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더 바빠진 이유
"언제 와요?"
살면서 누군가 제가 오기를 이렇게 기다린다는 건 참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걸음이 빨라지고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순간 올라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엽니다.
들어가자마자 아까 문자를 보낸 사람이 열렬히 환영해 줍니다.
"이모~ !"
맞습니다. 이 아이는 저의 조카입니다.
그리고 저의 부캐는 조카 덕후입니다.
평일 낮에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최근 퇴사를 하며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퇴사했다는 회사가 조카의 학원이였기 때문입니다.(무슨 소리일까요?)
저는 조카의 영어 학원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퇴사를 하면서 조카도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고 그렇게 갑자기 영어 과외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원에 있었을 때 착실하게 잘 공부해오던 아이가 요새는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어울려서 재미있게 공부하던 것과 단 둘이 하는 수업은 다르니까요.저 때문에 잘 다니던 곳을 그만두게 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 고학년이 되니 맘이 급해집니다.
그러나 아이나 친척, 지인등 가르쳐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런 과(?)한 책임감이 오히려 그 아이에게는 더욱 독이 된다는 것을.
"읽으면서 답 쓰세요."
"문제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으세요."
"여기 이 문제는 답이 맞아요?"
말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숨이 콱 막히네요.
조카는 저와 거의 영혼의 단짝이었지만 요새 살짝 사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햇살같이 웃어주는 아이인데 저의 욕심이 과한 걸까요?
자세도 경직되어 보이고, 읽다가 틀리면 평소보다 더 화를 냅니다.
이모라서 편하지만 이모라서 불편합니다.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랑 영어 공부 하다가 아이와 사이가 멀이지는 것은 차라리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 고 말했던 나였는데 정작 내 머리는 못 깎고 있습니다.
1시간 반 가량의 공부가 끝나고 저는 수고 했다고 일부러 크게 말해주고 꼭 안아줍니다.
"와 오늘 배운 내용은 쉬운 거 아니었는데 잘 따라왔네."
"역시 작년부터 꾸준히 공부해서 이제 조금씩 더 잘 하고 있네."
속마음을 잘 이야기 안 하는 편인 조카는 또 웃어줍니다.
그래서 요새 틈나는대로 십대에서 사춘기까지의 남자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공부합니다.
참 좋은 조카네요. 공부할 것 원래 많은 이모에게 공부 하나 더 시켜주네요.
* 앞으로 조카덕후인 저의 부캐가 생기게 된 시작부터 12살 남자아이와의 좌충우돌 공부에서 생활까지 이야기를 남기려고 합니다. 조카가 지금보다 더 큰 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동영상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캐로써 사명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