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부터 주중과 주말이란 개념을 나누어 우리 생활에 적용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일 거라 짐작하지만 - 5일을 꼬박 일하고 나면 나머지 이틀의 기간, 주말엔 되도록이면 활동반경을 넓히지 않고 쉰다. 그간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듯 말이다.
여러 번 번복 후 재검토에 들어간 갑툭튀 정책인 주 69시간제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한국 언론과 소위 지식인들은 단골 비교대상인 서유럽 사례를 언급하며, 소위 선진사회들은 이미 주 4.5일제 또는 4일 제를 정책으로 실시한다며 69시간제를 비판했다. 게다가 이미 OECD 국가가운데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이 그것도 기업이 아닌정부에서 노동시간의 양을 OECD 평균 이상으로 제안하는 것 자체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 처음 주 69시간제를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여러 기사들을 탐독했는데, 도무지 정부의 논리는 납득 불가였다. 직업군에 따라 근로자와 사측의 충분한 협의와 합의하에 노동의 시간을 늘리는 것을 용인하는 거면 몰라도 '한방에 일을 몰아서 하고, 한방에 왕창 쉬면 된다'는 논리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진사회에 가까워질수록 근로자든 사측이든 서로의 기본권을 존중하되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주 69시간제의 일괄적용 시도는 사회적 대화와 타당성 조사라는 기본 뒷받침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 어지간히 애쓴 촌스럽고 억지스러운 정책이 결국엔 실패로 귀결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벨기에에서 살았을 2011-12년 당시, 벨기에 상원에서 - 지금은 사라진 - 3개월 동안 인턴생활을 했던 하우스메이트가 있었다. 나는 2주에 한 번씩 금요일 수업이 있어서 어떤 날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집에 붙박이로 있었던 적도 많은데, 그 친구는 매주 금요일이면 12시에 귀가해서 고향으로 갈 준비로 분주했다. 그 친구의 말이 대부분의 벨기에 관공서와 회사들은 주 4.5일제를 실시해서 금요일은 사실상 오전에만 일하기 때문에 자기처럼 브뤼셀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가지고온 짐가방으로 사무실 공간이 좁아진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이 우리 아파트가 브뤼셀 북역 근처에 있었는데, 금요일 오후 1시부터 짐가방을 든 회사원들이 북역에 북적이곤 했다.
그리고, 이미 10여 년 전에도 벨기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유럽에서는 소위말하는 부분시간제 - Part Time employee -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말하는 Nine to Six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사람들만큼 실제 노동환경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근로자의 직업군 그리고 개인 사정 등에 따라 노동의 질 - 즉 하는 일과 업무 수준 등은 동일하나 - 사측과의 계약 시 일정 근로시간(반일 또는 주 3일 등)을 정해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월급이 아닌 시급으로 계산해서 급여를 제공할 때 사실상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나 풀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나 시급은 같다. 사측과의 파트타임제로 계약하더라도 내가 제공하는 노동의 질은 풀타임제와 피차 같기 때문이다.
당시 벨기에의 근로환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으면서 개개인의 가치관, 생활환경 또는 선호도의 따라서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 합리적이란 생각을 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벨기에든 아니든 서유럽에도 흔히 말하는 꼰대 상사, 일중독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직업군에 따라 법적 근로시간이 정해놓은 시간의 2배 이상을 해야 하는 그런 일들도- 주로 금융권을 비롯하여 거대 자본이 연관되어 있는 직업군일수록 그렇다. - 있다. 그리고 자기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주중과 주말의 개념 없이 언제든 내가 이용가능한(available)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근로자의 휴식시간도 노동시간만큼 비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각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저마다 다르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체력 또는 정신적 강도에 따라서 사람마다 에너지의 질량이 비교적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마다 한계치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내가 일하면서 만난 어떤 상사들은 자기의 에너지 - 혹은 내키는 기분 대로 - 에 맞추어 자기 팀원들을 달달 볶아대며 채근한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타인을 다그치며 자기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무리해서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의 길이란 점이다. 심지어는 잘 쉬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 마저도 일에 쓰길 바라는 상사들의 비합리적인 요구에 내가 부흥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내 경험상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볶아대는 사람일수록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스스로 학대하는 수준이 병적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능력부족인 경우도 많다.
자꾸만 채워 넣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며 무엇이든 최대치를 항해 달리는 지금 현대사회에서 나는 되려 조금씩 비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무엇인가를 하면서 또는 그간 해보지 못한 것을 새로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반면, 나는 오히려 내가 익숙한 곳에서 나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쉼이 필요한 사람이다. 피곤할 때는 무리하지 않고 쉬어야만 주중에 사회와 약속한 근로를 충실히 행할 수 있고, 근로는 내 삶의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기에 근로활동을 통해 내가 5일 내내 고대해 온 온전하고 아름다운 쉼의 시간을 가진다. 이 쉼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재정비하고, 이 과정을 통해 가끔씩 실종되는 살아감의 의미와 줏대를 되찾아 되새긴다. 이 것이 나의 기본 주중-주말 사이클이다.
이렇듯 잘 쉬어야만 내가 가진 능력의 최대치가 우연한 기회에 발휘되고, 흔히 말하는 번뜩이는 생각들도 오히려 쉴 때 많이 떠오른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더 이상 '양'에 대한 필요이상의 논쟁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뭔가 발전에 거의 최대치에 와버린 지금, 우리 모두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양이 아닌 '질'적인 면을 토론하기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