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샘 Dec 06. 2023

우리반 행복이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이야기

행복이의 카메라

우리 반 행복이는 그저 모둠활동이 전혀 안 되는 독불장군, 자기 고집이 지나치게 센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둠에서 다른 아이들을 모두 피해자로 만드는 아이라고 말이다. 과학실험할 때도 준비물 가지러 나오라고 하면 모둠 다른 친구들과 상의도 없이 항상 본인이 나오고 준비물 가지고 들어가서는 늘 본인이 다 하려고 하고, 꼭 자신 쪽으로 돌려놔야 하고, 분명히 뭐든 똑같이 나눠주는데도 늘 부족하게 느끼고 자기 것이 가장 작다 혹은 적다고 불평하는 아이, 그래서 때로는 그 불평소리가 너무 귀찮고 힘들었다.


이번 사회시간에 하는 알뜰시장놀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모둠에서 가게이름 정할 때부터 다른 아이들은 나눠 마트를 하자고 하는데, 자신은 그게 싫다며 아니 마트를 하겠다고 우겨댔다.


"모둠은 공동체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어.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 그러니까 이번엔 친구들의 의견을 따라주자."

"싫어요. 그리고 왜 저희 모둠엔 저 빼고 다 여자예요?"

"그럼 넌 그냥 따로 할까? 혼자 아니 마트 하면 되지. 거기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가격도 마음대로 정하고 간판도 마음대로 만들고. 어때?"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그건 또 죽어도 싫단다.

"그럼 나눠 마트 해야 돼. 친구들 의견이 그러니까. 대다수의 의견이 그렇잖아."

"그럼, 간판에서 상징적인 그림은 내가 그릴래요."

"그럼. 행복이도 그려야지. 다른 친구들도 그리고. 같이 그리는 거야."

"싫어요. 다 내 마음대로 할래요. 내가 여기 가운데 크게 그릴래요."

"그건 다른 친구들과 합의해서 하는 거야. 다 네 마음대로 할 순 없어."

이 계속되는 실랑이가 정말 힘겨웠다.


따로는 죽어도 싫고 같이 할 건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행복이. 나는 이번 기회에 공동체의식도 알려주고, 다른 친구들과 조율하는 법도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했다. 그래서 모둠 다른 아이들에게 행복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행복이를 교육하려 애썼다.

결국 상징적인 그림을 하나 그리기로 했고 그려서 오렸다. 그런데 이번엔  그 오린 그림을 놓는 위치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상징적인 그림은 바로 CCTV 촬영 중이라는 그림이었다. 제 딴엔 아주 기발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둠친구들이 간판 한쪽 위가 적당한 위치라 여겨져 그림을 그곳에 붙였는데,

끝까지 한가운데 붙이겠다고 우기는 거다.


"싫어. 여기에 붙일 거라고오~!"

어제까지는 친구들과 합의된 자리에 붙이기로 해놓고 오늘 알뜰시장을 열어야 하는데 또 그것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한 아이가 급기야 책상에 엎드려서 속상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도 너무 지쳤고 화가 났다. 평소에 행복이의 태도를 알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이가 아닌 행복이네 모둠 세 명의 친구들을 불러 세웠다.


"얘들아, 그런데, CCTV 행복이가 붙이고 싶다는 자리에 붙여주는 거 그렇게 싫어?"

"그게요. 저희들 간판 컨셉이랑 너무 안 맞아요."

"그래. 그렇구나. 너희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선생님은 너희들 간판이 그 그림 하나가 어떻게 붙여진다고 해서 망가지거나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반짝여. 여기에 붙이나 저기에 붙이나 그것이 이 그림을 망칠 수 있을까? 또 그걸로 컨셉이 조금 안 맞는다 해도 너희들이 행복이에게 그 정도의 허용을 보이는 건 충분히 가치 있고 꽤 멋있는 일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는데 어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짠하고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행복이를 좀 더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에 만족이 되었는지 행복이는 어느새 스카치테이프로 자신의 카메라 그림을 간판 한쪽에 꼭꼭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 속에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그 아이 표정이 보였다.


알뜰시장이 열리고 행복이는 아주 신나게 활동에 참여했다. 그렇게 즐겁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참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오늘 그 아이를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빈 교실에서 행복이네 모둠이 만든 간판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 뭐가 올라왔다.


행복이네 모둠이 만든 알뜰시장 간판


"아 저 카메라는 행복이 자신이었구나."


CCTV촬영 중이라는 카메라 그림이 마치 행복이처럼 보였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던 행복이 마음이 느껴졌다.


행복이의 카메라

처음엔 이름으로, 다음엔 상징적인 그림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의 그림이 한가운데 위치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던 행복이 마음이 느껴져 괜히 짠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동체생활을 가르친다는 신념으로 그것에 집중하는 사이 행복이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행복이 자신은 자신의 부족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디 한 부분에 자신의 존재를 그려 넣고 싶었던 거다.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고. 나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간 했던 행동들도 모두 존재에 대한 몸부림의 언어로 느껴진다. 물론 이것으로 그 아이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그 언어들을 좀 더 따뜻하게 맞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 행복이도 존재체험, 사랑체험하러 이 땅에 왔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