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법칙
희유는 수업을 앞두고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마치 학폭 담당일 때 학부모와의 만남 데자뷔처럼 어제 그 모욕을 당했는데 다시, J를 마주해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새삼 참 힘들게 느껴졌다.
주형은 교무실에 들어오면서 희유를 보고 멈칫했다. 그 큰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다. 어제 희유가 학부모를 만났다는 것, 그 자리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지만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기가 어색했다.
J 반 담임도 출근하면서 희유에게 말을 걸었다.
"쌤, 어제 푹 잤어요? 우리 반 수업 괜찮겠어요?"
"해야죠."
갑자기 댐이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희유는 당황하여 황급히 자리를 떴다.
"선생님, 대학 어디 나왔어요? 스카이 안 나왔지? 전교 1등 해 봤어요? 못해 봤으니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르지. 알면 피곤해서 자는 애에게 그런 모욕을 줄 순 없죠."
"모욕 준 적 없습니다. 자는 걸 깨웠을 뿐입니다."
"애들 앞에서 힘 자랑 한 거예요? 왜 쿠션을 뺏아서 망신을 주냐고!"
"수업 시간에 쿠션 베고 자다가 깨웠다고 욕한 J가 절 모욕한 거죠."
수업 시작부터 J는 엎드려 있었다. 희유는 학생들에게 <청산별곡> 해석을 시키고 J 자리로 가서 J를 흔들어 깨웠다. J가 부스스 일어났고 희유는 J가 베고 있던 쿠션을 들었다.
"세수 한 번 하고 와. 이어폰도 빼고."
"X발. 내놔."
J는 갑자기 욕을 하며 벌떡 일어나서 희유 손에 있는 쿠션을 낚아챘다. 희유는 순간 쿠션을 꽉 잡았고 덕분에 J에게 뺏기지 않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 쌤 짱!"
"멋있어요. 우와~"
휘힉. 반 학생들이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모두 조용히 하고. J야, 자리에 앉자. 세수하고 오던지"
J는 키가 180이 넘고 체격이 좋은 건장한 남학생이었다. J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X발, X 같아."
낮게 욕을 하고 교실을 나가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희유는 수업을 마친 후 J의 담임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수업시간 출결을 논의했다. 결국 J는 무단결과 처리됐고 이 사달이 났다. J의 담임은 J에게 희유를 찾아가 사과할 것을 명했으나 J가 사과하기는커녕 J의 어머니가 학교로 출동했다. 희유는 속절없이 J의 담임과 함께 학부모를 만나야 했다.
"아니 피곤해서 좀 엎드려서 잤기로서니 무단 결과 처리를 해요? 선생 너무 한 거 아냐? 무슨 권력남용이야 뭐야? 이것 때문에 우리 애 S대 못 가면 책임질 거예요? 학교도 손해 아니에요?"
"무단 결과 하나 있다고 S대 못 가지도 않겠지만, 만약 그것 때문에 떨어진데도 J가 받아들여야죠. 교실 문 박차고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결과죠."
"진짜 자기 책임은 없어요? 오죽 못 가르치면 전교 1등이 잡니까? 이 민감한 시기의 학생을 애들 앞에서 그 망신을 줬는데 어린 애가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선생님 아동학대하신 거예요. 고소당해 봐야 본인을 돌아보실래요?"
"드릴 말씀 없습니다. 고소하시려면 하세요."
"아니 여교사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애를 모욕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니, 진짜 미쳤어요? 교감 오라고 해. 이 학교는 전교 1등 학부모를 이렇게 대해? 나 이대로 못 가."
결국 교감 선생이 합류했고 희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전교 1등이어도 사람이 돼야 하고,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어머니를 보니 더 많이 가르쳐야겠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분노로 울음이 나올 거 같아 꾹 참았다. 지금 울면 안 된다. 분노의 눈물이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교감 선생은 참을성 있게 J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고 속상한 마음을 이해한다며 학부모를 달랬다. 그러나 규정 상 무단결과를 되돌릴 수 없음을 반복하여 설명했다. 이렇게 학부모 만남이 일단락 됐다. 희유는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 교감 선생이 희유를 위로했지만 너덜너덜해진 희유의 마음이 다시 펴지지 못했다.
희유가 진정하고 들어와서 여전히 빨간 눈으로 수업 갈 채비를 했다. 보다 못한 주형이 희유를 만류했다.
"희유 쌤, 그냥 쉬어요. 지금 6반 수업 내가 들어갈게."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오늘만 쉬어. 지금 J 보기 쉽지 않아 보여."
"교사가 수업 못하면 그만둬야죠. 고맙습니다, 부장님."
주형의 말이 희유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간의 어색함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그래, 우리의 거리는 이 정도가 좋다. 희유는 크게 심호흡하고 6반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J는 역시 엎드려 있었다. 희유는 그냥 수업을 시작하려다 지지 않기로 했다.
"학생이 조는 건 교사인 내 잘못이고, 자는 건 자는 학생 잘못이야. 우리 학교는 학칙에 수업시간 3분의 2 이상 빠지면 결과 처리하게 되어 있어요. 수업시간에 자는 것도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야. 시작부터 엎드려 있으면 어떡합니까. 자는 학생 일어나고. 자 교과서 폅시다."
원칙대로 간다. 학부모를 또 만나야 한다면 만나지 뭐. 희유는 결과를 미리 고지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품을 설명하다가 깨어 있는 J와 눈을 마주쳤다. J는 당황해하며 시선을 피했고 희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자 이 행 누가 현대어로 풀이해 줄까? 지난 시간에 현대어와 다른 어휘들 다 해석했으니까 그거 토대로 해 주면 돼요. J가 한 번 해 볼까?"
"네.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노라."
"와우, 잘했어요. 완전 멋진데? 완벽해."
J는 멋쩍게 웃었고 희유는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 너는 학생이고 나는 교사다,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어. 희유는 수업을 잘 마쳤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온 희유를 보는 순간, 주형은 마음이 놓였다. 맞아. 저게 희유의 모습이지.
"수업 괜찮았나 봐? J 자식, 안 잤어?"
"네, 초반에 엎드려 있더니 나중엔 잘하더라고요. 질문에 대답도 하고."
"다행이네. 쌤 고생했어요."
"고맙습니다."
아직 교권이 완전히 박살 난 건 아니었다. 학생이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문제인 것이다.
희유는 주형과의 대화가 고맙다. 주형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말을 걺으로써 이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듯했다.
사람과의 관계가 한결같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감정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관계에 대한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관계를 정의하지도 말아야 한다. 정의하는 이상 그 정의를 벗어날 때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희유는 주형과 J를 통해서, 그간의 사회생활에서 관계의 법칙을 정립했다. 관계는 사람이 억지로 만들 수 없다. 그저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미세 조정만 해야 하는 것이다. 주형과의 관계도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특별할 것도 특별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