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안부 전화

회복과 절교

by 문영

“언니 퇴근했어? 미안, 너무 오랜만이지?”
“무슨 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미안해, 언니. 나 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있느라고.”


미지의 전화에 희유는 깜짝 놀랐다.
자기를 피한다고만 생각했던 미지가 사실은 큰 사고를 당했고,
전화기마저 부서졌다고 했다.
게다가 머리를 다쳐 큰 수술까지 받았다니.

희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마음으로 원망했던 게 미안했다.


“이제 괜찮아진 거야?”
“응, 이번 주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어디야?”
“아냐, 언니 오지 마. 너무 멀고, 내가 아직 움직이기 힘들어서. 누가 오면 더 피곤해.”
“봐주는 분은 있어? 애들은?”
“간병인 써. 애들은 엄마가 돌봐주셔.”


십 분 남짓 통화하는 동안 미지의 숨이 차 보였다.
희유는 전화를 끊고,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결국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미지에게 십만 원을 보냈다.
큰돈은 아니지만 희유에게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제는 연락이 안 되면,
‘별일이 있나부터 생각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박 선생, 잠깐 볼까?”
“네.”


같은 실에 있으면서 왜 굳이 불러내나.
미심쩍은 마음에 주형을 따라나섰다.


운동장 스탠드엔 햇살이 쏟아지고,
아이들의 뛰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섞여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희유는 덩달아 밝아지는 느낌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희유가 고개를 들어 주형을 바라보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주형은 헛기침을 했다.


“나 휴직하려고 해.”
“네? 갑자기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내가 주재원 발령을 받아서. 애들이랑 같이 나가기로 했어.”
“언제요?”
“이번 학기 끝나면, 방학 때.”
“아…”


주형은 지난번 장학사 시험에서 떨어지고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이제 장기 휴직이라니.
희유는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말인데.”
“네.”
“선생님이 2학기에 우리 반 담임 좀 맡아줄 수 있을까?”
“저, 담임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이참에 한번 해보는 거지. 애들이 참 좋아. 샘한테도 힘이 될 거야.”
“지금 정해야 해요?”
“한번 생각해 봐. 채용 공고 내기 전에 선생님 의사에 따라 교감선생님께 보고드릴 거야. 부담 갖진 말고.”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희유는 늘 주형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곤 했다.
담임을 맡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중간부터 시작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년에 도전하려던 일을 갑자기 앞당기는 게 망설여졌다.

주형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샘이 참 편했어. 세상을 떠난 내 동생을 닮았거든. 그래서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아.
그게 혹시 부담이 됐다면 미안해.”

“동생 분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응, 벌써 오 년 됐나? 처음에 샘 보고 깜짝 놀랐어. 너무 닮아서.”


희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을 떠난 오빠를 닮은 주형,
그에겐 세상을 떠난 여동생을 닮은 자신. 묘하게 엇갈린 그 감정이 이해됐다.




운전 중, 희유는 생각에 잠겼다.

요즘 서운했던 사람들의 사정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연락이 끊긴 미지는 사고로 병원에 있었고,
주형은 잃어버린 동생의 빈자리를 안고 있었다.

그들의 사연이 마음속에서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주형의 반 아이들이 생각났다.
초짜가 중간에 담임을 맡아도 될까 걱정했지만,
마음 한편이 이미 그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 한나의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
희유는 스피커폰을 눌렀다.


“언니, 나 결혼해.”
“아, 정말? 축하해.”
“멀겠지만 언니 고향에서 하니까 꼭 와.”
“어딘데?”
“삼성동 ○○호텔.”
“우와, 좋은 데서 하네.”
“응, 남자친구가 준 재벌이야. 그래서 거기서 해야 한대. 체면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응?”
“형부랑 같이 와서 자리 좀 채워줘. 뭐 알아서 하겠지만, 언니 잘 사니까 축의금은 두둑이 넣어주고.”

“—— 한나야.”
“응?”


끼익— 차선을 바꾸는 차를 보지 못했다. 희유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뒤차의 클랙슨이 날아왔다.
비상등을 켜고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유소로 차를 돌렸다. 기름도 넣을 겸, 통화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언니?”
“어, 미안. 운전 중이었어. 지금 주유소 들어왔어.”
“그럼 이따 전화할까?”
“아니, 한나야. 전화 안 해도 돼. 나 네 결혼식 못 가겠다. 아니, 안 가.”
“응? 왜?”
“축의금은 따로 보낼게. 멀기도 하고… 자리와 돈 채우러 가고 싶진 않네.
이런 통화 이제 그만하자.”
“언니, 무슨 소리야?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의 말은 늘 그거였어.”
“언니.”
“나 이제 주유해야 해서. 끊을게. 잘 살아.”


뚝.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소리였다. 스스로 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편했다. 쿵쾅거리지도, 미안하지도 않았다.

희유는 차에서 내려 주유 건을 들었다.

기름 냄새 사이로 바람이 스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그 구름이 씩 웃어주는 것 같았다.

희유도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내가 담임을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