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아가다
세상은 온통 하얀데
마음은 온통 까맣다.
먹먹하고 힘들다.
눈을 밟는 마음이 한결 가볍길 바랐으나 축 가라앉은 무게로 땅을 누른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재미없다. 삶이 꼭 재밌어야 하는가.
책임을 다 한다는 것.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비우고 나가는 자리는 금세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책임을 지기 위하여 발버둥 친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세상은 온통 하얀데
마음이 온통 까맣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주변을 살핀다.
마치 내 생각이 사실인 양 떠드는 내가 역겹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이렇게 가벼운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이렇게 진중하지 못한가.
축 가라앉은 무게가 나를 누른다.
무게감을 아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까.
반복하는 실수에도 희망이 있을까.
그럼에도 생각해 본다.
멈출 수 없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니,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여태껏 멈추지 못했다.
멈출 수 없는 만큼
자리의 무게를 아는 만큼
가볍게 떠드는 역겨움을 느낀 만큼
달라져야만 한다.
아니까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까 이제는 무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짓누르는 마음을 힘들다, 힘들다 소리칠 것이 아니라
짓누르는 마음을 오롯이 받아들여
그만큼 진중하게 나아가야 한다.
하얀 눈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