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법원에서 우편물을 받았다.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복통이 일었다. 운전하는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내 이름 석자가 쓰인 법원 우편물은 두터움을 자랑하며 위풍이 당당했다.
우편물을 뜯고 내용물을 보고 기가 찼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에 분노가 일었고 이것을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왜 자꾸 소명해야 하는가.
개인이 법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를 이번에 깨달았다. 법이 무섭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화가 나는 건 그것을 대응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명해야 하는데 소명에도 돈이 필요하다. 내가 쓴 답변서는 단순 감정에 호소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볼품이 없다. 변호사께서 써 주신 답변서는 법 조항과 어우러진, 너무도 훌륭한 글이었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글에서 사람의 인품이 묻어난다. 여태껏 상대방 변호사의 의견서만 받아왔었다(그래봤자 두 번에 지나지 않지만). 변호사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상대를 비아냥거리고 겁주고 깎아내리는 듯한 말투. 이렇게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선임하여 받은 답변서는 그렇지 않았다. 말투에 존중과 점잖음이 있었다. 방어권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답변서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느꼈다. 우리나라 법조인의 기품을 봐서일 것이다.
월화수목금토일 출근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가. 정신과 육체의 피로와 긴장이 당장 해야 할 일에 우선 묻혀 있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면 아마 몸의 증상으로 발현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많은 질문을 한다. 역량을 뛰어넘는 직업이긴 했다. 그래서 언제나 허덕였고 애써 왔다. 그 애씀이, 이 직업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 초 예민함이, 극도의 소심함이 고개를 들어 이 일을 바라본다. 혼자가 아니고 든든한 한 편이 있지만 상대가 학생 가정이라는 것에 속은 헤집어지고 쓰라린다.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보며 상대 학생을 생각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 내용 자체에 어떤 충격을 받을까. 쥐가 고양이를 생각하는 꼴이다. 지금 위태로운 건 '나'이지 그 '학생'이 아닐진대 내용이 상대에 공개된다는 사실에 걱정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에 맞춰 법원에 들러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 자체의 긴장이 잠을 설치게 했다. 새벽 세 시 반, 결국 털고 일어났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는다. 기나긴 하루가 될 것이다.
나의 생일, 엄청난 날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