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의 얼굴을 지닌 불안의 몸통이 여전히 보인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어섰다. 2025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상승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주식 시장의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는 분명 ‘좋아 보인다’. 게다가 중국과의 외교적 긴장도 완화됐고, 정권 교체 직후의 사회 혼란도 빠르게 정리됐다. 윤석열 정부 시기와 비교하면 ‘이제야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다. 이 호황을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은 웃고 있는데, 거리의 표정은 밝지 않다. 뉴스에서는 경제 회복을 말하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그런 단어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지금 한국 사회는 분명히 ‘좋아 보이지만 모두가 만족하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몇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첫째, 이번 주가 상승은 실물경제의 회복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상승을 이끈 것은 소수 대기업과 글로벌 자본에 깊이 연결된 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국내 고용이나 생활비 부담과는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가 늘거나 주거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는 전혀 아닌 것이다.
둘째, 실물경제의 핵심 지표들은 대부분 여전히 정체 상태다. 성장률은 낮고, 고용의 질은 악화되고 있으며,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택 문제는 해결의 기미보다는 고착화의 신호가 더 강하다. 정부가 6만 호 정도의 신축 건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먼 이야기다. 현재의 위기는 단기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셋째, 이러한 상황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은 60% 초반에서 안정돼 있지만, 요지부동으로 더 이상 상승하지는 않는다. 이는 반대가 강해서라기보다 기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재명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확실히 인정하지만, 정작 국민 모두의 삶을 어디로 이끌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정치는 결국 체감의 문제다. 경제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국민 개인의 일상적 삶의 긍정적 변화가 오지 않으면, 국민의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이 불확실성은 정치를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금융 지표의 호황을 실물 삶의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안정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코스피 5000은 분명히 매우 인상적인 숫자다. 정권 초기, 이 숫자가 주는 정치적 효과는 분명하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인식은 비록 착시라 하더라도 당분간 이재명 정부에 시간을 벌어준다. 비판은 잠시 유보되고, 불안은 잠깐이라도 뒤로 밀린다. 숫자는 언제나 정치의 든든한 방패였다. 현재 코스피 지수 5000 돌파는 분명히 비록 잠시라도 그런 방패가 되고 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상승은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코스피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유동성 확대, 투기자금, 대기업 집중 수혜 때문이지, 경제 전체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코스피 지수 숫자라도 근본적인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과연 이 상승은 누구의 성과이고 누구를 위한 성과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누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는 순식간에 원망으로 바뀔 수 있다. 민심은 바람과 같아 언제든 바뀌기 마련이다.
앞에서 말 한 대로 이번 주가 상승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이나 고용 확대의 결과라기보다, 소수 대기업과 특정 산업에 집중된 자산 랠리에 가깝다. 반도체, AI, 금융 등 글로벌 자본과 직접 연결된 기업들이 상승을 주도했다. 이 기업들은 국내 경기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주가 상승이 곧바로 고용이나 임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곧 주가는 오르고 있지만, 국민 다수의 삶과 직접 연결된 경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장의 부재가 아니라, 이른바 성장의 탈동조화다. 그리고 이런 탈동조화는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시키는 주범이 된다.
그래서 현재 이재명 정부의 문제는 주가 상승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정치적 성과로 오인될 때 발생한다. 주가가 오르면 정부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도 청년 고용은 개선되지 않고, 주거 부담은 줄지 않으며, 생활비는 계속 오른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는 숫자를 관리할 수 있지만, 체감은 관리하기 어렵다. 코스피 5000이 국민 다수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한, 이 숫자는 성과라기보다 착시에 가까워질 수 있다.
통계상 청년 실업률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이 숫자에 고개를 갸웃한다. 주변을 보면 취업이 쉬워진 느낌은 없기 때문이다. 이 괴리는 어디서 오는가? 청년 고용의 문제는 ‘실업률’보다 ‘진입’에 있다. 정규직 채용은 줄었고, 경력직 중심의 채용 구조는 더욱 강화됐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미루거나, 아예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들은 통계에서 ‘실업자’가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곧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포기한 사람이 늘어난 것일 수 있다. 숫자는 안정돼 보이지만,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다. 청년층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면, 소비도 줄고, 결혼과 출산도 미뤄진다. 사회 전체의 활력이 떨어진다. 청년 고용은 언제나 경제의 선행 지표이자 정치의 경고등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청년 문제를 ‘관리 가능한 지표’로만 다룬다면, 이 경고등은 더 밝아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관리’에 강한 정부다. 위기를 키우지 않고, 충돌을 조정하며, 행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 이는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정치는 관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는 방향의 예술이다. 사람들은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만큼,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지금 정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이렇다.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이런 불안이 커진 이유는 현재 이재명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시스템이 잘 돌아가서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탁월한 ‘원맨쇼’가 대중의 시선을 압도적으로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권이 끝나면 사라질 신기루로 보이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이 60% 초반에서 정체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영남을 본거지로 한 ‘막무가내 반대’가 강해서라기보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확실한 기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보이지만, 지도자의 서사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정권 초기의 안정은 자산이다. 그러나 그 안정이 나라와 국민 전체가 나가야 할 방향 제시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정은 곧 정체로 변한다. 정치는 바로 이러한 정체를 가장 두려워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당명한 가장 큰 문제는 자산 격차다. 사실 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위험은 격차 그 자체보다 격차에 대한 체념에 있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산을 늘린 사람들은 계속 앞서간다. 반면 다수의 사람들은 ‘나는 저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느낀다. 사실 이 자포자기의 감정은 분노보다 더 위험하다. 특히 청년의 자포자기는 더욱 위험하다. 분노는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체념은 정치적 이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체념한 청년층이 70대 이상의 계층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시민이 등을 돌릴 때다. 참여하지 않는 시민이 늘어나면, 정치는 소수의 게임이 된다. 더구나 그 참여하지 않는 계층이 청년층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 결과는 현재 한국 사회가 목격하는 대로 극단화와 분열이다. 자산 격차는 경제 문제이자 정치 문제다. 이재명 정부가 이를 단순한 분배 정책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체제에 대한 신뢰 회복은 매우 어렵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는 관리형 정부로 남는 길이다. 큰 사고 없이 임기를 운영하고,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길이다. 이 경우 정권은 유지될 수 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구조를 건드리는 정부로 가는 길이다. 청년 고용, 주거 접근성, 자산 격차, 대기업 중심 성장 구조를 건드려야 한다. 이 영역들은 모두 정치적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 영역을 피하는 정부는 결국 ‘잘 관리했지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주가 상승과 외교 안정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의 최종 평가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인 나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이재명 정부는 비로소 현재 적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막연한 ‘착시의 불안’을 넘어설 수 있다. 윤석열이 견딜 수 없이 미워서 이재명을 택한 사람도 적지 않다. 마치 문재인을 증오해서 윤석열을 뽑은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 지난 대선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런 국민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에서 나도 살만하다.’라고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과연 이재명 정부가 4년 남짓한 남은 시간에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