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콘텐츠가 배포되었다.
린더 내의 ‘탐색하기’ 탭에 들어갈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했다.
1. 브레인스토밍_어떤 주제의 일정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까?
2. 주제가 잡혔다면, 일정 탐색_기존 캘린더에 있던 일정들을 기반으로 만들 경우 없어도 되는 과정이지만, 새로운 일정의 경우 이 과정이 필요하다.
3. 일정 추가 요청_콘텐츠 내에 캘린더 링크를 걸기 때문에, 일정 추가 요청을 미리 드려서 콘텐츠를 본 사용자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콘텐츠 초안 작성
5. 이미지 작업_내가 선별한 이미지를 디자이너 j에게 전달해드리면, j께서 포맷에 맞게 이미지 작업을 뚝딱 해 주신다.
6. 콘텐츠 텍스트 수정 후 작업된 이미지와 합치기
7. 콘텐츠 작성 툴에 작업물을 옮기고, 어플 베타 버전에 미리 테스트.
8. 테스트 후, 이상 없으면 실제 어플에 라이브로 배포.
내 첫 콘텐츠는 모든 8가지 과정이 오래 걸렸다. 주제 브레인스토밍을 이틀 이상 했고, 일정 탐색을 몇 시간 동안 했으며, 일정 추가 요청드리는 방법을 몰라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고, 초안 작성하는 데도 한 세월이 걸렸으며, 이미지 작업 요청도 굉장히 비효율적이었고, 탐색하기 작성 툴은 익숙하지 않아 버벅거렸다.
콘텐츠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당연한 일인데. 이 때는 콘텐츠를 빨리 올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올릴게요!” 한 마디와, R의 끄덕거림과 함께 첫 콘텐츠가 업로드되었다.
기분이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묘했다. 몇 십만 사용자의 어플에 내가 쓴 콘텐츠가 들어가 있다니. 괜히 흐뭇하고 뿌듯해서 린더에 몇 번이나 들어가서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페이지 조회수를 확인할 수 없어서 어느 정도의 사용자가 내 콘텐츠를 읽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디즈니 캘린더 구독자 수가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으로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구독자가 한 자리 수일 때부터 봐 왔는데 어느덧 구독자 400명을 넘겼다.)
콘텐츠 제작의 이상과 현실
린더는 공식 SNS 계정이 있긴 하지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는 않았다. 페이스북은 광고용으로 어느 정도 쓰고 계시긴 했지만 인스타그램의 경우 팔로워 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게시물도 어쩌다 올라오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SNS 페이지가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마침 R께서 내가 앞으로 만들 탐색하기의 내용을 SNS 맞춤형 콘텐츠로 바꾸어 어플+SNS 세트로 올려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앞으로 탐색하기 콘텐츠도 꾸준히 올라갈 테니, 이것을 잘 활용하면 죽어 있는 듯한 SNS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색하기 콘텐츠가 줄글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것을 간단한 카드 뉴스 형식으로 바꾸어 올리는 방식인 것이다.
첫 디즈니 콘텐츠가 올라갔으니, 이 내용을 살려 SNS 콘텐츠화를 시작해보았다.
카드 뉴스는 워낙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는 콘텐츠 형식이라 대부분 알겠지만, 어느 정도 디자인이 잡혀야 텍스트 양이나 이미지를 구상해볼 수 있다. 카드 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텍스트 길이가 길 때와 짧을 때 디자인이 꽤 달라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만들지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아서 일단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꽤 많은 레퍼런스들을 살펴보니, 각 회사별로 특징을 잡아 만들어내고 있었다.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포커스를 둔 회사, 텍스트에 집중한 회사,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는 회사 등 정말 다양했다. 확실한 건 각 회사마다 고유한 느낌과 디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들은 많았는데, 막상 내가 직접 해보려 하니 뭔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회사 예시를 참고는 하되 너무 따라하기는 싫었고, 우리 회사만의 느낌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PPT로 이것저것 배치도 바꿔보면서 시도는 해보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멘붕이 왔다.
나는 ‘1일 1식’이라는 SNS 페이지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의 지식’이라는 모토 아래 매일 다른 주제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페이지이다. 카드 뉴스를 1주일에 한 개씩 만들어냈다. 내가 이 얘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면, 1일 1식 콘텐츠를 만들 때는 내가 주제만 정하면 결과물이 뚝딱 만들어진다. 주제 정하는 것이 가끔 막막할 때가 있었지만 그 이외에 콘텐츠 제작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 경험대로라면 여기서도 뚝딱 만들어 내야 되는데..
그런데 분명히 디즈니 콘텐츠는 내용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었다. 내용은 있으니,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PPT에 내가 봐도 정말 엉망 그 자체인 결과물을 들고 디자이너 j에게 들고 갔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뭐가 나을까요..?”
그런데 j가 이것저것 작업하시더니 정말 기가 막힌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분명 같은 내용인데,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j가 심폐소생술로 죽어가는 내 콘텐츠를 살리신 느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디자인만 너무 신경 쓴 것에 문제가 있었다. 전문 디자이너가 있는데 디자인 전문가도 아닌 내가 디자인을 논하려 했으니…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기획자’인 나는, 디자인보다 콘텐츠 안에 들어갈 내용, 어떻게 디자인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을 디자이너에게 전달해주면 작품은 거기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1일 1식 카드 뉴스가 뚝딱 만들어지는 이유는, 1일 1식 페이지의 톤 앤 매너와 디자인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j가 기가 막힌 결과물을 만들어내자 비로소 긴장이 풀리면서, 또 하나 새롭고도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협업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 얘기는 앞으로 계속 나올 것 같다.
출근 1주일 만에 내 콘텐츠가 린더에 반영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얼떨떨하다. 린더를 사용하고 있는 누군가는 내 콘텐츠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짜릿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 콘텐츠를 시작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고, 린더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첫 콘텐츠가 배포되니 이 욕망이 더 커졌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기대되고, 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