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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an 17. 2024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카타르시스 창출

새벽에 눈을 떴다. 그런데 할 일이 없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오빠한테 톡을 했었는데, 그럼 오빠가 시큰둥하게 답해 줬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그냥 보내 봤다.


-오빠, 잘 있지?


아직 핸드폰은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1이 사라지지 않은 채 메시지가 떠 있다.


아침 6시, 나는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고 오빠한테 톡을 보내곤 했다.


-잘 가고 있어? 난 꿍이 먹이려고 불고기 했어.

-부지런하네. 난 잘 거야.


오빠는 통근 버스에서 답을 해 줬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나는, 그 아침에 그렇게 오빠랑 톡을 했다. 이것은 하나의 루틴이었다.


그랬던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희귀 암으로.

진단받고 치료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항암이 안 들었네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급히 떠났다.  


인생의 허무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학벌도 재력도 어떤 능력도 죽음 앞에선 힘이 없었다. 열심히 살아온 오빠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너무나 살고 싶던 세상을 떠났다는 게 그렇게 비통했었다.




아이가 어릴 때였다. 마음대로 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서 온종일 먹기만 했다. 공허함을 먹는 걸로 채웠다. 효과는 없었지만 무엇이라도 씹고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건강에 빨간 신호가 켜졌다.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도 떠날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린데, 엄마 아빠가 또 자식을 잃으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나라고 데려가시지 말란 법이 있는가... 나는 끝없이 먹어대던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빠를 잃고 얻은 슬픔과 공허함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문득 글로 쓰고 싶었다. 글은 왕년의 나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는데 삶이 바쁘다늗 핑계로, 사라져 버린 감수성을 이유로, 나는 글을 쓰지 않았더랬다.


먹는 대신 글로 슬픔을 쏟아냈다. 쓰면서 울고, 나를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글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치유였다. 누군가에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그랬기에 나는 글로 쏟아냈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글쓰기의 재미를 다시 느꼈고 그 후로 나는 글로써 표현하고 표출하고 타인과 그리고 나 자신과 소통했다.


글이 나를 살렸다. 지금도 나는 그래서 글을 쓰는 듯하다. 내 감정을 깨끗이 하며  나를 위로하고 표현해 내기 위해.


이제는 글이 타인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감을 주고 위로가 되고 싶다. 그런 힘이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언제까지 글을 쓸지는 모르겠다. 오빠는 글 쓰는 게 취미인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부러워했었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오빠가 그러는 게 나는 좀 더 좋았다. 오빠는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에게  다시 글을 쓰게 했고 자타공인 브라더 껌딱지였던 나는 수용했다.  


나는 좀 더 많이 쓸 거다. 오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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