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여성 과학자: 윌리아나 플레밍
윌리아미나 패튼 스티븐스 플레밍은 피커링이 자신의 팀에 처음으로 고용했었던 여성이었습니다. 피커링이 사무직으로 그녀를 고용하기전 플레밍은 피커링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었으며 이미 기혼이었죠.
결혼전 윌리아미나 패튼 스티븐슨이었던 플레밍은 1857년 스코틀랜드에서 로버트 스티븐스와 그의 부인인 메리 스티븐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4살때까지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그곳에서 다른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플레밍은 1877년 20살의 나이에 제임스 플레밍과 결혼했고 다음해 보스턴으로 이주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플레밍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은 임신중인 아내를 버리고 달아나버립니다. 22살의 플레밍은 이제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했었죠. 그리고 그녀는 하버드 대학 천문대 대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커링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됩니다.
피커링이 가사도우미였던 플레밍을 자신의 팀원으로 고용한것에 대해서는 마찰을 빚던 남성직원들에 대해서 "너희들보다 우리집 가정부가 더 일을 잘하겠다"라면서 고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플레밍은 글을 읽고 쓸줄 알았으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만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천문대에서 단순작업을 할만큼의 능력은 충분했었으며, 과학 연구를 수행할만한 능력 또한 있었죠.
피커링이 플레밍을 고용한것은 1881년으로 천문대 사무직으로 고용했으며 서류작업과 더불어 천체관측을 위한 몇가지 계산을 하는등의 관측 보조일부터 하기 시작햇었습니다. 이후 플레밍은 별의 스펙트럼들을 가지고 분류를 시도하던 플레밍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바로 별의 스펙트럼선 중 수소선의 강도에 따라 별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도입하는데 기여한것이었습니다. 수소선의 선이 가장 센 별들은 A타입 그보다 조금 덜 센 별들은 B타입..이런식으로 분류를 하게 된것이죠
플레밍은 피커링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후 피커링이 고용한 여성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은 물론, 천문대에서 발표되는 모든 출판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었습니다.
피커링이 1890년 첫번째 "헨리 드레이퍼 카탈로그"를 발표했을때, 플레밍은 여기 기재된 수많은 별들의 스펙트럼들을 분석해서 분류했었습니다. 그와중에 그녀는 가스성운 59개, 변광성 310개, 신성 10개를 발견했었습니다. 그리고 1907년 자신이 발견한 변광성 222개의 목록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특히 1888년 플레밍은 오리온자리의 "말머리 성운"을 발견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헨리 드레이퍼 카탈로그가 나왔을때, 이 발견에 대한 공은 플레밍이 아닌 피커링 형제(에드워드 피커링의 동생인 윌리엄 피커링이 사진을 찍었었습니다.)에게만 돌아갔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버전에서는 플레밍의 이름이 들어가게 됩니다.
플레밍의 작업은 점차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89년에는 하버드 대학 천문대의 첫 여성 정식 직원이 됩니다. 또1906년에는 미국 여성 천문학자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왕립 천문학회 회원이 됩니다.
플레밍은 1911년 폐렴으로 보스턴에서 사망했으며, 그해 APJ(Astrophysical Journal)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동료이자 역시 하버드 컴퓨터스의 일원이었던 애니 점프 캐넌이 기고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http://articles.adsabs.harvard.edu//full/1911ApJ....34..314C/0000314.000.html
3.http://www.distinguishedwomen.com/biographies/flemingw.html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2.아마도 나사 사이트(...--;;; 나사 사이트에 나오는 그림은 저작권없이 올릴수 있는 사진들이라고 알고는 있습니다만 안되면 나중에 링크를 찾아보겠습니다. 저 말머리 성운사진을 나사 사이트에서 찾은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