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각국이 가진 고유한 것이기에 존중해야 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문화상대주의라고 배웠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중후반, 피자헛, 그리고 나중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GIF는 나름 고급진 서양식 식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달디단 고구마 무스가 잔뜩 올라간 피자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가공 치즈 소스가 듬뿍 담긴 나초칩이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마냥 우습기만 한데, 아직 서양의 문물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그것이 마냥 '서양의 것'이기에 이유 없이 좋아했고 으쓱대곤 했다.
내 머리통이 덜 익었던 90년 중후반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한 지금의 서울, 아니 전국 팔도에는 피자집과 햄버거집으로 차고 넘친다. 거기에다가 한국인들의 전통음료는 커피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카페는 왜 이렇게 많은지.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사는 국가'라는 허우대를 갖춘 나름의 선진국이 되었기에 우리가 선망했던 '서구의 선진국들에서 호사스럽게 즐기고 있는 파인 다이닝도 한번 즐겨보자꾸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예전보다 만연한 듯하다.
미슐랭 가이드 별점 기준 (출처: 미슐랭 가이드)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학교에서는 분명히 각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배웠는데, 이상하게도 이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라는 성역 같은 세계에서는 서양의 것이 절대우위를 지배하는 듯 하다. 파인 다이닝을 지배하는 자들은 요리는 각국 고유의 것을 고수하는 것은 용인해줄 수 있으나 음식을 내어오고 즐기는 방식은 마치'서구 유럽의 방식'을 따르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듯 하다. 게다가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에도 상륙하면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파인 다이닝 식당을 여러 개 갖춘 국가가 되려면 서양식 코스요리의 형태를 갖춘 것을 정답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파인 다이닝 업계만 놓고 보았을 때 '서양의 것'이면 세련되어 보인다는 우리의 밑도 끝도 없는 인식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또는 이 장르의 기원을 둔 오뜨 퀴진(Haute Cuisine)이란 말은'흰색 식탁보로 뒤덮은 식탁과 의자로 즐비한 매우 수준이 높고 값비싼 레스토랑(restaurant)을 의미하며, 주로 상류층의 고객들을 접대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레스토랑이라는 어원을 조금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식당(食堂), 밥집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프랑스어 Restaurer에서 파생되어 19세기 초 레스토랑(Restaurant)이란 영어 단어가 고착화되었다. 여기서 발음도 하기 어려운 restaurer는 '새롭게 하다 (to renew) 또는 복원하다 또는 기력을 되찾다(to restore)'라는 뜻이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은 1765년 파리 루브르 근처에 블랑져(Boulanger)라는 곳이다. 이 곳의 주인인 불랑져(Boulanger)씨는 라틴어 "Venite ad me omnes qui stomacho laboratis et ego vos restaurabo. (배고픈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내가 구해줄 것이니.)"를 모토로 하여 주로 수프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따라서 레스토랑이라는 말은 라틴어 레스타오라보(Restaurabo) 즉 구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마도 블랑져씨는 레스토랑이란 단순히 헐거운 위장을 채우는 곳만이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안식처 같은 곳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레스토랑만 해도 정말 다양한데, 한국에도 포장마차, 분식집, 기사식당 등 여러 개가 있듯 서양의 레스토랑도 목적과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나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비스트로(Bistro)는 캐주얼한 프렌치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주로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주 음료로 판매하는 곳이다. 그리고 쁘리튜르(Frituur)는 벨기에에 있는 일종의 캐러반식 튀김 전문 분식집으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고 감자튀김에서부터 도넛 등 온갖 음식을 죄다 튀겨서 파는 일종의 튀김 스낵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피제리아(Pizzeria)는 화덕에 구운 피자와 간단한 음료를 파는 식당이고, 오스테리아(Osteria)는 주로 저녁 장사를 하는 캐주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제철음식을 주요리로 제공하는 트라토리아(Trattoria)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어렵고 느끼한 양식(洋食)
우리가 접하는 양식(洋食, western / 그런데 양식 또는 경양식이라는 말의 기원은 개화기때 도입된 말이다. 일본은 메이지 혁명으로 서양의 것을 동경하고 탐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서양의 음식을 일본식으로 개조해서 먹는 경양식 메뉴의 일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함바그 스테이키, 나폴리타나 파스타 같은 것들 말이다.)은 주로 서유럽 음식이다. 그리고 이 웨스턴이라는 것은 서유럽 식문화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유럽 음식과 북미식의 음식까지 통틀어 '서양식'으로 총칭한다. 아마도 1538년 세계 최초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던 헤라더스 메르카토(Gerardus Mercator, 플란더스인 - 지금의 벨기에 북부지방)의 지도때문에 지금의 방향적인 개념, 동양 그리고 서양이 고착화 된 것 같다. 그의 지도를 보면 유럽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신대륙)은 서쪽에 있고,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현재의 '아시아 대륙'은 동쪽에 있어서 유럽과 북미 음식을 서쪽 바다 건너에 있는 음식, 즉 '서양식 (western)'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헤라더스 메라카토의 초기 지도 (출처: National Geographic Society)
이 서양식이라는 것은 주로 육류를 기반으로 한 음식, 예를 들면 스테이크 같은 덩어리 단백질들이 메인 음식이고, 여기에 곁들이는 소스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개념화하고 있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라서 잘 모르지만, 스테이크를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안심이나 등심 중 한 부위를 시킬 것이고 단백질 덩어리를 굽는 스테이크만 먹으면 '맛'이 안날테니 이를 보충하기 위해 소스를 추가하는 것이다. 샐러드의 드레싱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잘라놓은 채소만 먹으면 아무런 맛이 없으니 이를 보충하기 위해 드레싱을 그 위해 얹어서 먹는 것이다. 그리고 서양 음식은 유제품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밀을 이용한 빵과 감자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발전되었다.
신기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은 바로 콜럼버스의 대항해시대 이후 대대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한답시고 싸돌아다니면서 감자, 토마토, 가지, 초콜릿, 파프리카, 호박, 차, 커피, 증류주 등 유럽 토양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곡물, 경작물 그리고 향신료를 대거 착취해 유럽으로 가지고 온다. 그리고 비로소 유럽의 식음료 문화가 대대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그리고 당시 신대륙에서 넘어온 각종 먹을거리들을 탐욕스럽게 즐겼던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궁정 요리가 발달하는데, 이때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다양한 음식을 식탁에 한꺼번에 놓고 먹었던 방식인 서비스 알 라 프랑세즈 (service a la francaise)에서 음식의 온도와 짠 맛 그리고 단 맛 순서대로음식을 먹는 서비스 알 라 뤼스 (service a la russe)가 도입되었다. 이 방식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스요리'이다. 당시 서유럽 귀족사회를 휩쓸었던 식문화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가속화되었고, 신분에 상관없이 부르주아, 보헤미안, 귀족 사회들을 골고루 충족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 문화가 파리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식재료의 도입으로 식재료 자체의 맛과 식감은 살리면서 '풍미'를 더하기 위해 소스를 끼얹어 먹는 식습관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방식을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생소하고 느끼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조리법 역시 굽고 찌고 데치는 형태가 아니라 물론 기름에 굽는 방식도 있지만 콘피(confit, 따뜻한 기름에 천천히 재료를 조리하는 방식) 또는 수비드(sous vide, 진공포장을 해서 조그마한 따뜻한 욕조에 조리하는 방법) 등 우선 질감(texture) - 대부분의 서양 음식은 부드럽고, 또는 바삭바삭하거나 아삭아삭한 것들에 매우 집착 - 을 완성한 후 맛은 소스(베르네즈 소스, 페퍼 소스, 버터 소스 등)로 충족하는 것을 서양 음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나는 식음료업계 종사자가 아니기에 나의 매우 빈약한 설명에 대해 반박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건 내가 관찰한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재료에 갖은양념으로 맛을 가미하여 한번에 조리하는 방법이 대부분인 동양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면 소스를 끼얹어 먹는 서양식의 식사 방식, 게다가 소스의 8할은 녹인 버터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유제품을 즐겨먹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위장에 큰 부담이 갈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인의 소장은 서양인보다 길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채소와 섬유질이 높은 곡물을 위주로 식생활을 영위해온 우리의 배가 당연히 소화분해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유제품과 육류를 만나면 힘들 수밖에 없고, 이를 '느끼하다 혹은 기름이 꽉 차서 온 몸이 구역질이 날 것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유럽인 지인들은 한국음식을 먹고 싱겁다(blend)하다고 표현할 때가 많은데, 아마도 이것은 그들이 위를 채우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피자와 파스타는 왜 비싼 것인가.
출처: Tripadviser
전례 없는 팬데믹, 코로나 19 때문에 한국을 가지 못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래서 최근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을 갈 때마다 피자와 파스타 값을 보고 흠칫 놀라곤 한다. 물론 미스터피자와 이마트에서 파는 피자를 먹는다면야 가격에 대해 툴툴대지 않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피자와 파스타는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고가다. 그런데 실망스러운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을 지불하고도 맛이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피자와 파스타는 사실 파인 다이닝과는 매우 거리가 먼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에 의한 음식으로 시작되었다.
피자는 로마제국시대에 로마인들이 넓적한 빵이라고 부른 빠니스 포카치우스(Panis focacius)로부터 유래된 음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피자형태가 갖추어진 때는 16세기이고 탄생지는 바로 나폴리다. 당시 피자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급급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으로 길거리에서 판매되었었다. 기본적으로 먹다 남은 식재료를 그것도 남은 반죽에 얹어서 화덕에 구워서 팔던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그러다가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얹어진 조금 더 고급진 피자, 어느 피제리아나 가도 메뉴판 첫 번째에 안착된 마르가리따(Margherita) 피자는 1889년 6월 11일 나폴리를 방문했던 당시 이탈리아의 마르가리따 여왕을 기리기 위해 피자 전문 요리사였던 피자 이올로 라파엘 에스포시토(Raffaele Esposito)가 만들었다. 에스포시토는 이탈리아의 삼색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토마토소스, 바질과 모짜렐라 치즈를 올려 피자를 만들었고, 여왕에게 이 피자를 선사한다는 의미로 이름도 마르가리따로 지었다.
파스타는 쉽게 말해 이탈리아식 국수다. 파스타는 이탈리아 말로 Paste , 즉 찰진 덩어리를 의미하는데, 곧 국수 반죽 덩어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베네치아인 마르코폴로가 중국과 아시아 여행을 마친 후 13세기 중국에서 유행하던 국수(noodle)를 들려온 것에서 파스타의 역사가 시작된다. (맞다. 우리가 학교에서 이미 배운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그 안에 국수에 대한 내용이 있다.) 파스타는 18세기 이탈리아 전역에서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는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고, 반죽이 조금 덜 익어 씹히는 식감을 추구한다는이 알덴떼(al tente, 이탈리아어로 씹힌다는 의미)조리방법은 19세기 말 도입되었다.
그런데 서민들을 위한 이 음식들의 가격이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터무니없이 비싼 것인가. 잔치국수나 파스타나 실상 재료값은 비슷할 것 같다. 파스타는 기본적으로 강력분(00 flour)과 계란 그리고 올리브유와 소금이 약간 들어가는데, 소면은 계란이랑 올리브유 대신 물이 들어가는 것이고, 3000천원짜리 토마토 소스 한 캔이면 2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파스타 소스는 도대체 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1만 원 이상에 팔리는가. 아마도 자릿세와 재료값(송로버섯이나 포치니 같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파스타는 유럽 어딜 가나 가장 싼 음식이고, 가난한 학생들도 호주머니 부담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도 주로 시켜먹었던 그리고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다녔던 음식도 파스타다.
2010년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맛있는 파스타 집이라고 알려진 인사동의 뽀모도로에서 엄마랑 스파게티 뽀모도로를 먹은 적이 있다. 우선 당시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흠칫 놀랐고,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소스 양에 두 번 놀랐다. 또 신기했던 점은 당시 크림 파스타가 상당히 유행했던 때라 허여 멀건한 파스타가 다른 테이블들을 점령했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로마노 까르보나라 파스타가크림과 햄으로 뒤덮인 파스타라고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파스타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비빔국수랑 비슷한데, 비빔국수보다 소스의 양, 즉 무침의 정도는 좀 덜하고 국수는 조금 설익게 만들면 누구나 손쉽게 조리가 가능한 음식이다. 그리고 건면 파스타도 시중에 많아서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모양을 사서 10분 내로 뜨거운 물에 조리한 후 자신이 선호하는 소스와 버무려 먹으면 된다.
한국에서 파는피자와 파스타의 가격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와 같다.
서두르면 안될것 같은 아시아 음식
출처: Rinag Food
한식을 비롯한 동아시아, 동남,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동 음식까지 아시아 전역의 음식들은 요리 경연대회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양념을 베이스로 한 국물요리가 많은데, 진짜배기 국물을 위해서는 육수를 뽑는 시간만 하루 이상, 그리고 거기에 넣는 각종 재료와 음식들을 손질하는데만 반나절 이상이 걸리기에 1-2시간 내에 결판을 내야 하는 요리 경연대회와 안 맞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 대륙은 정말 크고, 세계 제1,2위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에 힘입어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만큼 다양한 식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은 쌀, 생강, 마늘 참깨, 고추, 대두 등을 주 재료로 활용하여 볶고, 찌고, 튀기는 방식을 위주로 조리하는 음식'을 아시아 음식이라고 위키피디아는 규정하고 있다. 지역별 특성을 굳이 구분해보자면 주식으로 먹는 쌀의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에서는 주로 바스마티(건조한 쌀)를 섭취하는 반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는 재스민 라이스를 중국은 재스민 라이스와 비슷한 형태지만 향이 다른 안남 쌀을 우리나라와 일본은 쌀 가운데 가장 윤기가 나고 찰진 짤막하고 통통한 쌀을 섭취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허브와 향신료 음식의 유무로 아시아 음식을 분류할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허브와 향신료보다는 뿌리채소 그리고 해산물을 이용한 조리법이 발달한 반면 중국과 동남아, 서남아 그리고 저 멀리 중동은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를 이용한 음식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조리법도 서양요리에 비해 투박하고, 계량화된 레시피가 거의 없으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조리법이 많다. 한 때 한국 음식을 계량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한 큰 술 두큰술등의 단위로 계량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이 방법이 편리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 방식을 썩 좋아하지않는다. 사실 이 계량이라는 것은 조리법 특성상 꼭 필요한 제과 그리고 제빵 말고는 개개인 선호에 따라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음식에서 이 계량이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본인 선호에 따라 양껏 또는 조금 넣어서 조리해도 실패율이 서양 음식보다는 확연히 낮다.
내가 가장 즐겨먹는 아시아 음식은 태국식이다. 자카르타에 7년 넘게 살고 있지만 사실 인도네시아 음식은 대부분 고렝안(튀김음식)이 많아서 자주 먹지는 않는다. 혹자는 인도네시아 음식이나 태국 음식이 거시서 거기라며 하나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나는 태국 음식의 상쾌함과 레몬그라스, 갈랑가, 칼리만시 이파리 등으로 맛과 향을 낸 음식들을 너무 좋아한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게 정말 좋아하는 것이란 말이 있듯 내가 태국 음식을 떠올릴 때, 그냥 이유 없이 좋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아서 해산물과 각종 채소로 만든 음식이 지천에 널린 태국 음식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시아 음식이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나는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탕류를 잘 먹지 않는다. 국물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건더기만 싹 건져 먹어서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미움을 사곤 했는데, 내가 태어나서 국물을 거의 다 먹을 정도로 '물'이 많이 었던 음식이 바로 똠얌 수프이다.
2013년경 방콕에 있는 친구 눗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미얀마 출신의 요리를 정말 잘하는 가정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한 번은 나와 눗, 그리고 미얀마 친구와 함께 셋이서 새벽 5시쯤 재례시장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똠얌 수프에 들어가는 레몬그래스, 갈랑가 등 각종 허브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그 시장은 태국 전역에서 들여온 온갖 채소, 생선 그리고 육류는 물론 망고, 망고스틴, 파파야 등 열대과일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처럼 차고 넘쳤고, 그곳에서 각종 재료를 파는 상인들은 한국 상인들 못지않은 빠른 손놀림과 익살스러움을 갖추고 있었다. '고달픔을 삭힌 역동적인 삶'을 제대로 만끽했던 1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시장을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왔는데 미얀마 친구는 내게 똠얌 수프 양념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돌절구에 각종 허브류를 눈대중으로 계량한 후 사정없이 빻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양념을 팔팔 끓인 물에 넣고, 버섯과 토마토 그리고 여러가지 채소를 넣은 톰얌제(제는 태국어로 채소라는 뜻)를 아침식사로 만들어 주었는데, 나는 눈치 없이 거의 한 솥을 비웠었다. 지금도 이 음식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힘이 고일 정도니,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맛있는 음식 5순위에 들어갈 정도다.
결론은 택일 불가
날씨, 기분 그리고 기운에 따라 당기는 음식이 다르다. 그래서 서양식 또는 동양식 음식 중 굳이 하나만 고르라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을 때, 둘 다 좋아할 때가 달라서 하나만을 딱히 고를 수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마치 두 남자를 사랑해서 한 명으로 만족이 안 되는 탐욕스러운 팜므파탈처럼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치관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인데, 나는 내가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이 모든 것들을 조사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외모와 몸뚱이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패션과 사치품을 쟁이는 취미보다 먹는데 사치를 부리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선택이 불가하다. 동서양의 문화 그리고 남반구와 북반구를 가로질러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들을 통해 내 입맛에 잘 맞는 것들을 찾고 이것들을 음미하여 내가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는 것이 즐겁고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렇게까지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몰랐어서.
그리고 굳이 파인 다이닝일 필요도 없다. 제 아무리도 근사하고 값비싼 파인 다이닝이더라도 포장마차에서 먹는 잔치국수보다 감동이 덜할 때가 있다. 너무나 힘겨웠던 하루를 마무리할 때 하루 종일 당겼던 음식을 입 속에 고스란히 넣었을 때 밀려오는 감동은 파인 다이닝이 아닌 곳에서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물론 파인 다이닝을 통해 식음료업이 발전하는 부분이 있고, 어느 정도의 자체적인 소양을 쌓고 교육을 목적으로 파인 다이닝이라는 근사한 장르를 즐기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그리고 파인 다이닝업계에서도 지리에 구애받지 않고 동서양의 식재료를 아우른 퓨전음식들이 유행하고 있다. 2018년 겨울 미식가의 나라, 벨기에에서 오랫동안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Hof van Cleve 레스토랑을 갔었다. 아뮤즈 부쉬부터 디저트 까지 거의 20가지 음식이 5시간동안 나와서 배를 움켜쥐며 밥을 먹었던 곳인데, 메인 음식의 소스와 식재료가 대부분이 다시마와 콤부차 등을 이용한 것들이었다. 내가 딱히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는 신기했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시도도 해보기 전에 냄새와 생김새를 가지고 편견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편협한 나의 사고를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아직도 내가 먹어보지 못한 동서양 음식에 끊임없이 구애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