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다시 만난다는 것의 의미
5장. 하늘나라를 오늘의 삶으로 옮기는 연습
하늘나라는 예수가 가장 많이 말했지만, 가장 오해받은 언어다. 교회는 이 개념을 너무 쉽게 ‘죽고 나서 가게 될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렇게 하늘나라를 죽음 이후의 세계, 또는 이 세상을 넘어선 초월적 질서로 이해해 왔다. 그렇게 이해하는 순간 하늘나라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삶과 분리된다. 그것은 믿어야 할 교리가 되지만, 개인이 오늘 살아낼 수 있는 현실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하늘나라는 언제나 현재형이었다. 그는 하늘나라가 “이미 와 있다”라고 말했고,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말속에 중요한 단서가 들어 있다. 하늘나라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연습해야 하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를 산다’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익히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도착점이 아니라 훈련의 과정이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교리화해서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개를 가장 먼저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의 뜻을 실천하는 자만이 하늘나라에 속한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비유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이야기, 하루 품삯을 동일하게 주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는 비유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 속에서 하늘나라는 자주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반드시 공정하지도 않고, 늘 효율적인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성과 중심적이지도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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