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교사라서

징계의 무게

by 문영

허윤석은 집에 와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학원에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집에 있는 가사도우미도, 요양 보호사도, 아픈 할머니도 허윤석에게 관심이 없다. 그냥 학원을 째기로 했다.


박희유가 계약직인 건 아버지를 통해서 알았다. 아버지는 학운위 위원장으로 학교의 모든 정보를 꿰고 있었다. 허윤석은 부모에게 흠 없는 아들이어야 했다. 어디 내세우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 성적 하나 잘 받아오면 충분한 아들이었다.


엄마 하은경과 아빠 허석은 시작할 때부터 균열을 안고 있었다. 검사 하은경에게 자수성가한 사업가 허석은 잘못 꿰어진 단추였다. 허석은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지만 하은경은 별 볼 일 없는 시댁이 콤플렉스였다. 허석이 아픈 노모를 집으로 들이면서 둘의 갈등은 치닫는 듯했으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노모와의 동거가 성사됐다. 치매가 심한 노모의 뒷바라지는 거주 요양보호사가 했고, 살림은 출퇴근 가사도우미가 했으며 허석과 하은경, 허윤석은 각자의 삶을 살았다.

허윤석의 외가는 알 만한 정치인들이 가득했고 친가는 병든 할머니뿐이었다. 윤석은 할머니도 외가도 싫었다. 부모는 더더욱 싫었다. 그러나 부모의 약점을 이용하긴 쉬웠다. 학폭으로 신고됐다 하니 히스테리를 부르며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띠띠띠띠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허석이 들어왔다. 아버지의 뜻밖의 방문에 방에 드러누워 있던 허윤석은 적잖이 놀랐다.


“너 왜 여기 있어?”

“아파서 좀 쉬웠어요.”

“진짜야?”

“네.”

“이 새끼가 돈이 남아도는 줄 아나. 야! 얼른 가방 들고나와!”

“아프다니까요.”

“그럼 병원엘 갔다가 가면 될 거 아니야? 고2가 빠져가지고는 에이 씨”

허석은 성질을 내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얼른 나와. 태워줄게.”

허석은 대답하지 못하고 대충 가방을 챙겨 아버지를 따라 나갔다.


“김 기사, 직진해서 로터리 학원부터 들려. 야 허윤석, 땡땡이치지 마. 돈이 얼만 줄 알아? 나는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녔던 게 학원이야.”

“네.”

“학교는 어떻게 됐어?”

“몰라요.”

“*발 니가 모르면 누가 아니?”

“…….”

“똑바로 살아. 뭘 어쨌길래 학폭이나 걸리고 한심한 자식 같으니라고.”


허석은 가볍게 윤석의 머리를 쳤다. 허윤석은 기분이 나빴지만 꾹 참았다. 두고 봐라. 내가 독립해서 당신 찾나 보자.




희유는 초근을 달았다. 학폭위에서 변호사 의견서를 반박할 것이다. 당당하게 기죽지 않고.

브리핑할 사건 개요를 정리하면서 중간중간 변호사 의견에 대한 반박 글을 썼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화가 났지만 이렇게 해야 했다. 그냥 모함을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요일 7교시, 그들이 왔다. 변호사와 학생이었다. 이상했다. 부모가 아닌 변호사와 동행하는 허윤석의 표정이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학폭위 절차대로 희유는 브리핑했다. 중간중간 변호사 의견서에 대한 반박도 함께였다. 가해 학생 소명의 시간에,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의견서는 의견서일 뿐입니다. 변호사의 의견서가 징계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행위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약직 교사의 절차 미숙도 함께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절차의 민주주의를 살고 있고, 학생이 규정을 어겼다고 모인 이 자리에 교사가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 학교 생활규정 27조 2항에 보면 진술을 받기 전, 상황을 부모에게 알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규정대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허윤석의 부모는 학폭 심의가 열린다는 안내만 받았지 학생 진술 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습니다. 절차를 차치해 두고 상황을 봐도 학생은 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친구들과 즐겼을 뿐, 학생이 사용했다는 패드립과 욕은 특정 대상이 없습니다. 사춘기 남자 청소년의 스트레스 해소 행위조차 처벌한다는 것은 가혹합니다. 단순히 풍자와 해학의 놀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진술한 두 명의 학생은 허윤석 학생에게 분명히 강압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강압이 아니라는 것을 해당 교사의 말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학생 부장 남기훈입니다. 제가 그 부분은 확인했고 필요하면 녹취도 제출하겠습니다. 강압은 없었다고 학생은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어를 듣고 못 견디겠다고 내려온 피해 학생이 존재하는 사안입니다.”

“학생은 교사가 무서워서 강압이 없었다고 진술하겠죠. 이미 절차를 어긴 교사의 판단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친한 교사를 찾아온 학생에게 진술을 시킨 것도 교사입니다.”


희유가 차고 있던 워치에서 건강경보 진동이 울린다. 심박수가 200을 넘어섰다.


“제가 규정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로 진술서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위원님들께서도 그 점은 꼭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부모님께 미리 연락드리지 않았다고 하여 학생의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규정대로 변호사와 허윤석이 퇴장한 후 위원들의 적극적인 토의가 이어졌고, 징계가 결정되었다. 허윤석은 교내 봉사 10시간을 받게 되었다.






“아니, 징계를 내렸다는 거예요? 부모에게 연락도 없이 진술서 받은 그 선생은요? 그 선생도 징계를 받나요?”

“어머니 진정하세요. 담당 선생님도 인사위원회 절차를 밟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윤석이에게 이럴 수가 있죠? 이 학교는 학생의 미래는 생각도 안 합니까? 저 가만 안 있어요. 교육청에 민원 넣을 거예요."
”생기부에 남는 징계도 아닙니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


교감이 하은경과 통화로 땀을 빼는 동안, 희유는 희유대로 2학년 6반 수업에서 땀을 빼고 있었다.


"선생님 계약직이시라면서요? 계약 기간이 어떻게 돼요?"


허윤석이다. 수업 막바지, 질문이 없냐는 희유의 말에 능청스럽게 손을 들더니 빈정거리는 말투로 묻는다. 희유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침착하려고 애썼다.

"수업에 관련된 질문만 합시다."

"저희도 알아야죠. 저희 생기부 불이익 보면 어떡해요. 선생님 학교 절차 잘 모르시던데 생기부 쓰시는 법은 아세요?"


교실에 긴장감이 감돈다. 희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낀다. 절대 여기서 눈물은 안 된다.


"절차를 몰랐던 건 아니야. 어머니와 통화가 안 됐을 뿐이지. 내가 기간제라서 여러분이 피해 보는 건 없어요. 그러나 수업 시간에 허윤석 학생이 한 질문의 내용과 학생의 태도를 과세특에 넣을 순 있죠. 불이익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질문 없으면 이상 수업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복도로 나오는 희유는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낀다. 일부러 허윤석을 보진 않았다. 이제는 눈물을 흘려도 되겠지. 희유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인사위원회의 결정은 계약 해지였다. 학교에 불이익을 주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는 이유였다. 남 부장이 항변했지만 교감은 요지부동이었다. 희유는 어떤 징계가 나오더라도 사직서를 낼 생각이었지만 막상 해직 통보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할 일을 했기에 괜찮았다. 희유는 짐 정리를 했다. 그리고 굳게 마음먹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다시 교직에 서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