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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15. 2021

진보논객은 왜 김어준 밖에 안 남았는가?

건전한 사회적 담론 문화의 종말이 오려고 한다

김어준의 방송 진행료를 핑계로 조선일보가 시비를 거는 싸움이 다시 시작된 모양이다. 이 둘의 싸움은 그 역사가 길다. 김어준이 딴지일보를 세우고 아직 별 볼일 없던 시절인 1999년 조선일보의 김대중의 사설을 패러디하면서 온라인 언론계에 스타로 부상한 것이 벌써 22년이 흘렀다. 그의 인기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이른바 진보논객을 자처하며 나왔으나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유시민이 그런대로 언론에 노출되고는 있으나 그 강도는 매우 약하다. 진중권은 조국 사태로 삐딱선을 탄 이후로 좌충우돌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남은 것은 김어준뿐이다.   

  

어찌 이리되었을까?     


사실 한국 사회는 여당도 야당도 중도 노선을 취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진보가 설 자리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입진보이다. 말하자면 무늬만 진보인 사람들이 설쳐대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민중을 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글쓰기와 강의 이외에는 구체적인 활동이 없고 툭하면 해외 나들이를 하는 입진보들에 식상한 국민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김어준은 소박한 외모와 투박한 말투 그리고 그 공격적인 태도에서 이른바 ‘바닥’ 진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풍기고 있기에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김어준이 조선일보에는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조선일보의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자신의 글에는 꼬리글조차도 전혀 허용하지 않는 김대중을 치고 나간 김어준이니 어떻게 하든지 잡아볼 요량이리라. 그래서 겨우 찾아낸 것이 교통방송 출연료이다. 1회 당 200만 원으로 1년에 수억이 되고 박원순 시장 시절에 받은 것이 총액으로 20억이 넘는단다. 참 애잔하다. 조선일보에서 김대중이나 유근일 같이 글 좀 쓴다는 이들이 받는 돈은 얼마나 될까? 서로 까 보자고 덤비면 또 1999년의 김대중처럼 고소 운운하다가 슬며시 꼬리를 내리겠지? 한심한 조선일보의 몰골이다. 한국 최고의 1등 신문이라고 스스로 뻐기는 언론이 고작 하는 짓이 자기 회사의 글쟁이를 혼 내준 사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모습을 보이는 일이라니...  

 

  

나는 개인적으로 김어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 든다. 그러나 사회적 의견 개진의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거대 언론인 조선일보가 김어준 잡기에 나선 것이 매우 못마땅하다. 그가 출연료로 200만 원을 받든 2억을 받는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 잘난 1등 언론답게 그리고 김대중처럼 영어 잘하는 기자들이 넘치는 신문답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미국의 동정이나 분석해서 실어 볼 생각은 안 하고 꾸질 하게 '미운털 박힌 놈’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정말로 친일파 방응모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이른바 좌파 논객을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인가?      


한국에는 김어준 같은 좌파논객이 더 많이 필요하다. 좌파 사상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현재 MZ세대를 크게 실망시킨 기득권 세력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들의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좌파논객의 주 업무이다. 그런데 입진보들은 진보의 탈을 쓰고 명성과 부를 축적하고 나면 성취동기가 급격히 사라지고 만다. 더구나 김문수처럼 180도 사상 전향을 하여 퇴물이 되는 경우까지 있다. 차라리 진보를 내세우지 않은 만 못한 짓이니 대단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진보란 무엇이기에 한국에서 진보 논객으로 살기가 이리 힘들다는 말인가?

    

일차적으로는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언론들의 농간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인신공격을 해대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개인이 거대 언론사에 맞서는 것은 사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도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한국에서 진보와 좌파, 더 나아가 이른바 ‘빨갱이’와 동일시되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경제 체제로서의 공산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중국과 북한 정도에서 사회주의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한국전쟁을 겪은 근세사의 특성으로 ‘빨갱이’는 터부와 직결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색깔논쟁은 여전히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한국 사회의 정치사에서 진보와 보수의 학문적인 이념 논쟁이 제대로 전개된 적이 없어서 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이론이 먼저 체계화되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행되는 법인데 한국의 근세사에서는 사상이 정치적 진영 논리에 이용되어 좌파와 우파의 극한 대립에서 피해자들이 먼저 양산되었기에 순수 학문적 연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조국 지키기와 마찬가지로 김어준 지키기에 몰두하다 보면 결국 조선일보의 술수에 넘어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일제 식민기, 이승만 독재 박정희에서 노태우에 이어지는 군사독재,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승승장구해온 언론이다. 가장 부패한 사회에서 가장 잘 적응하여 생존해온 그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상황에서 김어준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일당백의 신공을 발휘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김어준마저 무너진다면 좌우를 떠나 이 사회의 자유로운 담론 문화는 종말을 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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