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생활

애증의 공간

by 문영

나의 입사 동기가 7학년이 되었다.


내가 들어가던 해에 막 1학년으로 입학한 아이들이 현재 7학년이다.

내가 수습일 때 결혼하신 선생님의 아이도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그만큼 오래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직을 기웃거리지 않은 해가 없었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해도 없었다. 단 한 학기도 쉽지 않았다. 그 어려운 걸, 그렇게 툴툴되면서, 다른 문을 열어보면서, 꾸역꾸역 해 냈었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도 도통 알 수 없는 인간이다.




내가 어디서 이런 인정을 받겠는가.

내가 어디서 이런 제자들을 만나겠는가.

내가 어디서 이런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작년 초, 그런 생각을 했었다. 죽도록 힘들지만 참 좋다는 생각. 이 좋음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왜 괜찮지? 왜 나를 좋아하지? 끝까지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더하여, 이제 진짜 마음을 붙여 보자. 생각했었다. 그러다 소송에 걸렸고,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동료들과 멀어졌다.


나의 오만 때문이었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 잘 지내고 있다는 착각, 잘하고 있다는 착각, 이것들이 나의 경계를 허물었고 나를 나락으로 밀어버렸다.




억울함에 자꾸 눈물이 났고 그렇게 우는 것을 들키는 것도 싫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막막했다. 마음 둘 곳. 나는 그게 필요했다. 그리고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를 고소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잘 지낸다는 것. 문제없는 교사라는 것. 그걸 담임이라는 직위로 증명하고자 했다.


목적이 불순했나.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자격 미달이었다.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나는 순순히 담임을 포기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이유였다. 그러나 부모와 교사의 갈등으로 학생이 피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담임은 내가 아닌 더 좋은 교사가 하면 되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 꼴 저 꼴 다 당했는데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근무를 해야 했다. 소송이 끝나지 않아 이직이 어렵고 그놈의 돈 때문에 사직을 할 수 없다. 그렇게 골골대던 몸은 옆으로 퍼지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병가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해내던 그 시절. 그렇게 후회 없이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면 소송도 종료되고 훌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심으로 애쓰려고 했는데 나는 이미 말末심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말末심인데 이 학교에서의 말末이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7년이라는 시간의 힘은 예사롭지 않다. 전이든, 역전이든 나는 이미 이 학교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이 일에 스며들었다.


사랑도 아쉬움도 가득하여 한순간도 놓지 못했던 애증의 공간, 이곳은 나의 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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