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아이들의 꿈 발표대회가 있었다. 지난주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고, 오늘은 그 그림을 자료로 발표를 했다.
1교시에 발표하기 위한 원고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고심하며 원고를 쓰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선생님, 그런데 지난주에 그린 그림이랑 꿈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도 발표할 때 그림 붙여요?"
"그래? 그럼, 그림은 붙이고 바뀌었다고 발표할 때 말하면 되지. 훨씬 재밌는 발표가 되겠다."
드디어 아이들의 발표대회가 시작되었다.
"저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이 꿈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의사였습니다. 의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의사를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제 것이 아닙니다. 진짜 제 꿈은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옷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중에 반려견 의상디자인도 해 보고 싶습니다. 제 꿈을 응원해 주세요."
아이들의 진솔하고도 진지한 발표가 이어졌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을 들을 때마다 너무 소중해서 가슴뭉클했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나는 지금 미래와 마주하고 있구나 느껴졌다. 1번부터 마지막 51번까지 모든 발표가 끝났다.
대회라고는 하지만, 순위를 정하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경쟁하고 있지 않고 함께 하고 있었다. 비교하지 않고 서로의 미래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의 발표를 듣는데 선생님 정말 감동했어. 지금 너희들을 보는데 발표대회 하기 전의 너희들이 아니야. 뭔가 달라. 진짜 멋있어 보여. 그땐 내가 몰랐잖아. 이젠 알았잖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멋있고 위대하고 대단해 보여."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본다. 신기하다. 분명 아까 그 아이들인데, 꿈 발표대회를 하기 전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꿈을 넣어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사람의 표정을 찍는 포토그래퍼 연우, 100만 유튜버 가람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 한별이, 설리번 선생님이 될 유화,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수학선생님 나유......"
아이들이 몸을 앞쪽으로 움직이며 다음 내 이름을 지칭하길 기다리는 몸짓을 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동자가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다 너무 잘했어. 그리고 선생님 오늘 엄청난 인맥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미래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4명이나 알고 있잖아. 게다가 유명한 패션디자이너가 3명, 유명 요리사에 , 수의사, 과학자,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까지. 유명해져서 나중에 선생님 모른 척하면 안 돼."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는 매일 미래와 만나고 있었다.
1년만 지나면 이 아이들은 한 때 담임이었던 나를 잊을 것이다. 아니 불과 몇 개월 후면 나는 아이들의 과거가 된다. 선생님은 평생 짝사랑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상대가 기억조차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성인이 되어 찾아온 제자들에게 선생님이랑 했던 일 기억나는 거 있냐고 물으면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잊히더라도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그저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혹시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 주었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아이들은 잊어도 나는 오늘의 이 시간을 기억할 테니까. 오늘의 이 감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