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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Dec 20. 2020

[당먹태] 당신은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식욕 vs 식탐

인간의 욕구에는 크게 식욕, 수면욕, 성욕 이렇게 3가지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인간이라면 가장 일차적으로 느끼는 식욕, 좋아하는 것을 먹었을 때, 허기진 배를 달랬을 때, 아니면 슬픔을 달래려고 입으로 채워 넣는 행위를 하였을 때 인간은 도대체 어떤 심리적 상태에 도달할까.


아마 90년대 이후 또는 최근 20대를 맞이한 2000년대 전후 생들한테는 아주 옛날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87년생인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1학년은 국민학교였던 것으로 기억) 우유급식을 했었다. 나는 유제품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 분해효소 결핍증(lactose intolerance)을 가지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은 내 요동치는 위장을 신경 쓸리 만무하였고, 매일 꼴도 보기 싫은 200ml짜리 서울 우유를 책상에 놓고 먹기 싫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곤 했다. 우유급식의 목적은 영양소 섭취를 통한 신장 키우기였던 게 확실하다. 당시 200ml200원 정도 하던 우유를 점심시간 이전에 억지로 먹어야 해서 그런지 불행 중 다행히도 내 키는 또래에 비해 큰 편이긴 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급식 카트를 직접 교실 안으로 가지고 와서 배식을 했는데, 한창 클 때라 그랬는지 정말 많이도 먹었다. 배식해주던 어머니들 역시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야 쑥쑥 크지.”라고 하시며 산더미 같 잡곡밥과 국을 식판에 담아주시곤 했다. 당연히 어렸을  많이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며, 식욕과 식탐을 분간하지 못한 채 많이 빨리 먹었다.


심리학에서 보는 '먹기'

2020년 현재, 이제는 음식이 고 넘쳐나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먹을 것이 부족했던 한국은 산업화를 거치며 먹는 것이 과잉이 된 사회가 되었다.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고픈 시절, 일명 보릿고개라고 하던 그 시절은 한국 역사에서 지우기 힘든 트라우마였는지 여전히 ‘많이’가 덕목인 것 같다. 결국 이 기준도 없는 ‘많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자발적 결핍 행위인 다이어트심취되거나 음식 섭취 거부 상태인 거식증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모순된 현상들을 보곤 한다.


심리학자들 역시 ‘먹는 것’, 이 상당히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에 대해 수십 년간 탐구해오고 있다. 역사라는 것이 시작되기 전 인류는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충당하였기에 당연히 ‘적당히 부족한’ 음식 섭취가 가능했다. 조리법도 매우 간단하여 굽거나 날 것으로 먹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면서 특히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먹는 것’에 대한 선택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충분함을 넘어 차고 넘치는 풍부한 식품이 만들어졌고, 인간들은 먹는 것도 소비하며 보상심리(rewarding)를 충족하기 시작하였다.


먹는다는 행위는 삶을 영위하기위한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심리적 행위이다.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듯 인간도 에너지원이 필요하기에, 이 에너지원을 수급할 수 있는 음식은 곧 우리 몸의 항상성(homeostatic) 유지군이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음식이라는 것이 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사방 군데 인간이 손만 뻗으면 닿는 도처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대량생산이라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먹을 것이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우리는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것을 찾게 되는 행위를 거의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음식 역시 산업화를 거치며 ‘먹는 상품’ 즉 ‘식품’이 되어버렸고, 여기에다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각종 마케팅과 광고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매일매일 충족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맛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입맛(food preference)이라는 것은 유전적인 환경 또는 유년시절 자주 접했던 음식으로 규정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생각해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집은 먹는 것이 정말 풍부한 집안이다. 지금은 나와 동생이 엄마랑 아빠와 떨어져 살기에 조금 덜 한데, 어렸을 때는 정말 사시사철 냉장고, 김치냉장고 그리고 뒷베란다의 곳간이 빈 적이 없었다. 엄마는 40세부터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음식을 매일매일 만들어 우리에게 시험했다. 그리고, 우리 집 특성상 반찬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엄마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가족 구성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아침식사부터 저녁까지 준비하느라 주방과 엄마의 몸이 거의 일심동체였다.


유전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집은 고추장 또는 고춧가루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콩나물을 많이 먹었는데, 콩나물 국과 콩나물 무침은 반드시 참기름과 마늘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는 금기 었다. 특히 엄마가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을 질색하고 싫어한다. 가끔 백반집에서 밑반찬으로 제공하는 콩나물 무침 또는 멸치볶음에 고춧가루가 섞인 모습을 보는 순간 엄마는 “이런 거는 못써. 먹는 거 아니야.” 라며 식탁 모서리로 가차 없이 치워버린다. 엄마 피셜에 따르면 고춧가루는 천민들이나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재료 맛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처참한 행위라고 하는데. 사실 근거 없는 소리 같긴 한다. 어쨌든 이러한 연유로 나는 고춧가루는 멀리한다. 매운탕도 지리 매운탕, 비빔밥도 절대 고추장 넣어서 비며 먹지 않고, 김치도 백김치를 선호, 한국인이 거의 열에 아홉은 좋아한다는 얼큰함은 내 혀와 입천장에게 처참한 고문을 하는 맛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유년시절 자주 접했던 음식이라. 나는 만 14세부터 한국이 아닌 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이것은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명제이다. 나는 단 과자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렇다고 설탕이 서걱서걱 씹을 정도의 단 맛은 견디질 못하고, 바닐라 향이 슬며시 느껴지는 정도의 단 맛이라고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재료 고유의 맛이 느껴지는 과일 타르트를 좋아하고, 유제품을 먹고 나면 자동적으로 곰돌이 푸 몸매가 되지만 - 유제품 소화가 안 되기에 자동적으로 똥배라고 불리는 아랫배가 동그랗게 부푸는 체질 - 치즈와 버터를 유난히도 좋아한다. 냉장고에는 항상 버터와 하드 치즈가 구비되어있다.


나의 입맛을 굳이 정의하자면 달고 부드러우며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것들을 좋아한다할 수 있다.

이런 입맛 때문에 많이 있지도 않는 내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한국음식의 정석을 맛보지 못했다. 으레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김치나 떡볶이 또는 불고기 등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고기는 내게 음식이 아니고, 김치나 떡볶이는 거의 먹어본 적이 없기에 만들기 자체를 거부한다. 가끔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면 떡볶이나 김치찌개는 고사하고 쿠키나 키쉬를 대접하니 그들의 얼굴엔 엄청난 실망이 역력하지만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잘 먹었어. 고마워.’라며 귀가한다. 친구들.. 미안.


행복을 위해 먹는다는 것

인간의 뇌는 잘 때도 돌아간다. 24시간이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뇌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잘 먹는 것이 중요한데, 만약 가공음식, 정제당으로 만든 음식 (대표적인 예로 코카콜라 같은 청량음료, 사탕, 젤리 등)을 대량 섭취하면 뇌가 피곤해지고,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신체적으로도 인슐린 수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게 되어 염증이 생기고 결국 산화성 스트레스(oxidant stress)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행동 심리학자들은 먹는 것은 당신의 기분 그리고 궁극적으로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기분이 좋을 때 뇌 분비 물질 가운데 세로토닌이라는 것이 생성되는데, 세로토닌의 95%가 위장에서 생성된다고 하니, 소위 말해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 몸뚱이뿐만 아니라 나의 뇌 건강에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대단한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거나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그게 건강에 좋은 음식이며, 음식을 너무 제한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가공된 음식을 자주 먹거나 화학물질을 첨가해서 만든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것은 행복을 경감시키는 식이 행위라고 본다.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불행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나조차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나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인간임에는 틀림없으나 불행을 한 30으로 봤을 때 행복을 70 정도로 보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 행복감은 맛있고 건강한 것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는데, 우선 나는 체질상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당근 제외) 대부분 제철 채소와 생선을 주식으로 한다. (당근은 정말 극혐 한다. 당근 미안.)


사람들은 간혹 “넌 도대체 뭘 먹을 수 있냐?”라며 힐난하지만, 나의 식성을 핑계로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회식을 자주 빠질 수 있고, 내가 꾸역꾸역 사회생활을 해서 번 돈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그리고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육류를 즐겨먹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할 입장은 아니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지만 육류보다 종류가 곱절 이상으로 많은 채소를 내 생애 다 먹어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채소에는 종류가 많고, 고유의 맛도 다양하기에 그들이 내 식생활을 비웃을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많이 드세요.’는 정말 구태연해진 옛날 사람들의 말이다.  


이제는 잘, 아니 내 뇌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먹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행복한 입맛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 오늘도 무엇을 요리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참고문헌

1. Nutritional Psychiatry: Your Brain on Food (Havard Education Blog, 2015년 11월)

https://www.health.harvard.edu/blog/nutritional-psychiatry-your-brain-on-food-201511168626

2. The Psychology of Eating (Adrian Meule & Claus Vögele(2013년): Frontiersin.org)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psyg.2013.00215/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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