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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안보 논리와 미국의 책임

그 어떤 전쟁도 동맹의 논리로 정당화 할 수 없다

by Francis Lee

이스라엘은 분명 특수한 국가다. 건국 직후부터 제1차 중동전쟁을 겪으며, 생존 자체가 곧 안보였던 나라. 이후 수십 년 동안 반복된 전쟁과 테러,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집단적 기억은 이 국가를 “위협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 위에 세웠다. 이 점까지는 이해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해가 바로 위법 행위의 정당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비롯한 많은 중동 국가에서 수행해 온 군사 작전은, 그 목적이 아무리 자위(self-defense)에 있다 하더라도, 그 수단과 방식에서 심각한 윤리적·법적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간인,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의 대규모 희생은 더 이상 이른바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말로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법은 명확하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규정한다. 그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라는 ‘구별 원칙’, 다른 하나는 군사적 필요에 비해 과도한 피해를 금지하는 ‘비례성 원칙’이다. 이 두 기준에서 볼 때,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공습과 반복적 폭격은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늘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민간 지역에 숨어 활동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국가 무장조직이 민간인을 ‘방패’로 활용하는 행위 역시 국제법 위반이며,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더 큰 화력으로 대응하며 민간 피해를 확대하는 것이 자동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법은 “상대가 법을 어겼으니 나도 어길 수 있다”는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흔한 말로 이는 내로남불의 아전인수격의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군사적 대응이 과연 안보를 강화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반복되는 폭격은 단기적으로는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적개심과 복수의 동기를 생산한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세대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폭력의 순환은 이렇게 재생산된다.


국제사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은 때로는 묵인되거나, 때로는 선택적으로 비판된다. 이중적 기준은 국제법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결국 힘 있는 자만이 규칙을 해석하는 세계를 고착화한다.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전쟁은 때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는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다.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이 “무제한적 폭력”의 면죄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전쟁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기준 자체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스라엘이 처한 안보 현실은 분명 복잡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높은 기준이 요구된다. 힘을 가진 국가일수록,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국가일수록, 그 힘의 사용에는 더 엄격한 윤리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의 행태가 불러온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전쟁을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 속에서도 지켜야 할 선을 끝까지 요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오늘날 국제질서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이 미국의 관여로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 군사·외교·재정적 지원을 제공해 왔다. 유엔에서의 외교적 방패, 막대한 군사 원조, 첨단 무기 공급까지, 그 지원은 단순한 동맹 수준을 넘어 사실상 전략적 보호막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 및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비국가 조직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압도적 우위’가 억제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국제적 제약이 약화된 상태에서 군사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실질적인 제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내부적 재검토는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미국 정치에 유대계 로비 단체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AIPAC와 같은 조직은 오랜 기간 정책 형성 과정에서 존재감을 보여왔다. 다만 이를 단일 요인으로 환원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해석이다.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은 중동 전략, 국내 정치, 가치 동맹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요한 것은 영향력의 출처가 아니라, 그 결과가 국제 규범과 얼마나 충돌하는가이다.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군사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군사·외교 지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비국가 무장조직과의 비대칭 전쟁 구조, 끝으로 안보 위협을 절대화하는 국내 정치 환경이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될 때, 전쟁은 ‘일시적 수단’이 아니라 ‘상시적 관리 방식’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평화가 아니라 긴장이 정상 상태가 된다.


이스라엘이 덜 폭력적인 국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조를 바꾸는 조건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지원은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 제네바 협약과 같은 국제 인도법 준수를 명확한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 민간인 피해에 대한 독립적 조사와 책임 추궁이 전제되지 않는 지원은 결과적으로 폭력의 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더해 군사적 해결의 한계 인정이 필요하다.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반복적 충돌은 이들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설을 낳는다. 휴전, 협상, 자치권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해결을 병행하지 않는 한 군사적 성공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기준 적용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국가에만 관대한 국제 질서는 규범을 무너뜨린다.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때만 국제법은 실질적 효력을 갖는다. 이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분쟁 당사자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국제법도 이스라엘이 무시하면 아무런 효력이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내부의 선택이다. 안보를 절대적 가치로 두는 정치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적 공존을 모색하는 정치 세력이 힘을 얻어야 한다. 이는 외부 압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시민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네탄야후와 연정을 구성하는 극우 정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그리고 전시 체제에서 네탄야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이스라엘 시민이 존재하는 한 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 국민이 하나로 뭉쳐 전쟁을 지속한다고 해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물적 외교적 지원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전쟁을 도발해도 오래 지속할 힘이 전혀 없다. 그러니 현재 중동 사태는 오로지 미국만이 해결할 수 있다. 동맹은 단순한 이해관계의 결합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에 대한 공동 책임을 의미한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한,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인도적 피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전쟁을 멈추는 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힘의 사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증거다.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안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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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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