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월의 앤 Sep 06. 2022

#5. 선진국과 후진국 1

21세기, 모호해진 위선의 개념  - 선진국

1990년대 초중반 내가 초등(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한국은 소위 후진국 혹은 중간소득국으로 분류되었기에, 선진국을 위해 나아가자는 대대적인 국가 선전과 교육이 판을 치던 때였다. 학교에서 세뇌하듯 '선진국'의 구호를 외쳤을 그 당시, 고도의 산업화 그리고 높은 삶의 질 및 생활 수준을 달성한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로 영어권 국가들이 거론되었고,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모범적 선진국의 사례로 머릿속에 주입되곤 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기독교를 믿는 앵글로 색슨인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이민국가를 '최고의 선진국'으로 인식했기에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내 또래들은 영어권 국가들을 크게 선망했고,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거의 전부(팝송, 영화, 드라마, 정치 시스템 등)를 남녀노소할 것 없이 동경했다. 그리고 이 트렌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다.  


그러다가, 1997년 한국은 난데없는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다. TV에서는 국가파산이니, 우리나라가 빚더미에 앉게 되어 너 나할 것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대국민 호도 운동을 진행했다. 또 다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그 명목 하나로 국민들은 대대적인 국가경제 구출 작전에 돌입하였으나,  IMF의 혹독한 경제 사회 구조조정 피할 수 없는 올가미었다. 정말 아니러니한게 하나 있다면, IMF의 구제금융 조건인 '국가 경제 구조 변형 프로그램(SAP: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me)'은 국가 경제 구조 및 시스템의 체질개선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선진국형' 경제 모델의 첫 도입, 그 신호탄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IMF는 우아한 채권자로서 비통한 슬픔에 빠진 한국이라는 채무자에게 수많은 은행 통폐합 그리고 능력주의의 경제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업의 고용 및 인사 운영 방식 체질 개선을 고도화된 자본주의형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악랄하게 제안했다. (IMF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당시 한국의 고질적인 국가경제 문제 (낮은 신용등급, 높은 부채율 등), 외교적 문제 등이 얽혀있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이므로 생략한다.)


다만, 나의 경제적 식견은 매우 초라하여 감히 IMF  나으리들이 오랫동안 고안하고 처방한 고차원적인 국가경제 모델을 논하기 주제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형' 경제모델에 대한 나의 견해를 몇 마디 밝히고자 한다.


선진국(先進國)의 사전적 의미는 '먼저 나아간/앞서간 나라'이고, 영어로는 '개발이 완료된 국가(developed country)'로 '선진국'을 표현한다. 우선, developed countries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지표/통계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국민 1인당 총생산 및 각종 사회경제 지표 (복지, 교육 수준, 국가 부채비율, 거버넌스 등) 등 숫자로 표기 가능한, 즉 눈에 보이는 직관적인 분야들을 총망라하였을 때 국제사회가 정한 일정 수준의 평균 이상이면 '선진국'이라는 멋지고 으쓱해지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숫자와 별로 친하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자태를 뽐내는 아라비아 숫자들 역시 그다지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판은 자제하려고 하였으나, '숫자'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다방면으로 생각하는 것이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지표(숫자)화가 가능한 통계로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을 때로는 함부로 분류하고, 국가의 전통, 역사, 문화 등과 관계없이 발전 가속화, 빈곤 퇴치, 국제화 등 '세계화'를 명분으로 다양성은 철저히 무시된 채 '정형화된 세계화'를 수많은 국가와 부족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진정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이 모든 국가를 아우르며 자유롭게 국경이라는 '금'을 넘나들 수 있는 경계 없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식민 열강들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어 그들의 악랄한 경제 수탈 행위는 용서하지 않아도, 일정 부분 '고도 산업화'를 먼저 이뤘다는 점을 인정하여,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소위 똑똑한 국가들의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도입하여 표준화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역사학자 왕궁우는 과거 중국은 로마제국에 견줄만한 수많은 제국(Empire)을 수많은 전쟁을 통해 통일 그리고 멸망이라는 일련을 과정을 거치면서 바다보다는 육지에 관심을 쏟았고, '굳이 저 알 수 없는 바다를 건너면 뭐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발전의 한계에 닿아 결국 나태함의 나락에 떨어졌다고 보았다. 결국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청나라는 대항해의 시대를 거쳐 신세계를 발견한 서구 열강(해군이 튼튼한 국가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에 의해 굴욕을 맛보았고, 결국 서구 열강들이 제시한 '국가(states)'에 대한 논리적이거나 법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결국 영토 일부를 빼앗겼다고 분석했다. 지리적 요소, 특히 해양국가의 필연적 지배 그리고 발전에 대해 오랫동안 설파해온 노령의 역사학자, 왕궁우는 오랫동안 종교전쟁 및 내전을 겪은 유럽 땅에서 군주와 귀족들이 오랜 합의를 걸쳐 국가(공화국이든 왕국이든)라는 개념을 면밀히 구축하고, 국가 간 무역과 왕래를 제도화하였기에, 설득 논거 마련에 성공한 것이고, 반대로 이러한 개념이 있을리 만무한 여타 지역의 국가들은 매우 쉽게 설득당해, 결국 지배당했다고 본 것이다.  


서구 해양강국이면서 선진국인 나라들의 발전 역사를 살펴보면, 산업화의 시기가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빨랐다. 산업화는 곧 대량생산의 시대가 도래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속도전과 효율성이 요구되는 방식이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한국도 그렇게 오랫동안 염원하던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기사와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불필요한 애국심을 호도하며, 한 세대에 걸쳐 이렇게 '빨리' '많이' 발전했다는 것에 자랑스럽게 여기자라는 세뇌를 하고 있는 듯하다. K-Culture의 매력과 첨단기술은 '선진국'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우쭐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지금, 과연 우리가 염원하던 지표상 선진국에 도착한 현재, 우리는 과연 만족하면 행복한지 되물어볼 때인 거 같다.


서두에서 말한 최고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앵글로 색슨들의 국가, 그리고 그 가운데 엄연한 선두인 '미국'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라는 책에 '미국은 사유하지 않는 나라'라고 매우 경멸적인 어조로 표현한 부분이 있다 (독일인의 미국 관찰을 언급). 즉 나라가 돈이면 다 용서된다는 기조하에 철학과 생각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이며, 거의 내가 알아서 잘해야만 살 수 있는 나라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속내를 모른 채 지표상으로만 이 거대한 성조국을 보면, 세계 일등 국가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고, 매혹적인 대중문화와 대단한 경제력과 국방력이 세계를 장악하는 굉장히 '아름다운(美)' 국가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에 무게중심을 많이 두는 내 성향과는 매우 맞지 않는 나라이고, 내 눈에는 쉼 없이 소비하고 낭비하는 것이 거의 미덕으로 여기는듯한 모습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간 나라, 즉 선진국이 모습이 과연, 소비의 선택폭이 넓어져 풍족함과 안락함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김누리 교수를 비롯한 소위 유럽식 선진국 모델을 설파하는 학자들과 일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독일이나, 북유럽식 복지모델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영국 이외 대부분의 서유럽 및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 민주주의 시스템, 즉 인간의 기본권인 생존, 교육, 의료 등을 나라에서 거의 대부분 지원하되 이 사회계약에 따라 내가 번 수입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나라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 즉, 어느 정도 수입 감소를 감안하고, 재물적 희생을 감수해야 운용 가능한 시스템이란 소리다. 유럽에서 조차 부자가 되지 못해 탈세하고, 심지어 세금을 덜 내려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부자들도 많다. 그리고, 유럽 내에서도 미국의 블링블링한 삶을 꿈꾸는 청년층도 과거에 비해 많아졌고,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 나라가 요구하는 많은 조치들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유럽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70-80년대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들부터 대거 노동이민을 받아들였고, 최근 들어서는 '박애정신'에 꽂혀서 난민 및 정치망명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유럽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 그리고, 시스템적인 차별 (유럽 정당에 유색인종 정치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도 존재한다는 것이 유럽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다. 그리고, 막대한 납세가 유럽형 선진국 모델이 디폴트인데, 과연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엄청나게 강한 한국인들에게 적합한 모델인지도 모르겠다.


발전의 정도만으로 선진국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 의미하는 '발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재고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앞으로 나아간 나라'란 '인식'이 자유로운 나라다. 미국은 차치하고, 나의 10-20대 보낸 유럽의 경우, 학벌, 직업, 나이, 성별에 따른 인식의 차별 그리고 제도적 차별이 한국에 비해 크지 않다. (물론 간혹 인종 - 다르게 생긴 것에 대한 직관적 차별이랄까 - 에 대한 차별은 빈번하게 존재하지만 말이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 물론 논쟁에 휩싸일 때는 다시는 안 볼 듯 싸우긴 하지만 - 나를 휘감는 그 어떤 감투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지 않고, 나의 말과 행동 그 자체로 나를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접근빙식이 일관적이고 Fair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소위 선진국이란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공유하자면 그 국가 국민들은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깔보지 않으며, 인간은 존엄하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뇌 안에 장착되어있다. 또한, 그들은 남한테 자랑하기 위해 살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게 뽐내기 위한 경제 사회적 지표보다는 촘촘하고 되도록이면 포용적이며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합의와 개정을 쉼 없이 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며 당연한 국가라는 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영국이나 벨기에에서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 또는 가수가 다른 나라에서 이만큼 인정받았다' 또는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 달성'하였으며, '30:50 클럽'에 몇 번째로 가입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30:50 클럽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인정을 쓸데없이 갈구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 자체가 온전하게 나로서 존재하며 존엄하게 살아가는데 타인의 시선과 평가 따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경제) 선진국이 되었더라도 너무나 많은 피로감과 불안함에 빠져든 2022년 가을의 한국. 우리의 인식을 과연 어떻게 자유롭게 할 것인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볼 때인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