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케이크 위에 내려앉은 월든의 자연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반가운 만남. 독서모임.
2월의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었다.
사실, 평상시의 나였다면 아마 손을 대지 않았을 책이었지만 이렇게 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영역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책을 들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 철학적 깊이는 과한 게 아니라 딱 내게 어울릴 수 있는,
혹은 나를 살짝 들었다 놓을 정도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들고, 여행지 어딘가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읽는 모습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 집에서는 아들과 남편의 끊임없는 대화와 웃음소리가 공명하며 분위기를 완벽하게 깨뜨렸다.
책 몇 장 넘기다 포기하고 다시 덮어야 했던 그 장면... 어떤 의미에서는 책 보다 내 가족이 더 철학적인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대출과 반납을 반복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에 남는 한두 구절을 가슴에 품기로 했다.
'숲의 소리들'이라는 챕터는 특히 내게 오래 머물렀다.
월 말이 되면 샌드벚나무는 짧은 줄기 주위에 원통형의 산형꽃 차례로 피어난 섬세한 꽃들로 길 양편을 장식했다.
가을이 되면 이 나무의 줄기는 꽤 큼직한 보기 좋은 열매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방사선 모양의 화환처럼 사방으로 휘어졌다.
나는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열매를 하나 따 먹어보았으나 맛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옻나무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나지막한 토담을 뚦고 위로 뻗쳐 나와 집 주위에 무성했는데, 첫해에 벌써 5,6피트나 되는 높이로 자랐다.
옻나무의 넓고 깃털 모양을 한 열대성 잎사귀는 이국적이면서도 보기가 좋았다. 그것의 커다란 새싹은 늦은 봄에 죽은 것 같아 보이던 마른 줄기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면서 마치 마술처럼 푸르고 여린 직경 1인치가량의 아름다운 가지들로 자라났다. 그 가지들이 너무 빨리 자라서 마디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어떤 때 내가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싱싱하고 여린 가지가 자신의 무게에 겨워 부러지면서 갑자기 부채처럼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월든, p164>
퇴사 후 시작했던 아침 산책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 30분, 북서울 꿈의 숲을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꽃봉오리가 열리고 새싹이 돋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를 천천히 회복시키던 그 시간들.
그 숲은 언제나 변하지만 한결같이 내게 속삭임을 건넸다.
독서 모임에 함께 나누어 먹으려 가져가는 것이 있다.
바로바로 내가 만든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 :)
아마추어이지만 실력도 쌓고 함께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 내어한 일이다.
'월든' 표지를 보며 앙금플라워는 그린 컬러 컨셉으로 결정했다.
깊고 차분한 초록빛, 마치 자연의 고요와 사색을 담아내는 색깔 말이다.
머릿속으로 색을 상상하고 실제로 조색을 해 보면 늘 그렇듯 "이게 완벽한 색은 아니야"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나는 그 아쉬움을 다음번 더 나아질 가능성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의 이 만남은 내 삶 속 따뜻한 여백과 같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짧은 시간이 주는 위로는 내 일상에 잔잔한 온기를 더해 준다.
나는 이 순간들이 내 삶에 찾아왔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 따뜻한 시간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나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