셀럽, 스포츠, 쇼핑, 문화, 교육, 금융, 학교 등 다양한 일정들을 제공 중이고, 앞으로 더 많은 일정들을 제공할 계획이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놓치기 쉬운 일정을 받아볼 수 있는 일정 구독 서비스이고, 린더의 고객사 입장(제휴사)에서는 일정을 매개로 마케팅 채널이 될 수 있다.
내가 구독한 캘린더의 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린더엔 매우 다양한 분야의 일정들이 등록되어 있다.
내가 이 서비스에 끌린 이유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정들을 제공한다’는 린더의 가치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정으로 점철된 우리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있는 수많은 일정들에 대한 알림 역할을 해주는 린더와 히든트랙이 새롭고 따뜻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분야든 “그건 언젠데?”라고 한 번이라도 물어본 경험이 있다면, 한 번 깔아보시길. 내가 관심 있는 캘린더가 없다? 히든트랙에 요구하시길.
다시 돌아와서. 히든트랙은 격주 화요일, 오전 9시에 전체 회의가 있다. 자유로운 출퇴근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2주에 한 번은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근하여 회의를 진행한다. 마침 나의 출근 둘째 날이 격주 회의 날이어서, 나도 어김없이 9시에 출근했다.
모두 자유로운 출근 시간에 익숙하셔서 그런지, 오전 9시 출근은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인 듯했다. 하지만 이럼으로써 자율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대표님 J의 의도도 있었다.
격주 회의에서는 모든 팀원들이 알아야 할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 지난 2주 간 업무 진행 상황, 앞으로 2주의 계획, 그 외 논의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J가 투자 현황을 모두 공유해주셨고, 유닛별 업무 진행 상황을 들었고, CTO를 맡고 계신 P께서 ‘Sprint’라는 용어로 앞으로 2주 동안의 업무 계획을 압축적으로 설명하시기도 했다.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들을 듣고 있자니 신기하면서도, 새로우면서도, 앞으로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내가 여태까지 속해 있었던 공동체는 사회의 일부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회의 말미에 나를 포함해서 새로 들어오신 분들의 짧은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 약 1시간 정도 소요된 격주 회의가 종료되었다.
회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오늘 점심 식사는 새로 추가된 인원들을 맞이하여 단체 식사로 진행되었다. 우르르 몰려가서 왁자지껄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회사의 분위기가 한껏 더 좋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이제 본격적인 업무 타임이었다. 이전 편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히든트랙에서 나의 일은 린더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다. 린더에는 캘린더 탭도 있지만 ‘탐색하기’라는 탭도 존재하는데, 이 영역에는 일정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가 있다. 새로운 캘린더가 오픈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던지, 특별한 일정을 추천한다던지 등 여러 콘텐츠를 탐색하기 영역에 담는다.
오후 동안 이 탐색하기 영역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작업을 해보았다. 내가 판단하기에 ‘탐색하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활성화를 시켜야 할지, 어떤 주제를 사람들이 좋아할지 다방면으로 고민해보았다.
어제보다 나만의 시간이 더 많았다(물론 아무도 나에게 도움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다. 중간중간 내 사수인 R께서 업무에 필요한 회사용 사이트나 브레인스토밍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리소스들을 소개해 주셨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든 아무도 터치하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인턴 이틀 차에도 고스란히 느낀 스타트업의 특징이다. 사실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업무에 숙련된 프로라면 괜찮겠지만 나같이 초보라면, 그것도 회사 생활이 처음인 왕초보라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래도 익숙해지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고 해서 대답을 안 해주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어느 분이든 매우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이것저것 고민해보되 모르는 것이 생기면 주저 없이 질문하기로 했다.
내가 고민한 흔적들: 콘텐츠의 다양성과 배포 빈도를 높이기 위해 daily/weekly/monthly로 나누어 제작 주기를 고정시키는 것은 어떨까? 어떤 콘텐츠를 사람들이 좋아할까? 어떤 일정이 추가되면 좋을까? 기존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등등..
추가적으로 모르는 부분은 질문으로 적어 남겨놓았다.
혼자 앉아서 고민하는 시간이 느리게만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기존의 방향성은 어땠는지, 개선점은 무엇일지, 다른 앱들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등을 다양한 리소스들을 참고해서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내가 고민한 방향성이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추후 받을 피드백이 기대가 되기도 했다.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엔 아직 이르지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배워갈 새로운 것들이 더 기대되는 이틀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