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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07. 2021

모든 책임은 이낙연이 져야 한다.

보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길은?

점술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에 ‘기미’라는 것이 있다. 어떤 커다란 일이 벌어지려면 그 사태를 예견하도록 해주는 여러 작은 일들이 미리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락한 현실에 취해 있다 보면 그러한 기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큰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미리 대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자신이 그런 기미를 감지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며 땅을 치는 것이다. 이미 다 지난 다음에 말이다.


이번 보선에서 여당이 진 것이 아니라 참패를 한 것은 순전히 이낙연의 오판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 부산 시장 보선에는 당초 후보를 내지 말기로 했음에도 이낙연이 주도하여 당헌까지 고쳐가며 후보를 낸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야당이 싱겁게 승리했다면 이 정도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번 말한 대로 정치가는 모름지기 민심, 곧 시대정신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명민한 정치가라 하더라도 아첨꾼들이 만든 인의 장막 안에 있다 보면 감각이 무뎌지고 결국 자기 무덤을 파기 마련이다. 이낙연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이낙연 혼자만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특히 그를 옹립하여 여전히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이다. 여기서 더 질퍽대다가는 물귀신이 되어 여권 전체를 말아먹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박영선을 말아먹은 것에서 이제 멈추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LH 사건도 있었고 여권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부동산 비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대권 후보 지지도가 열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졌으나 실패했다. 만약 이번 보선에서 여당이 승리하거나 최소한 간반의 차로 패배했다면 이낙연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참사였다. 그러니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물러나야 한다. 백의종군도 필요 없다. 사나이답게 아무런 조건도 달지 말고 명예로운 퇴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낙연으로 승부를 보고자 했던 친문도 제3의 후보를 옹립하는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낙연이 대선에 연연하고 친문 후보까지 나선다면 여당은 사분오열되고 내년 대선에서 필패하게 될 것이다. 보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샤이 진보의 존재, 보수 언론 조작, 40대를 중심으로 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핑계로 계속 정신을 못 차린다면 촛불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오세훈은 초반만 해도 이번 보선의 후보가 되는 것만도 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승리했다. 그것도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그가 잘했다기보다는 여당이 연속적인 패착을 두면서 결국 그에게 서울을 헌납한 꼴이 된 것이다. 민심의 흐름에 대한 기미를 일찍 파악했다면 여당이 이 정도의 참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보선의 패배는 전적으로 여당의 책임이다. 보선 과정을 보면 여당은 지기 위해서 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교만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는데 참패를 자초한 것이다.


이제 정국은 대선을 향해 모든 체제가 정비될 것이다. 몇 달 전만 해도 거의 존재감이 없던 야당은 이 기세를 몰아 대권까지 노릴 것이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야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정객들로 넘쳐난다. 이들을 상대로 하여 단순히 적폐 청산의 이데올로기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아직도 꿈꾸고 있다면 내년 대선에서 더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낙연이 물러나면 대선 정국은 이재명과 윤석열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그 틀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의 친문과 야당의 친박 세력이 지분에 연연하면 보선에서의 참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재명과 윤석열이 모두 외인부대 출신이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친문이나 친박이 호락호락 받아들이기 쉽기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지분 싸움을 하는 측은 소탐대실의 쓰라린 교훈을 얻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이제 여권에서 급속히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친문 세력과 야권에서 친박이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무리수를 두고 싶은 유혹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낙연이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의 분노도 어느 정도 달랠 뿐 아니라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리에 연연하고 지분싸움에 몰두한다면 다 같이 몰락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번 보선에서 보여준 추잡한 인신공격으로 국민들은 이미 정치가들에게 지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 내내 정책과 비전은 간 데 없고 땅과 구두를 놓고 이전투구를 하는 모습만 보았다.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본 정치가들에게 민심은 분노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분 싸움이 벌어진다면 민심의 분노가 문자 그대로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국민은 일부 ‘잘난’ 정치가들이 착각하듯이 순간적인 격정에만 빠져 근시안적 판단을 하고 언론의 가짜 뉴스에 놀아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아니다. 한 사람의 국민은 어리석지만 그들이 모여 만들어낸 민심은 곧 천심이다. 그리고 그 천심을 나타낸 것이 시대정신이다. 권력에 취한 어리석은 정치가들만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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