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Perfect Days 리뷰
10대 시절, 다큐멘터리 감독/작가를 꿈꾸게 해 준 다큐멘터리 한 편을 우연히 보았다. 바로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1999년작). 쿠바 아바나의 재즈 장인들의 연주단체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연주가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철학 그리고 그들의 삶이 아바나의 습기와 함께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필름에 투영된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장면, 그 장면 하나하나가 '음악' 그리고 '인생' 자체인 듯한 그러한 작품이다. 벤더스 감독이 이번에는 마치 오스 야스지로 감독, 허우 허샤오시엔,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감을 받은 듯한 단조롭지만 시적인 그런 작품을 하나 세상에 내놓았다.
'퍼펙트 데이즈(Pefect Days) (2023년작)'
이 영화의 시퀀스는 '반복'을 토대로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배우)의 일상을 담는다. 극단적인 희로애락에 적응된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지루한 작품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야스지로 감독과 허샤오시엔 감독의 골수팬인 나는 마치 습한 여름날을 배회하며 주체적인 하루를 보내는 교코의 일상을 담은 '카페 뤼미에르'와 비슷한 영화를 찾은 것만 같아 좋았다. 물론 퍼펙트 데이즈는 조금 더 알게 모르게 슬프지만.
창문을 열어놓고 잠이 든 히라야마는 아침마다 낙엽을 쓰는 빗자루 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자명종으로 삼아 깬다. 그리고, 부엌 겸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하고 면도한다.
유니폼을 입고,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 폴더 폰, 열쇠를 챙겨 다마스 봉고차에 탑승한다.
아! 탑승하기 전에 히라야마의 자전거와 봉고차 뒤에 있는 음료자판기에서 BOSS 냉커피를 아침으로 때운다.
반 모리슨 등 70-80년대 팝송을 테이프로 들으며 도쿄 시내 - 시부야 - 공중화장실로 출근하는 사연이 많아 말을 아끼는 듯한 중년의 남성, 히라마야.
스스로 약속한 듯 흡사 침묵수련과도 같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우유와 후르츠 크림 식빵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살아가는 나무, 그리고 그 나무가 선사하는 그늘과 그림자를 일포드(Il fold) 흑백 35미리 필름이 담긴 사진기로 기록한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일상에 완전히 물아일체가 된 삶을 살아가는 나그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 나그네는 청소일이 끝나면 대중목욕탕을 가서 몸을 씻고, 지하통로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진소다와 같은 약한 약주를 한두 잔 걸친 후 집에 돌아와 식물을 가꾸고 독서하면서 잠을 잔다.
물론, 그에게도 리듬을 깨는 몇 가지의 소소한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그는 그 리듬이 깨졌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 변주를 받아들이면서 억지로 말고 자연스럽게 그 리듬이 되돌아올 것이란 믿음이 있는 듯하다.
단단한 사람의 기운이란 마치 이런 것인가. 히라야마의 희로애락은 짜임새 있는 일상의 리듬 속에 골고루 퍼져있다. 그래서 단조롭지만 단단한 이 리듬이 나 같은 관객에게 주는 위로가 너무 벅찼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그리고 '나'를 혼자서 바치는 그 힘의 무게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지. 이렇게 편협하고 가벼운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무게와 용기가 아니다. 히라야마라는 사람 자체가 '장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라이프' 그 자체라고 영화는 말한다. 돈이나 어떤 이미지로 환산된 가치가 아닌 가치 그 본연을 표현하고자 한 '퍼펙트 데이즈'.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 스스로가 히라야마 정도의 내공이 쌓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도도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꾸어야 하는가. 감히 나 같은 조잡한 인간은 흉내 낼 수도 없을 정도다. 저 정도의 내공과 아름다움이란.
그의 삶을 보며, 나를 완전히 모르는 곳에서 온전히 나 혼자, 불필요한 대화를 강요당하지 않은 채,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회사로 이동하는 아침시간,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핸드폰에 머리를 처박고 뉴스를 읽기보다 창밖으로 비추는 사람들의 모습, 적도의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나에게 그늘을 선사하는 울창한 나무들에게 매일같이 고맙다고 인사를 전해야 하나. 무엇에 쫓기지 말고, 스스로의 리듬 속에 진심을 다해 모든 순간을 보내는 것. 그렇다면 나의 불만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히라야마처럼 진심을 다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리함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아침 어젯밤 정해둔 옷을 입고, 꾸역꾸역 출근해서, end-goal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신체+두뇌활동을 하지만, 솔직히 즐겁다고 느낄 때는 거의 없다. 그냥 지금 어느 정도 이루어놓은 삶의 수준을 지속하기 위해 그리고 재정적 독립은 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하는 것이다.
나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 그리고 그 루틴 속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느끼며 단단한 기반을 쌓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아니 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Hirayama's Perfect Days can be also my Perfect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