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온도

by 문영

2026학년도가 밝았다.
첫 수업은 국어이고, 놀랍게도 내가 수업한단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우와~를 외쳐 주었다.

특별한 인연이었다. 운명처럼 내게 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신기할 만큼 케미가 좋은 반이다.

우린 첫 한 학기를 함께 웃었다. 품사를 찾다가 웃었고 뒷이야기를 상상하다가 웃었다. 쓴 글을 나누다 웃고 일상을 얘기하다 웃었다. 그렇게 유쾌한 반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수업은 짧았다. 2학기 때 반 조정이 되면서 나는 그 반을 맡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일들에 치이며 잠시 떨어져 있다가 새 학기, 선물처럼 그 반을 다시 맡았다.

기대했던 만큼 즐거웠다. 단어를 나열하다 웃고 중세 서사시에서 암시된 앞으로의 사건을 예측하다가 웃고 작품 속 인물을 이야기하다가 웃었다. 왜 웃는지 모르겠다. 그냥 함께 웃는 반이다.

케미가 좋은 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년을 가르쳤건만 어려운 반도 있다. 눈치를 살피며 음운을 가르쳤다. 질문하고 답을 끌어내면서 끊임없이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렇게 네 시간 수업을 하는 틈틈이, 프린터 a/s를 접수하고, 방학을 통과하여 모인 책들을 반납처리하고 기증받은 책을 정리했다. 방학과제를 걷고 여러 업무들을 처리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도 불편하게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불편했다.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걸 애석하게도 경험으로 배웠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를 주고받고, 업무라는 이유로 말을 주고받는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이야기가 오간다.


그만두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판을 흔들어 보려다 포기했다. 한결같은 분노도 내려놨다. 어느 것 하나 내게 유리하지 않은 수였다. 무엇을 해도 풀 수 없는 억울함이었다.

모든 관계를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하루들이 더 소중하다.

꽤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하루를, 자리를 잘 지켰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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