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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Jan 06. 2021

#2. 한식 사랑이 곧 애국?

한식(韓食)에 대한 갑론을박

"한국 사람이면 한국음식을 먹어야지."

내가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아니 흔히 말하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왜 굳이 삼시 세 끼를 한식만을 고집하는가! 이왕에 한번 사는 인생, 세상 음식 다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을 텐데.


그리고,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은연중에 생각하는 한식(韓食)죄다 빨갛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함부로 먹지 말라는 고춧가루가 온 간데 다 쳐있는 그런 음식들을 내가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한식'이라고 지칭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도대체 한식은 무엇이며, 그들은 내 식습관과 입맛에 대해 왜 빈정대는지.


한국요리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찾아보니 한국요리(Korean food)는 곧 '조선요리'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음식(cuisine) 종류로서 "조선에서 발달한 고유하고도 전통적인 음식"을 뜻하며, "복잡한 궁중요리에서부터 지방 특산품을 이용한 특색요리, 현대의 맛있는 요리 등을 총망라한 재료와 조리법이 매우 다양한" 그런 음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멋들어진 정의를 해석해보면 우리가 한식이라고 하는 음식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서 비롯된 음식들이고, 한마디로 '한식은 뭐다.'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상당히 복잡하고 심오하며 엄청난 역사와 스토리가 숨어있는 듯한 에픽(epic), 그 자체인 듯하다.


아마도 한식의 가장 큰 특징은 코스요리가 아닌 밥, 국, 반찬 그리고 메인 요리 등을 한 상에 차려놓고 한꺼번에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의 요리 대잔치를 하듯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짓수가 많은 한정식 같은 요리는 한국이 정말 유일한 것 같다. 이 방식은 삼국시대 후기부터 밥, 반찬, 그리고 주식 또는 부식 형태로 모든 음식을 상위에 놓고 한 번에 먹는 형태가 일상식이 되었다고 한다. 반찬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그리고 12첩 반상으로 나뉘며, '전개형 방식'으로 삼시 세 끼를 먹는다고 부연하고 있다.


만약 내가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국 음식이 궁금해서 Korean food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먹는 방식과 가짓수가 상당히 복잡하고 생소할 것 같아서인데, 그래도 굳이 머릿속에 '한식'을 개념화해본다면 쌀을 주(Staple)로 하여, 반찬이라는 것을 곁들여 먹고, 반찬과 주식 또는 부식은 대부분 발효된 음식 정도로 발달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치 (출처:tastybg.com)

특히 이 발효(fermentation)라는 방식의 엄청난 수고와 시간이 요구되는 조리법은 삼국시대에 유행했던 방식이라고 누구나 아는 중국 고전, 삼국지(三國志)에도 명시되어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인(당시 중국인과 가장 잦은 접촉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당시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발효주, 된장, 절이거나 발효한 생선을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민족"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이후 삼국이 통일되어 통일 신라(676년)가 되었을 당시 특히 김치는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국교인 불교가 성행하면서,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 생활양식이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통일신라시대서부터 17세기 초까지는 대다수 한국 가정에 '무조건' 올라오는 빨간 배추김치의 형태가 아닌 총각무나 오이를 이용한 김치를 즐겨먹었다고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있다.


다들 익히 알다시피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고추(Chili peppers)는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왜구에서 의해 소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의 겉핥기 지식 함양을 위해 또다시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니 1614년(광해군 6년) 지봉 이수광이란 자가 지은 일종의 백과사전이 지봉유설에 '고추'가 처음 기록되어있고,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동아시아에 전파된 것으로 쓰여있다. 그리고 배추 역시 19세기 말 조선에 처음 소개되었고, 현대의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배추김치는 사실 그 역사가 삼국시대에 비롯된 온갖 김치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짧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한식

현재도 진행형인 해외 생활 속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의 소재가 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How can I make Kimchi?" 또는 "Where's a good Korean restaurant in town?"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나의 희한한 입맛을 그들이 알턱이 없을 테니, 물론 친근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예상한 대로 반 사회적 성격을 지닌 나라는 인간과의 나름 유쾌한 대화의 물고를 트려고 했을 터이니 "나는 코리안 바비큐(아마도 갈비나 삼겹살로 이해)를 너무 좋아해."부터 "김치찌개(김취치개)"를 좋아한다는 문장을 연이어한다.


내가 아는 한식은 코리안 바비큐나 김치찌개보다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불맛과 매운맛만이 한식을 정의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는데, 도대체 왜 이 매운맛과 얼큰함 그리고 불맛이 한국 음식의 자동 연상어가 되었을까.


2018년 CNN Travel에 소개된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40가지'라는 기사에 따르면 상위 3위가 해장국, 김치, 순두부찌개이다. 우선 죄다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이고, 고춧가루가 다량으로 들어간 얼큰하고 매콤한 한국인들의 소울푸드(영혼을 치유할만한 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선지 해장국 (출처: CNN)

매운맛. 사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매운맛을 찾기도 하고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모르겠지만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나의 한국인 지인들도 상당수가 이 매운맛을 즐기는 것 같고, "매운맛은 곧 한국음식"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매운맛 그리고 발효

인간의 혀는 쓴맛, 단맛, 짠맛 그리고 신맛 이외의 맛은 느낄 수 없다는 것 역시 생물시간에 익히 배워 알고 있는 기정사실이다. 매움을 느끼게 하는 이 캅사이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혀 감각기(receptor)에 TRVI라는 녀석을 활성화시키는데, 사람마다 이 감각기의 수용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활성화'정도인데,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거나 잘 즐기지 않는 사람이나 비슷하게 '매움'의 정도를 느낀다고 한다. 여기서 매운맛을 좋아하고 싫어함을 가르는 것은 바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매움을 느낀다는 말을 영어로 버닝 센세이션(Burning sensation)이라고 하는데, 이때 인간의 뇌는 '당신의 혀는 고통을 느끼고 있소.'라고 친절히 알려주지만,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고통을 쾌락으로 전환(hedonic shift)하는 방식이 빠르다. 따라서 이들은 매움으로 인한 고통을 쾌락, 곧 행복이라고 전환하여 수용하는 것이다.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뭐랄까 뭔가 묵직하고 칼칼함이 있는 그런 맛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매운맛을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즐기지 않는 편이다.


내가 최애 하는 태국 음식은 상당히 매운 편이다. 아직 익지 않은 어린 파파야를 얇게 채 썰어 허브와, 피시 소스 그리고 태국 고추로 버무린 쏨탐 타이를 가장 좋아하는데, 솔직히 한국음식보다 매우면 더 맵지 덜 맵지는 않다. 세계 5대 수프로 알려진 똠얌수프(꿍은 태국어로 새우라는 뜻인데,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 새우를 먹지 못해 톰얌제(제는 태국어로 채소라는 뜻)를 대신 먹는 편)도 매콤하다. 개인적으로 고추기름을 넣지 않은 지리같은 맑은 톰얌수프를 좋아하고, 이 수프에 초록색 고추를 잔뜩 넣어서 먹는다.


이렇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한국의 매운 음식, 아니 정확히 말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갛고 얼큰한 음식을 우선 잘 먹지를 못하고 꼭 먹으면 배탈이 난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비주얼이 내게 실망을 안겨주고, 실망을 극복하고 이윽고 한 숟갈 떠서 입으로 들어간 빨갛고 매운 대부분의 한식은 발효된 장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라 그런지 내 몸이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먹고 난 후 입에서 맴도는 군내가 싫어서 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발효음식을 싫어하나. 이 생각도 해보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온갖 하드 치즈 역시 발효 음식이다. 김치를 비롯한 한국의 온갖 장류는 '발효'라는 과정을 거친 몸에 이로운 음식임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내 생각엔 발효가 되는 재료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치즈는 우유에 있는 유당(milk sugar)이 젖산(lactic acid)을 만들어 내는 반면 김치는 채소(대표적으로 배추)의 탄수화물, 특히 채소의 당이 젖산을 만들어내면서 신맛이 증폭된다. 이 역시 나라는 인간을 과학적으로 분해하지 않은 채 내 마음대로의 생각이긴 하나, 아마도 젖당이 유발되는 재료 때문에 같은 발효 음식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맛이 본능적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발효음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치즈도 브리나 까망베르는 굳이 내 돈 들여 사는 편은 아니고, 술 역시 발효주인 와인이나 맥주보다는 증류주인 소주 또는 진(Gin)을 선호한다. 일명 액기스를 좋아하는 입맛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음식

아마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는 이유는 절대 기죽지 말아야 할 일종의 사명감이 내재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절대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유 때문에 시고 짜고 달고 쓴맛은 디폴트 값으로 매겨놓고 여기에 고통의 쾌락까지 더할 수 있는 매운맛까지 가미된 푸짐한 식사를 전투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야만 짧은 것도 모자라 이 치열한 인생에서 화끈한 보상이 뒤따르는 것만 같아서라는 기분이 드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나의 생각이긴 하다.


그런데 전투적인 식사를 하고 난 뒤 입안이 얼얼하면 텍스쳐에 환장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그다지 달콤한 입가심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얼얼함 그 자체가 디저트일 테니. 그런데 나는 디저트를 정말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디저트로 화채나 수박 따위를 내오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사람들은 내가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 오만하고 사대주의적인 기가 찬 인간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외국음식만을 선호하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좋아하는 한식이 단지 당신들이 즐겨먹는 얼큰하고 매운 음식이 아닐 뿐이다. 나는 한식당을 가면 우선 반찬을 잘 안 먹는다. 심지어 반찬을 달라고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구절판이고, 내 인생 소울푸드는 바로 마늘과 참기름을 넣지 않은 매생이 굴국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싫어하는 빙떡은 사족을 못쓸 정도로 좋아한다.

매생이 굴국 (출처: 농민신문)

아마 나는 인생을 화끈하게 전투적으로 또는 열정적으로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성향이 입맛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누구와의 끈끈한 교류도 거부한 채 미지근한 템포로 홀연히 조용하게 내 인생에 대한 의미 부여하며 사는 것이 목표 그 자체라 그런지 재료의 맛을 느끼기 어려운 얼큰하고 매운맛의 매력을 알기 어려울 뿐인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국가가 앞장서서 한식 세계화를 외쳤다. 세계화된 한식(globalised Korean food)인지 전 세계 음식을 한식화(Koreanised global foods) 하자는 건지 주제와 목적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한 나라의 음식은 그냥 맛있으면 누구나 알아서 자발적으로 찾는다고 믿는다.


한식을 먹는다고 애국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억지인 것 같다. 맵고 칼칼 빨간 음식들에 둘러싸여 빛을 발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지혜와 맛이 녹아있는 다양한 한식 레시피를 발견해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나 말고도 이런 일 신경 쓰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한식은 다양한 입맛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음식이다. 나랑 비슷한 입맛을 지닌 사람들도 무궁무진한 한식을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1. 김치 https://en.wikipedia.org/wiki/Kimchi

2. Spicy food https://www.mcgill.ca/oss/article/did-you-know/why-do-some-people-spicy-foods-not-others#:~:text=Spicy%20foods%20contain%20a%20chemical,them%2C%20from%20person%20to%20person.

3. CNN Travel https://edition.cnn.com/travel/article/best-korean-dishes/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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