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날아온 작품
희유가 오 년 만에 찾은 학교는 활기찼었다. 매일 출근길이 설렜다. 희유는 역시 교사가 천직이었다며,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에 황송함을 느끼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이 천근만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교감은 여차하면 희유를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 남 부장님은 교감을 설득했을까. 희유는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박 선생, 오늘 학폭위 결재 올리고 결재 나는 대로 운영위원님들께 전화해서 일정 알려줘요. 다음 주 화요일 7교시로 결재 올려. 시간표 봤더니 선생님 수업 없더라고.”
“네, 알겠습니다.”
긴장감이 감돈다. 남 부장에게 교감 선생님 의견을 물으려다 희유는 말았다. 자기가 대화를 들은 걸 남 부장은 모르지. 희유는 공강 시간 틈틈이 서류를 만들었다. 희유가 공문을 발송하고 수업에 간 사이 남 부장은 공문을 꼼꼼히 살펴봤다. 희유의 문장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형식도 정확히 갖춘 글을 보면서 그래, 이렇게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자. 다시 다짐했다. 남 부장이 희유의 공문을 승인하자마자 윗 단계인 교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남 부장을 불렀다.
“그냥 넘어가라는 이야기 못 알아들었어? 이의제기하면 진짜 박 선생은 해직이야.”
“이의 제기가 들어오면 대응하면 됩니다. 박 선생 잘못한 거 없습니다. 교사가 아이를 가르친 게 무슨 잘못입니까. 여기서 멈추면 그게 더 이상해요. 신고자는 무슨 생각을 할 거며 아이들이 학교를 뭘로 보겠습니까?”
“절차상에 실수가 있었잖아. 윤석이 엄마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 정도 실수는 실수도 아니죠. 교육청으로 넘기는 것도 아니고 학교장 자체 해결이에요. 윤석이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 애가 뭘 배울 수 있겠어? 저 엄마 아래선 학교에서 생기부 기록 하나 건져 가는 게 전부야.”
“필요하다면 생기부에도 기록해야죠. 우리는 교사예요. 끝까지 가르칠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요.”
“몰라, 남 부장 마음대로 해.”
교감이 짜증스럽게 말을 뱉으며 승인한다. 남 부장은 자리로 와서 직접 허윤석 모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일정을 설명했다. 허윤석 모는 별다른 답 없이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 변호사로부터 의견서가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폭력 심의 위원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남 부장도 교직 생활 삼십 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너무도 두툼한 페이퍼 묶음이 위용을 자랑한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 박희유는 올해 채용된 계약직 교사로서, 절차에 대한 인지 없이 일을 맡아 진행하였습니다. 입맛이 없어 조용한 곳을 찾아 내려간 학생의 “교실이 시끄럽다”라는 말 한마디에 반 상황에 대한 진술서를 쓰게 하더니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학생들을 불러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압박하며 역시 강제로 진술서를 쓰게 했습니다. 이는 교사라는 권위를 남용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사 박희유는 보호자의 동의는커녕 보호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미성년자인 허윤석을 불러다가 원하는 진술이 나올 때까지 진술을 강요하며 감금하였습니다. …… 허윤석과 허윤석 부모는 당연히 받아야 할 소명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랩이 학교폭력으로 둔갑한 것에 매우 당황스러움과 정신적 충격을 느끼고 있습니다. …… 특히 허윤석 군은 평소 지각 한 번 하지 않은 매우 성실한 학생으로서 자기가 왜 학교폭력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함에 급격히 말 수가 줄었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이런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남 부장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변호사 의견서에 등장한 희유는 쌍팔 연도 고문관이었다. 마침 쉬는 시간인 것을 확인한 남 부장은 2학년 6반으로 가서 희유가 조사했다던 아이들을 불렀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너희들, 학생부 와서 진술할 때 희유샘의 강압이 있었니?”
“네? 아니요.”
“알고 있다고 윽박질렀어?”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지 윽박지르지 않았어요.”
“희유샘이 무슨 강압을 줘요. 아니에요.”
“윤석이에게 진술한 거 말했지?”
“어차피 알게 될 거라…. 무서워서….”
“알겠다, 들어가 봐.”
분명 아이들은 윤석에게 과장해서 전했을 것이고 그것을 또 변호사가 포장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학생을 감싸는 변호사에게 혐오를 느꼈다. 남 부장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본 것은 희유의 백지장처럼 하얘진 얼굴이었다. 희유는 앉지도 못한 채 자기 자리에 서서 변호사 의견서를 읽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희유의 손이 떨린다.
“박 선생, 허윤석 변호사가 학폭위 참여할 거예요. 이번 학교폭력위원회 준비 제대로 합시다. 변호사 의견서 신경 꺼요. 헛소리지.”
“네…….”
희유의 목소리가 떨린다. 희유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분하고 억울하면 그렇게 눈물이 났는데 어른이 돼서도 변하지 않았다. 무섭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 박희유는 올해 채용된 계약직 교사로서”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왜 계약직 교사인 것을 제일 앞에 밝힐까. 사람의 가장 약한 지점을 파고드는 악마의 문장을 보는 듯했다. 이 문서가 학교폭력심의 위원회에 참석하는 학부모들에게 공유될 것이었다. 그들은 그 첫 문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희유의 파라다이스였던 학교가 이제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희유는 면종복배의 허윤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방금도 허윤석 반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허윤석은 평소처럼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밝게 웃었다. 그러나 교실을 나선 희유가 책상에 놓인 한 뭉치의 서류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마치 허윤석의 배 속에 숨겨졌던 칼처럼 — 날카롭고, 치명적인 그것. 변호사 의견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