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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세상의 시간

by 문영

"아직도 통화 중이야? 이모도 바빠. 꿍이야, 그만 끊어."

"아니야~ 이모 괜찮댔어. 그치 이모?"


둘은 뭐가 좋은지 삼십 분째 통화 중이다. 나는 분주히 저녁 준비 중이었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직 안 끊었어?"


저녁 준비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꿍이는 깔깔거리며 영상 통화 중이었다. 나도 꿍이 옆에 누워서 함께했다. 무엇이 좋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 애기까지 보면서 통화하며 참 많이 웃었고 화면이 예뻐서 캡처를 했었다.


"저녁 먹었어?"

"아니, 애아빠 오면 친정 가려고."

"이렇게 눈이 오는데?"

"응, 엄마 보고 싶어서 가려고."

"야 애기 감기 걸려. 길도 미끄럽고. 나중에 가지 그래?"

"ㅎㅎ 다 이렇게 눈 오는데 가냐고 하는데 우리 딸도 눈 좋아하고 차 타고 가는데 뭐~"

"에효, 조심해. 우린 저녁 먹을게."

"응 끊어~"

"지인이도 안녕~ 꿍이도 인사~"


꿍이도 손을 연신 흔들었다. 지인이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때 지인이는 네 살, 꿍이는 11살이었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인터넷 포털을 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애기는 어떡하나? 말도 안 돼.


별일이 다 있다 생각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러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며 기사를 잊었다. 퇴근 후, 어제 통화한 친구의 언니에게서 인스타 DM이 왔다.


[영아, 나 00인데 전화 좀 해 줄래? 네 번호가 없어서. 내 번호는 000 0000 0000이야.]


무슨 일이지?


"네, 언니 저 영이에요."

"아, 그래. 있잖아... 영이야."

"네~ 무슨 일이세요?"

"지금.. 림이랑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네? 저 어제 림이랑 통화했는데요?"

"어, 그래. 근데.. 림이가.. 새벽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네????"

"새벽에, 천막을 치우다가, 제부랑 같이... 림이랑 제부 핸드폰이 불에 다 타서...."

"네??? 아니 그 기사가 림 얘기였어요?"

"어... 기사 봤구나."

"말도 안 돼.....지인이는...."

"지인이는 지금 할머니댁에 있어. 림이가 자기 떠날 걸 알았는지... 그 눈을 뚫고 엄마한테 왔다 갔다지 뭐니..."

"제가 그잖아도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간다고 했었어요. 말도 안 돼."


어안이 벙벙했다. 하루아침에 안녕이라더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했는데 내 친구가 별일의 주인공이었다. 온몸이 후들거렸다. 방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언니는 내게 친구들에게 부고를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림이는 핸드폰 안의 모든 기록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엄마?"

"어, 꿍이야."

"왜 그래? 림이 이모 무슨 일 있어?"

"들었어? 아... 아니야."

"무슨 일이야?"

"아니야. 림이 이모 가족이 사고를 당했대. 그런데 엄마도 친한 사람이야."

"엄마 울어?"

"어, 괜찮아. 이모도 지금 많이 힘들어한대."


차마... 림이가 사고의 주인공임을 말할 수 없었다. 어제 그렇게 깔깔거리고 한 시간을 수다 떨었던, 너무도 좋아하는 이모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하기 힘들었다.





다음 날, 토요일이었음에도 8학년 학생들의 인물사 발표로 출근을 했어야 했다. 우리 학교는 8학년 마침을 앞두고 프로젝트를 하는데 상급 교사들이 아이들 관찰을 위해 꼭 참여하게 되어 있다.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눈은 퉁퉁 부었고 악몽에 시달렸으며 여기저기 연락을 해야 했다. 오후 늦게 아이들 발표가 끝난 후, 브리핑 자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갔다. 출근을 위해 집 밖을 나와 혼자가 되니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눈이 내렸다. 대책 없이 눈을 맞으며 울며 걸었다. 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모자와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줬다.

전철에서 내려서, 내 메시지에 놀란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는 또 펑펑 울었다.


"어떡해, 어떡해 림이가 없어. 어떡해. 말도 안 돼. 어떡해, 장례식도 못한대. 부검이 먼저래."


역에서 학교까지 5km를 걸었다. 울며 통화하며. 진정이 되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얼굴이 퉁퉁 부은 나를 보며 동료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별일 아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사실을 말하는 순간 또 눈물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때의 8학년 아이들이 지금 졸업을 앞둔 12학년이다. 오늘은 24년도 8학년 아이들의 인물사 발표였다. 꿍이는 15살, 지인이는 8살이 되었다. 림이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지인이를 입학시키겠다고 했었다. 이 학교도 림이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다. 나의 합격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꿍이에게는 림이 이모가 사정이 생겨 이민을 갔고 연락이 안 될 거라고밖에 말하지 못했다.


림이는 내게 가족이었다. 우리 오빠의 가짜 친동생. 우리는 한 동네에서 한 교회를 다니며 함께 컸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도 나를 살뜰히 챙겨주던 친구였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더더욱 친자매처럼 나와 함께해 주었었다.


새벽부터 온몸이 아팠다. 근육통과 기침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서 오늘도 인물사 발표를 보러 가지 못했다. 눈이 오락가락하는 밖을 보며, 흐릿한 날씨에서 문득 림이가 떠올랐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그녀가 떠난 지 벌써 사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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