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안건이 없어 오늘 회의 쉽니다.]
나는 죽을 거 같은데 특별한 안건이 없단다.
[ 안건 있습니다. 저 00반 수업 못합니다.]
욱해서 팀장님께 톡을 보냈다가 바로 삭제했다. 언제나 '욱'이 문제다.
어수선한 마음을 부여잡고 수업 안을 보는데 팀장님께서 들어오신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시죠?"
"아뇨, 괜찮아요."
"있으신 거 같은데..."
"아니에요. 지웠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죄송해요."
"일이 있으시군요. 뭐든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나중에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수업 시작 십 분 전이다. 여기서 눈물이 터지면 망한다. 그런데 속절없이 차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 나는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다시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정말 그만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이 계속되는 지금, 나는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의 말도 안 되는 교육청 민원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었고 나는 학부모와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서로의 입장 차이. 나도 내 아이 일이었으면 저랬을까. 내 아이가 학교에서 혼이 나면 나도 저렇게 행동했을까. 백 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그러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내 아이가 그 아이가 아니어서일 것이다. 나는 그 부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이렇게 서로 억울한데 수업은 해야 한다. 내색할 수 없다. 그 반에 들어가서 그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도 이를 악물었다. 그반 아이들은 어디까지 어떻게 알고 있을까.
수업을 마치고 왔더니 책상 위에 커피가 놓여 있다. 아침에 나를 살핀 팀장님이 놓으신 것이다.
[힘내세요.]
네 글자가 울컥하게 한다.
[제가 요즘 감정이 널을 뛰어서 아침에 수업 전이라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커피 감사합니다.]
[센스 없이 수업 전에 찾아갔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수업을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교사가 수업 못하면 그만둬야죠. 그래서 메시지 지웠습니다.]
[.. 어려운 수업 해 주셔서 감사해요. 언제든 못하시겠으면 다시 말씀해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하루는 병가를 냈다. 학교 근무 이래 처음이었다. 수업이 많은 날, 대책 없는 결근. 전날 밤 열한 시까지 학부모 모임을 했다. 해명의 자리였다. 해명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터무니없는 소문은 양산되고 있었고 입을 열어야만 했다. 나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터무니없지 않았다. 나의 해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한 편이었고 나는 그들과의 간극도 좁히지 못했다.
"저 내일 병가 내겠습니다. "
퇴근 직전에 함께했던 선생님께 통보했다. 멍하니 운전을 했고 집에 와서 오래 울었다. 다음 날을 온종일 누워서 보냈다. 앞으로가 그려지지 않는다.
카톡, 카톡, 카톡.
힘내라는 동료 선생님들의 메시지와 응원의 선물이 쏟아졌다.
사람 사이에는 지켜져야 하는 선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선을 넘었다. 교사로서 권위를 세워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교사로서 존중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래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신뢰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지나가긴 한단 말입니까."
"그럼요, 흘러갑니다."
"우리는 단단해지겠죠."
앞으로가 그려지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혼자였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표를 내겠다고 큰소리쳤었다. 이번 학기로 끝내겠다고. 더는 못 있겠다고. 공염불이었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나도 끝낼 수 없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 글자도 쓸 수 없던 시간들이었다.
어지러운 감정을 여전히 정리하지 못했다.
점입가경처럼 아직 절정이 되지 못한 상황은 지금도 끝도 없이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도 마음을 막을 수 없다.
동료에 대한 마음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도 커져만 간다.
이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 눈물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