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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Jun 19. 2023

마음에 녹이 설었다.

애매한 번아웃성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날

요 몇 주간 잠을 도통 자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으로 회로가 복잡하게 엉키고 말았고, 결국 뒤엉킨 전깃줄에 합선이 온 것처럼 내 머리가 말 그대로 '터져서' 방전되고 말았다.

누구는 '쟤, 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저러네.'라면서, 이상한 애 취급하며 다 '내 문제'인 것처럼 치부하는 통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함부로 판단당할까봐서.


비 온 뒤 갠 구름은 한 입 베어 버리면 사르르 녹는 솜사탕처럼 가볍고 보송보송한데, 내 마음속에 내린 비는 굳은 땅은 커녕 비 오기전보다도 못한 진흙탕을 만들고 말았다. 정말 매정하게도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지금 오후 6시 44분, 새하얀 옷을 걸친 구름 뒤로 맑은 해가 숨어있다. 쓸데없이 복잡한 내 마음을 비웃으며 빈정거리기라도 한 듯 저 햇빛은 정말 매정하기 짝이 없구나. 맑은 하늘이 꼴보기 싫다.


조직 내 주인공이 아닌 신분으로 9년 넘게 살아온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회의감 때문인 건지, 아니면,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업무의 양 때문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용기 있게 할 말 하는 성격 때문인 건지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보잘것없는 조직에서 나의 위엄이 사정없이 짓밟힌 것 같아, 이것이야 말로 견디기 힘든 모욕감이었다.


회의 준비를 도와달라고 한 자는 나에게 제대로 된 자료는 공유하지도 않은 채, 알아서 '잘'하길 바라고.

서한을 감수해 달라고 요청한 자는 퇴근시각이 다 되어서 이메일로 넘기며, '내일'까지 봐달라고 하질 않나.

가방을 바꾼 바람에 출입증을 모르고 가지고 않은 것을 엄청난 죄악으로 여기며, 임시 출입증과 마스터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하찮은 지원인력의 사무실 출입을 위한 몇분의 시간은 '낭비' 여기며, '그냥 집에 다녀오세요.'라고 하는 그 작자 때문에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택시 기사 아저씨가 다 민망해했다.


이 조직에서는 내 양팔을 다 절단시킨 후, '나에게 세상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바쳐라.'라고 하는 악마들이 드글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매일 매일 회사를 나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나서, 결국 나는 보스와 보고서 재정비를 위한 아주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별안간 패닉어택이 오고야 말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 안개를 자욱하게 드리웠고, 그녀의 목소리가 이명으로 거의 들리지 않을 때쯤, 내 심장은 시속 200km까지 냅다 내질렀다. 결국 숨이 가빠져서, 일시적인 심정지가 들이닥쳤고, 내 몸은 정상적인 기능이 어려운 상태가 되고 말았다.


왜 내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의 비위를 그들이 아닌 내가 사사건건 맞추고, 도움을 주어야하는 그들에게 정보를 구걸해야 하는 건지. 이렇게 사소한 불만이 쌓이고 쌓였다. 정말 견디기 힘든 모욕감은 내 시간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이다. 내가 가장 참기 힘든 부분은 나보다 멍청한 인간들의 지시를 명확한 이유 및 합리적 확신 없이 '멍청하게' 따라야한다는 점이다. 납득 없는 행동은 결국 분노를 넘어선 공포감을 자아냈다. 이유를 파악하는 것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결국 집으로.. 그렇게, 도망쳤다.


그렇게 백지상태로 주말을 보내고,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은 이 시간들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게 아까운 건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내가 제일 증오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6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정신과 상담을 했다. 1시간 상담과 뇌파 검사 후 선생님이 내린 진단은 GAD: Generalised Anxiety Disorder 일반성 불안장애 그리고 Sleeping Disorder 수면장애. 나의 과거 병력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나의 호르몬은 완전한 불균형 그 자체이고, 내 몸의 밸런스가 깨쳐 결국 이 상태에 온 것 같으니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신경안정제 그리고 수면유도제, 그리고 심리상담이 그녀가 내린 처방.


내 심리상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한결 더 나아진 기분이긴 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무뎌지자고 이렇게 다짐을 했거늘, 이렇게 민감하게 태어난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으며, 다시 온몸을 일으켜 한 발짝 나아가자고 그렇게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오늘밤에는 제발 숙면을 취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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