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건방짐에 대하여

아는 것과 모르는 것

by 문영

나는 학생의 시건방짐이 싫다.

좋은 선생님인 척, 권위적이지 않은 척, 모든 질문을 환영하는 척한다. 하지만 결국 척에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문법 시간.

모음 체계를 가르칠 차례였다. 나도 어렵다.

국어 문법은 언제나 배신자다.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쓰고 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모르는 것투성이다. 어렸을 적, 그게 너무 재밌어서 문법 공부가 좋았었는데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모르는 것투성인 현실에 뜨악하고 만다.


반마다 개성이 다 다르다. 오늘 수업한 반은 특별히 더 심하게 뜨악하는 반이었다.


‘아니, 내가 모른다고?’, ‘내가 쓰는 게 틀렸다고?’ 자존심이 상할 일이 아닌데 아이들은 자존심이 상해 보였다.


단모음, 이중모음을 함께 발음해 보았다. 모음을 발음할 때, 입의 모양이나 혀의 위치를 알아보고자 한, 너무도 이상적인 행위였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괴리를 갖게 마련이다. 아이들이 발음하면서 인지하는 혀의 위치가 모음 체계 표에 나와 있는 위치와 너무도 다르다. 이제부터 삐칠 타임이다.


“아니, 현실과 맞지도 않는, 억지로 갖다 붙인 걸 왜 배워야 해요?”


A가 따져 묻는다.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다수가 발음할 때 위치하는 혀의 자리를 표와 똑같이 찾지 못한다고 하여, 문법이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은 아니다. 왜 자기네들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지? 나는 이미 A의 질문에 마음이 상했다.


교사는 가르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다친 걸 드러낼 수 없다.

“억지로 갖다 붙인 거 아닙니다. 실제 발음되는 구조와 위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위치를 인지하기 어렵다고 하여 문법을 억지로 갖다 붙인 거라고 알면 안 되죠.”

A도 마음이 틀어졌다. A는 9학년 때, 문법 따위는 배우지 않겠다고 내게 선언했던 아이다. 내 눈엔 지적 허영이 대단해 보였지만, 뭐 그 나이에 그럴 수 있지, 생각했다. 사춘기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현재는 11학년이었고 태도도 많이 좋아졌다. 이해력과 학습 능력이 좋아서 성취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왜 화를 내는가. 도통 알 수 없다.

A의 태도는 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별생각이 없던 아이도, ‘응? 그러게?’ ‘안 맞는 걸 왜 배워?’ ‘문법 이상해.’로 바뀌는 흐름을 느낀다. 아이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내 몸과 마음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마치고 자리로 와서 초심으로 전공서를 폈다. 이론을 찾아보고자 했다. 발음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알면 이 아이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언어학 전공이 아닌, 국어국문 전공자가 갖고 있는 책에서 음운의 체계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입사 초반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흔들렸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더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는 나에 대한 확신이 확실히 적었다. 질문만 받으면 무조건 내가 잘못 설명했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내가 적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적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발음의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통시적으로 꿰고 있으면 대응은 쉬웠을 것이다.




자격지심인가. 교사를 무시하는 듯한 그 표정이, 절대로 이런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듯한 그 태도가 퇴근할 때까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속이 좁은 교사였다, 그 학생을 오가다 마주쳐도 싫었다. 지금 직장에서 정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학생의 시건방짐을 몸서리쳐하는 교사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