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인간은 다시 '선악과'를 먹는가?

신에게 책임을 넘겨온 교회, AI에 책임을 넘기려는 인간

by Francis Lee

교회를 떠난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믿음이 문제라기보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버거웠다.”라는 고백이다. 교회는 잘못된 예언이 빗나갔을 때도 “인간은 불완전합니다.”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부당하게 상처 입은 사람이 생겨났을 때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게다가 정치와 교회의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었을 때도 “기도에 맡깁시다.”라고 말하고는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강요한다. 교회가 하는 말들은 언제나 경건했지만, 이상하게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책임 전가는 교회가 가장 능숙하게 발전시킨 기술이다. 그것은 신학도, 영성도 아니라 하늘 위 저 먼 곳으로 책임을 위로 올려 보내는 탁월한 기술이었다. 그래서 교회나 정치 지도자의 잘못은 '사탄의 시험'이고 제도적 폭력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로 기우는 성향' 탓이고, 사회나 교회 안의 구조적 차별은 '신의 섭리'의 결과이고 교회가 내세운 예언이 실패한 것은 그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관성적으로 틀에 박힌 구조 안에서는 아무도 최종 책임자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한 변명은 성립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신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인간 차원에서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종교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에 등장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묘하게 낯설지 않다.


“알고리즘이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데이터에 그렇게 나왔습니다.”

“시스템 오류였습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바로 교회에서 신물 나도록 들은 말과 프레임이 같다.


“신의 뜻입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기도로 해결될 문제입니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책임을 더 위로 밀어 올리는 구조는 그대로다. 과거에는 신이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은 AI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교회를 떠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신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떠난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교회 안의 ‘거룩한 목자’와 ‘성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이 침묵한다고 해도, 인간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

“우리가 틀렸다.”

“이 구조는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그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신의 이름이 더 이상 핑계로 삼을 든든한 방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우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와 그 교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목자’가 신을 우상으로 만들고 모든 책임을 신에게 전가하면서 책임 회피를 정당화해 왔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에 바로 AI도 그런 우상이 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AI는 판단하지 않는다. 의미를 이해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AI는 완벽한 우상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AI는 말대꾸하지 않고, 감정도 없고, 틀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일이 잘못 돌아가도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책임'을 질 주체가 CPU나 GPU 그리고 데이터 센터의 어느 메모리 칩 안에서 시나브로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책임을 넘기고 싶을 때, AI만큼 이상적인 존재는 없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AI가 인간을 배신하는 미래가 아니라, 인간이 책임을 신에게 돌려온 것처럼 이제는 AI에 ‘외주화’하는 매우 익숙한 오래된 패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탈교회는 믿음을 버리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판단과 책임을 다시 자기 손으로 되찾는 과정이다. 신이든, 교회든, AI든 그 무엇도 ‘나’를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 대신 선택해 주지도 않는다. 나 대신 고통을 감당해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에 필요한 태도는 기술적 통제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윤리적 선언이다. 곧 “이것은 내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내가 감당한다.”라고 말며 책임지는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분명히 오랫동안 신의 이름으로 인간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제 AI 시대의 인간은 기술의 이름으로 똑같은 유혹을 받고 있다. ‘선악과’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뱀과 이브가 나눈 대화가 나오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1~6)


그런데 이제는 AI가 뱀처럼 인간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네가 직접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누군가를, 무언가를 핑계로 삼아도 된다.”


탈교회 이후의 인간이 그 속삭임의 속내를 알아차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을 이미 얻은 셈이다. AI가 위험한 이유는 인간보다 똑똑해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깨어 있는 인간이란, 그 핑계를 거부하고 “이 선택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곧 AI 시대의 인간이 다시 타락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AI에 위임하지 않고 어떤 결과든 끝까지 자기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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