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돌아옴 사이에 머무는 시간

by Francis Lee

36장.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 머무는 시간


― 침묵과 무력감이 믿음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일 때


신앙의 여정은 흔히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두 지점으로 요약된다. 떠남은 결단처럼 보이고, 돌아옴은 성취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가장 길게 체류하는 구간은 그 둘 사이에 놓인 시간이다.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고, 말이 나오지 않으며, 기도조차 공허하게 느껴지는 기간이어서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빨리 건너가야 할 것처럼 압박받는 바로 그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중간의 시간을 ‘결핍’이나 ‘후퇴’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은 믿음이 바깥으로 밀려난 자리가 아니라, 가장 깊은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는 구간이다. 침묵과 무력감은 신앙의 반대가 아니라, 신앙이 자기 자신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정직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떠남은 사건이고, 머묾은 과정이다. 그래서 떠남은 대개 이야기로 남는다. 아브라함의 출발, 제자들의 결단, 회심의 순간과 같은 사건들은 서술되기 쉽고, 전해지기 좋다. 반면에 머무는 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결단도, 기적도, 명확한 언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 공동체는 종종 그 시간을 생략한다. 생략된 자리에는 성공담이나 간증이 들어선다. 그러나 성서의 중요한 인물들 대부분은 이 ‘사이의 시간’을 길게 통과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수십 년을 보냈고,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오랫동안 추적과 도피의 시간을 견뎠다. 예수 자신도 공적 사역 이전에 40일 동안 진행된 광야의 침묵을 통과했다. 이 시간들은 준비 단계라기보다, 신앙이 자신의 허상을 벗겨내는 해체의 시간이었다.


침묵은 응답의 부재가 아니라 언어의 중단이다. 신앙에서 가장 두려운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기도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고, 성서의 문장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때 침묵은 흔히 하나님의 부재로 해석된다. 그러나 침묵은 응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언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신앙의 문장들이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거나 “때가 되면 응답하신다.”라는 말은 특정한 국면에서는 작동하지만, 삶의 균열 앞에서는 공허해진다. 침묵은 그 공허함을 감추지 말라는 요청이다. 더 말하지 말고, 더 설명하지 말고, 그저 멈추라는 요구다. 이 멈춤 속에서 신앙은 새로운 언어를 찾기 시작한다.

무력감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통제의 포기다. 신앙인은 흔히 ‘할 수 있음’의 언어에 익숙하다. 기도하면 바뀔 수 있고, 믿으면 견딜 수 있으며, 헌신하면 돌파할 수 있다는 서사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어떤 국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몸은 낫지 않으며,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때 느끼는 무력감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하려는 믿음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신앙이 삶을 관리하는 도구였을 때는 무력감이 곧 실패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신앙이 삶을 지탱하는 ‘밑바닥’으로 내려올 때, 무력감은 오히려 진실해진다. 더 이상 신앙으로 상황을 조작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이의 시간은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자리다. 떠나기 전의 나는 이미 익숙한 나다. 돌아온 후의 나는 이야기로 정리된 나다. 그러나 그 사이의 나는 규정되지 않는다. 역할도, 확신도, 방향도 흐릿하다. 바로 이 흐릿함 속에서 정체성은 재구성된다. 신앙은 이 시기에 ‘무엇을 믿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더 많은 교리를 붙잡는 대신, 덜 아는 상태로 머무를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더 강해지려 애쓰는 대신, 약한 채로 서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들에 즉각적인 답은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을 견디는 시간 자체가 신앙의 형태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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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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