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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플라이 러넌의 여운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by 초코파이

언젠가 회사에서 거래처에 보낼 꽃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꽃바구니 안에 있던 버터플라이 러넌을 보며 ‘여리여리하니 참 예쁘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장미와 안개꽃이 익숙했던 그 시절, 새로운 꽃들이 하나둘 등장하던 때였다.


오늘은 그 버터플라이 러넌을 앙금 플라워로 만들어 보는 날이었다.

낮은 꽃에 해당하는 러넌은 볼륨보다는 꽃잎 하나하나의 크기와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했다.

수술 쪽으로 올라가면서 피어나는 작은 꽃잎들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내면 비로소 생동감이 살아난다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생소한 꽃이라 처음엔 긴장했지만, 의외로 장미나 카네이션보다 짜는 과정이 나에게는 더 쉽게 느껴졌다.

러넌만으로는 다소 단조로워 보일 수 있어, 봉오리와 활짝 핀 장미 몇 송이를 더해 어렌지 해봤다.

선생님께서 인디핑크로 조색해 주신 장미의 빈티지한 색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언젠가 생화를 보고 똑같은 색을 조색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거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완성된 케이크는 마치 작은 꽃밭 같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은은한 색의 꽃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음 수업을 기약하며 공방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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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일부러 Y대 정류장을 택했다.

이곳은 나에게 묘한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맑은 캠퍼스 공기, 생기 넘치는 학생들, 그리고 그곳에 잠시 머무는 시간들이 나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언젠가 우리 아들도 이곳에서 걸을 날이 오겠지, 그런 상상까지 하며 미소 짓게 되는 곳이다.



정류장에 앉아 러넌 케이크 상자를 소중히 품고 버스를 기다렸다.

예상 도착 시간이 12분.

상자를 옆자리에 슬며시 내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잠깐의 햇살을 즐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철퍼덕.”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케이크 상자가 시멘트 바닥에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속으로 울부짖는 나의 소리가 들렸다. 으아, 으아... 만든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극을 맞이한 꽃들.

찌그러진 케이크를 바라보며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날 만든 러넌 케이크는 그렇게 사진 한 장을 끝으로 나와 이별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크지만, 그 순간 손끝에서 피어났던 꽃밭 같은 행복과 뿌듯함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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