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글쓰기 금지, 서울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AI 시대의 글쓰기, 금지가 아니라 재설계가 필요하다

by Francis Lee

서울대학교가 신입생 글쓰기 시험에서 인공지능(AI) 활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학내 정책 변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중앙일보 기사 참조 https://v.daum.net/v/20260201165838144) 이 결정은 오늘날 대학 교육이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AI 커닝을 막고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과연 현재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말로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정확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힘든 것이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다. 서울대 신입생 글쓰기 시험의 평균 점수는 2017년 이후 꾸준히 하락해 왔고, 이는 곧바로 ‘문해력 저하’라는 사회적 담론으로 연결됐다. 대학은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느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글쓰기 시험을 의무화했다. 그 연장선에서 포털 검색 금지가 도입됐고, 이제는 AI 활용 금지까지 추가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일관된 문제 해결의 흐름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정말로 AI와 같은 도구를 차단하는 방식이 글쓰기 능력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번 정책의 핵심은 ‘금지’다. 시험 전에 이른바 ‘AI 활용 금지 윤리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면 시험 무효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비대면으로, 입학 전 예비 신입생을 대상으로, 7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이 구조 안에서 윤리 서약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을 윤리 선언 하나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실효성만이 아니다. 이 정책은 AI를 단순히 ‘부정행위의 수단’으로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정신과 크게 어긋나 있다. 이미 AI는 검색 엔진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많은 사람의 사고 과정과 글쓰기 방식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직장인, 연구자, 작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미 AI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고, 논리의 빈틈을 점검한다. 이 현실 속에서 ‘AI를 쓰지 말고 순전히 너의 혼자 힘으로 글을 써라’라는 요구는, 마치 계산기를 전면 금지한 채 수학적 사고력을 평가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무슨 시대착오적 발상인가?


서울대의 정책은 한 마디로 글쓰기 능력을 ‘AI 없이 혼자 써내는 결과물’로만 정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글쓰기란 과연 그렇게 단순한 행위일까? 과연 AI 등장 이전에 인간은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글을 썼을까? 원래 글쓰기는 생각을 조직하고, 정보를 선별하고, 자신의 관점을 구성해 타인에게 전달하는 복합적인 사고 활동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혼자만의 사고력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 다른 사람의 충고, 다른 매체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사고의 주체인가?’ 그리고 ‘글 속에 드러난 판단과 관점이 누구의 것인가?’이다. AI가 문장을 다듬었는지 여부보다,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서울대는 여전히 ‘AI를 쓰면 글쓰기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AI가 문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실에서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미 많은 학생은 AI를 전혀 쓰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떠도는 표현과 구조를 모방해 글을 쓸 수 있다. 반대로 AI를 활용하더라도,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 초안을 어떻게 수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질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즉, AI 사용 여부와 글쓰기 능력 사이에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AI 활용 능력이 오히려 글쓰기 능력에 긍정적 작용을 하는 것이 더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AI 활용 능력이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교수들이 밥그릇을 걱정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AI 이용해서 ‘완벽하게’ 작성한 글을 평가할 능력이 없는 교수들의 그 불안이 이런 조치의 더 근원적인 원인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정책은 오히려 서울대가 현재의 시대정신이 가져온 급격한 변화를 얼마나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AI라는 놀랍도록 새롭고 변화무쌍한 도구 앞에서 ‘늙은’ 교수들에게 익숙한 ‘낡은’ 평가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그러한 낡은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도구를 금지하는 답답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은 금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대학 밖에서 이미 AI와 함께 사고하고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대학이 그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시험장에서만 이른바 ‘순수한 인간적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장을 현실과 단절시키는 한심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AI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존재하는 시대에 글쓰기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그리고 정작 배워야 할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수다. 낡은 틀에서 철밥통을 지키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직시하고 학생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식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의 이번 결정은 그 질문을 유예한 채, 가장 쉬운 선택을 한 사례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AI는 글을 대신 써주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밀어붙이는 도구다. 오늘날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더 이상 일부 얼리어답터의 실험이 아니다. 대학생, 직장인, 연구자, 창작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미 AI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 이는 몰래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이미 일상적인 사고 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논의에서는 AI 글쓰기를 ‘대필’ 혹은 ‘부정행위’라는 단어로 단순화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AI 활용 방식은 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현실에서 AI는 대부분의 경우 글을 ‘대신 써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사람의 사고를 자극하고,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하며, 막혀 있던 논리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이도록 돕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 글쓰기의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고, AI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촉매로 작동한다. 이 점을 간과한 채 AI 활용을 전면 금지하는 논의는 실제 글쓰기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AI를 활용해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완성된 문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이미 머릿속에 존재하는 문제의식이나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에 대한 초안을 받아보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 초안은 곧바로 제출 가능한 글이기보다는, 생각을 점검하고 수정하기 위한 재료에 가깝다. 문장의 흐름이 어색한지, 논리가 비약되어 있지는 않은지, 주장과 근거의 균형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I는 하나의 거울 역할을 한다.


이후의 과정은 오히려 전통적인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안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문장을 지우고, 표현을 바꾸고, 논점을 다시 세운다. 때로는 AI가 제시한 방향에 반박하는 문장을 덧붙이기도 하고, 빠져 있는 맥락을 채워 넣기도 한다. 이 모든 수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I의 문장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판단이다. 어떤 문장을 살리고 어떤 문장을 버릴지, 어떤 논점을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줄일지는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이는 사실 AI 이전에 논문을 작성할 때 많은 학생이 사용해 온 방법이다. AI는 그런 방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AI를 이용한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결과적으로 글의 질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AI는 글을 대신 생각해 주지 않지만, 글 쓰는 이의 사고의 빈틈을 빠르게 드러내 준다. 스스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느낀 부분이 사실은 모호했음을 깨닫게 하거나, 개인적 주장에 비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자신의 글을 객관화하는 과정이 매우 정밀하게 추가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는 차원을 넘어, 사고의 정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AI를 활용한 글쓰기가 곧 사고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인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오히려 제대로 활용할 경우, AI는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방향의 초안을 받을지, 그 초안의 어떤 부분이 부적절한지를 판단하려면 기존보다 더 명확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는 그에 상응하는 피상적인 결과만 돌아온다. 결국 AI가 생산한 텍스트의 질은, 그것을 요청한 인간의 사고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글의 최종적 작성자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AI 글쓰기에 대한 불신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글쓰기의 ‘과정’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어디까지가 인간의 사고이고 어디부터가 AI의 기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에도 글쓰기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사고 과정을 전제로 평가되어 왔다. 참고 문헌을 얼마나 충실히 읽었는지, 초안을 몇 번이나 고쳤는지, 타인의 피드백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결과물만으로 완벽히 판단할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논문이 표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는지 우리는 충분히 보아 왔지 않은가?


그럼에도 결국 대학은 오랫동안 결과물을 통해 사고력을 가늠해 왔다.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 전제가 갑자기 무너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도구의 종류일 뿐이다. 과거에는 사전, 논문 검색, 맞춤법 검사기가 그 역할을 했고, 이제는 AI가 그 자리에 추가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도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도구를 어떤 수준의 사고로 활용하느냐다.


AI를 활용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은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이는 이미 많은 글쓰기 현장에서 관찰되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AI가 글을 ‘써주었는지’가 아니라, 그 글이 얼마나 분명한 문제의식과 설득력 있는 논리를 담고 있는지 여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AI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AI 활용을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은, 글쓰기의 본질을 평가하기보다는 도구 사용 여부에 집착하는 선택처럼 보인다. 글쓰기 능력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AI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기보다, AI가 이미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사고의 깊이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식별 능력을 다름 아니 대학의 교수들이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AI 활용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반론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띤다. 첫째, ‘AI를 사용하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라는 주장이다. 둘째, ‘AI가 개입된 글은 공정하게 평가할 수 없다.’라는 우려다. 이 두 가지 문제 제기는 사실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글쓰기’에 대한 불안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반론들이 과연 오늘의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는지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AI를 쓰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주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실제로 AI가 사용되는 방식은 대체라기보다 보조에 가깝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어떻게 AI를 활용할 수 있겠는가? AI는 질문을 받아 반응할 뿐, 무엇을 질문할지 결정하지 않는다.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지, 어떤 논점을 중심에 둘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AI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정확히 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AI는 사고의 부재를 감추기 어렵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던진 질문은, 그만큼 피상적인 결과로 되돌아온다. 그 결과를 그대로 옮겨 적는 순간, 그 글은 쉽게 공허해진다. 반대로 분명한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진 질문은, 그에 상응하는 밀도 있는 초안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글의 질을 가르는 핵심 변수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인간의 사고 수준이다. 이제 질문이 핵심인 세상이 되었음을 AI 활용 능력에서 드러나고 있다.

‘AI를 쓰면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우려는 사실 AI 이전에도 반복되어 왔다. 검색 엔진이 보편화되었을 때도, 맞춤법 검사기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걱정이 제기됐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이 곧 사고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AI와 같은 새로운 도구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도구에 사고를 완전히 위탁하느냐의 문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은 채 AI를 일괄적으로 사고의 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논의를 단순화한다.


두 번째 반론인 ‘AI 글쓰기는 평가가 불가능하다.’라는 주장 또한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은 평가의 ‘공정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AI가 개입된 글은 어디까지가 학생의 능력인지 알 수 없으니, 평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기존의 글쓰기 평가가 얼마나 투명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전통적인 글쓰기 평가에서도 사고의 과정은 언제나 불완전하게만 드러났다. 학생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읽었는지, 초안을 몇 번 고쳤는지, 타인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결과물만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학은 글의 논리성, 구조, 표현, 문제의식이라는 평가 기준으로 저자의 사고 수준을 가늠해 왔다.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이 평가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가가 어렵다는 주장 이면에는 또 다른 가정이 숨어 있다. 바로 ‘평가는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만 가능하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글쓰기 환경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인터넷, 참고 문헌, 다양한 디지털 도구는 모두 글쓰기 과정에 개입한다. AI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대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AI의 존재를 부정하고, 통제 가능한 과거의 환경을 억지로 재현하려 할 것인지 아니면 통제가 어려운 현실을 인정한 채, 평가의 기준과 방식을 재설계할 것인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분명한 것은 전자는 갈수록 실효성을 잃을 것이고, 후자는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이미 여러 방향으로 제시될 수 있다. 첫째, AI 활용을 숨기게 하기보다 오히려 드러내게 하는 방식이다. 글을 제출할 때 AI를 사용한 부분과 그 목적을 간단히 밝히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는 학생에게 자신의 사고 과정과 도구 사용을 성찰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무엇을 왜 AI에 맡겼는지를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사고 훈련이 된다.


둘째, 결과물 중심 평가에서 과정 일부를 포함하는 평가로 전환할 수 있다. 초안과 수정본을 함께 제출하게 하거나, 글의 핵심 논지를 요약하고 선택한 논거의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제는 AI가 대신 수행하기 어렵다. 결국 평가의 초점은 문장의 세련됨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로 이동하게 된다.


셋째, AI가 생산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과제에 포함시키는 방법도 있다. AI가 제시한 주장이나 구조의 한계를 짚고, 그 위에 자신의 관점을 덧붙이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AI는 평가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사고력을 드러내는 재료가 된다.


이런 대안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전제를 공유한다. AI를 없애려 하지 말고, AI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사고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묻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학생을 불신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변화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학습 주체로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철학에 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학생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지, 그리고 대학이 길러내고자 하는 능력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AI에 대한 정책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설계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의 신입생 글쓰기 시험 AI 금지 논란은 단순히 한 대학의 시험 운영 방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건은 대학이 변화한 사고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는 하나의 징후에 가깝다. 글쓰기 점수 하락, 문해력 저하, 사고력 약화라는 문제 인식 자체는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단순한 ‘AI 금지’가 선택되었을 때, 질문은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과연 서울대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AI와 함께 사고하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이 상황에서 시험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AI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엄연한 현실을 잠시 유예시키는 효과만을 낳을 뿐이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요령만 터득하게 될 것이다. AI 기술은 시험장 밖에서 계속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사고방식 역시 그에 맞춰 변화한다. 대학이 그리고 특히 ‘AI 앞에서 무능력한’ 교수진이 그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AI의 비약적 발전이라는 세계적인 변화 자체가 멈추지는 않는다. 이런 시대에 글쓰기 능력 함양이라는 것에 집착하면 그야말로 소탐대실하게 될 뿐이다.


더 중요한 점은, AI를 쓴다고 해서 사고가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AI는 사고의 깊이를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낸다. 무엇을 질문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초안을 요청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수정하고 비판했는지는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사고의 흔적을 드러낸다. AI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글은 쉽게 공허해지고,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글은 오히려 논리와 관점이 선명해진다. 결국 문제는 AI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고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다. 그리고 그 주도권을 인간이 쥐기 위해서라도 AI는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무조건 금지하고 나서 학생들의 AI 활용 능력이 뒤처지면 나중에 AI가 더욱 발전한 상황에 어찌 대처하라는 말인가?


그럼에도 AI를 둘러싼 논의가 반복해서 ‘금지’로 귀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평가’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대학은 정확히 말하자면 교수진은 이른바 ‘공정하고 검토 가능한’ 평가를 원하고, 그들에게 AI는 그 질서를 흔드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기존의 글쓰기 평가도 완벽하게 투명했던 적은 없다. 사고의 과정은 언제나 결과물 뒤에 숨겨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 결과물을 통해 추론을 해 왔다. AI의 등장은 그 불완전함을 새롭게 드러냈을 뿐이다. 이는 평가가 불가능해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평가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대학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하나는 AI를 예외적인 위험 요소로 취급하며, 서울대의 이번 조치처럼 가능한 한 AI를 배제하고 통제하려는 길이다. 이 길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과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AI를 사고 환경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학생의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를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길이다. 이 길은 쉽지 않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에 더 가까운 선택이다. 그리고 이 길을 가려면 교수도 다시 ‘배워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말이다.

AI와 함께 사고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AI 사용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생에게 ‘사용하지 마라’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 태도다. 어떤 부분을 AI에 맡기고, 어떤 부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지, AI의 답변에서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일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글쓰기 능력뿐 아니라, 오늘날 지식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식별과 판단 능력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대의 사례는 어쩌면 많은 대학이 공통으로 마주하고 있는 불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기존의 평가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럴수록 유혹적인 선택은 금지와 차단이다. 그러나 대학이 해야 할 역할은 현실을 잠시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해석하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AI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가정한 평가보다, AI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사고의 깊이를 드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언제나 생각의 훈련이었다. 도구가 바뀌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연필과 키보드 사이에 AI라는 또 하나의 도구가 놓였을 뿐이다. 그 도구를 두려워하며 밀어내는 대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가르칠 때, 대학은 여전히 사고의 중심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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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AI를 막는 대학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일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천하의 서울대가 AI를 이용한 글쓰기를 막는다는 것은 마치 대원군이 개방을 금지한 조치와 비견될 만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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