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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걱정, 걱정

부모의 사랑

by 문영

"엄마 별일 없죠?"

"어, 퇴근해?"

"아뇨, 지금 볼일 보러 나왔다가 다시 학교 들어가는 중. 오늘 상담 있어서 늦게 끝나요."

"차 잘 나가?"

"응 괜찮아."

"무섭지 않아?"

"응 차 상태 좋아요."

"워낙 오래된 차라 불안해서."

"괜찮다니까."

"그래도 오래된 차라 무섭지 않아?"

"어쩌라고! 괜찮다니까! 그럼 방법이 없는데 뭐 어떡해? 차 갖고 다니지 마? 아니 왜 자꾸 물어요. 괜찮다니까."

"아니 걱정이 되니까…."

"괜찮다 그럼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자꾸 물어요? 괜찮다고. 저녁 드시라고. 나 끊을게."

"그래…. 알았어."

끊는데 아직 안 끊어진 엄마의 핸드폰에서 긴 한숨이 흘러온다. 짜증을 내지 않으려 했다. 애교 있는 싹싹한 딸은 못 될지언정 짜증만은 말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의미 없는 걱정이 나를 할퀴었고 나는 결국 버럭 성질을 내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폭풍같이 세월이 흘러가는 중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채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사는 중이었다. 엄마랑 통화할 짬도 없어서, 너무 무심한 딸인 거 같아, 드디어 오늘, 잠깐, 혼자 있는 시간에 전화를 드렸던 것이다.


부모는 걱정 인형인가 보다. 나도 내 아이의 모든 걸 걱정한다. 학교에서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지, 추우면 어떡하지, 아프면 어떡하지, 다치면 어떡하지, 우울하면 어떡하지, 이상한 거 보면 어떡하지, 미디어 중독이면 어떡하지…. 이 어지러운 혼돈의 시대 어느 상황에서 아이를 생각하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때도 있다. 그러나 내 엄마와의 차이점은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낙 소심한 성격으로 오만 걱정을 끌어안고 있지만, 그 걱정이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 내가 내색하는 순간 아이에게도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어쩌면 경험으로 너무 잘 아는지도 모르겠다.

걱정을 일으키는 딸이었다. 걸핏하면 턱이 빠지고 아프고 다치고, 공부도 못했고 말도 안 들었던 유난한 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그렇게 유난하지 않았다. 턱이 빠지기도 했고 잔병치레가 많기도 했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었고 성적이 곤두박질치긴 했지만, 학교에 안 간다고 버티거나 일탈을 벌인 적도 없었다. 사춘기를 호되게 겪으며 나의 성향과 너무도 다른 부모님과 끊임없이 갈등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유난한 딸일 텐데 왜 내가 유난한 사람이어야 하나. 성장기 내내 억울했다.

엄마의 긴 한숨이 오래오래 귓가에 남았다. 퇴근하고 주차를 마치고 나서 다시 전화를 드려 볼까 시계를 보고 나도 전화 대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짜증 내서 미안해요.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마흔에 운전을 시작했고 남편이 쓰던 차를 물려받았다. 워낙 꼼꼼하고 철저한 남편의 차라 차는 연식은 있어도 모든 것의 상태가 좋다. 지금도 나는 운전만 할 뿐 차량 점검과 관리는 남편이 해 준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연식만을 따지며 걱정이시다. 사실 아빠 차의 연식도 내 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을 말씀드려도 딸내미는 걱정이라고 하신다.

결혼하기 전엔 결혼을 걱정하시더니 결혼을 하니까 아이를 걱정하시고 아이를 낳으니까 일을 놓을까 봐 걱정하시고 일을 하니까 운전 못 한다고 뭐라 하시고 운전을 하니까 사고가 날까, 차가 고장 날까 걱정이시다.

아직도 내가 뭐가 되기를, 내 삶이 풍요롭기를 그렇게 바라고 기대하고 걱정하신다. 부모의 걱정이 부모의 기대치에 못 미침으로 인해 나오는 거라는 생각은 꼬인 나의 너무 나간 생각일까.

걱정도 기대도 사랑에 기반을 둔다. 내가 비록 버럭 대긴 했지만, 표현을 못 하고 있지만, 걱정도 기대도 감사하다. 그래 주시는 부모님이 지금 계심에 감사하다. 표현이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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