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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8. 2021

‘영남 꼰대당’이라 불쾌한가?

그렇다면국민의힘의정체성이 지방당이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권성동이 한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영남 꼰대당’이라고 해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영남 지역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줄 알았는데 보니 정 반대이다. 그가 한 말을 인용해 본다. “자꾸만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자고 하니 영남에 계시는 분들이 이런 말씀을 들으면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면 그렇지! 국민의힘의 일부 전국 정당화 지지 초선의원들이 영남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니 불쾌하단다. ‘영남당’이라고 해서 불쾌한 것이 아니라 영남을 ‘꼰대’라고 해서 불쾌하다는 말이구나!     


사실 국민의힘은 영남 아니면 쓰러지는 당이다. 현재 103명의 의원 가운데 62명이 영남 출신이다. 60.1%이니 과반수를 넉넉히 넘는 숫자이다. 그러니 영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174명의 의원 가운데 64명 곧 36.7%만이 호남 출신이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연 그런 편향된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힘이 국민 전체의 뜻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영남, 그것도 대구 경북에 목숨을 거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의원이 적지 않다. 그래서 툭하면 이른바 '박근혜 사면론'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증오하는 박근혜가 이뻐서라기 보다는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서가 강한 대구 경북의 경우 국민의 힘은 26명인데 비하여 더불어민주당은 8명에 불과하다. 물론 광주 전라의 경우 민주당이 64명인데 비하여 국민의힘은 6명에 불과하니 그 격차는 더욱 심하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도 호남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영남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 비하여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을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훨씬 덜하다. 호남에 목을 매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석 비율이 그대로 내년 대선에 반영된다고 볼 때 사실 국민의 힘이 기댈 곳이라고는 영남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영남당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은 어쩌면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국민의힘은 영남 말고는 크게 기댈 곳이 없다. 서울 경기권에서는 43대 19로 더블 스코어로 밀리고, 충청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3대 1의 큰 스코어로 크게 밀리는 형국이니 말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영남당의 이미지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는 독일의 기사당(CSU)과 비교되는 형국이다. 독일의 기사당은 제2차 대전 이후 기민당(CDU)과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을 형성하여 정권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수상을 낸 적은 없고 일종의 기생 정당으로 기민당에 붙어 중앙정부에서 힘을 발휘해 왔다. 그런데 9월 총선을 맞이하여 기사당에서는 바이에른 주지사이며 기사당 당대표인 쇠더(Markus Söder)를 자체적인 수상 후보로 미는 깜짝쇼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전통적으로는 거대 정당인 기민당이 수상을 맡아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 기민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틈을 차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사당은 한국의 영남과 마찬가지로 독일 동남부에 있는 주인 바이에른(Bayern)만을 대표하는 정당이다. 바이에른 주는 뮌헨을 수도로 하는 독일 최대의 주이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실질적인 독립 국가이다. 그러면서 독일연방공화국과 연방 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매우 지방색이 강한 바이에른의 문화는 강한 사투리와 더불어 독일의 보수 세력의 상징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바이에른 독립국의 의회 의석분포를 보면 기사당이 205석 가운데 84석 만을 차지하여 더 이상 독자노선을 고집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의석수 38석의 제2정당인 진보적인 녹색당이나 22석의 중도 좌파인 사민당과의 연정을 거부하고 27석의 대중영합주의 노선을 취하는 1997년에 설립된 신생 정당인 자유유권자당(FW)과의 연정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독일 16개 주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도 1,300만 명으로 1,790만 명의 노르드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바이에른 주는 막강한 경제력으로 독일의 나머지 주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중앙정부에 내는 분담금이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 보수 진영의 아성으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을위한선택당(AfD)이 극보수 어젠다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보수 전체에 대한 대표성은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중도보수보다 더 우경화된 보수층을 대변하고 있다. 다만 기사당은 바이에른 주 밖에서는 총선 후보를 낼 수 없어서 그 대표성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넓은 정치 스펙트럼에서 기사당은 철저한 바이에른 지방당이면서도 중도 보수당인 기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계층의 정서를 반영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일 정치계에서 70년 동안 중앙정부에서 강한 권력을 행사해 올 수 있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1,300만 명에 이른다. 비수도권의 절반을 차지한다. 2020년에 들어 인구 감소가 매우 크지만 아직은 버틸만한 수준이다. 호남과 충청, 강원을 합친 인구와 맞먹으니 말이다. 면적도 남한의 32%를 차지한다.  수도권의 3배 가까운 큰 면적이다. 경제 규모도 수도권 다음으로 크다. 그러니 큰소리칠만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방 이후 보수 세력의 아성을 자처해왔다. 여러모로 독일의 바이에른 주와 비교가 된다. 그리고 독일의 기사당과는 다르게 박정희의 공화당 이후 줄곧 여당의 노릇을 해오면서 역대 12명의 대통령 가운데 8명이 영남 출신이다. 어설프게 대통령 자리에 있다가 군사 독재자들에게 쫓겨난 윤보선과 최규하, 그리고 북한 출신인 이승만과 호남 출신인 김대중을 제외하면 모조리 영남 출신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른 이재명도 영남 출신이다. 심지어 진보를 대표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영남 출신이다. 그러나 영남이 보수의 보루라고만 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곳에 꼰대만 살고 있다면 어찌 진보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어느 나라나 정치 성향에 진보와 보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 나라의 정치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 정당은 진보 정당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보수 정당이 ‘꼰대’가 되고 지역 정서만 반영하는 순간 그 대표성이 사라지고 만다. 국민의힘의 정체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이 당의 색깔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기사당처럼 철저히 지역적인 영남당인가? 의석수를 보면 그렇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곧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신봉하니 보수적인 경제관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박근혜와 더 나아가 박정희에 대한 매우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데에서 사달이 시작되고 있다. 박정희는 헌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시도하다가 측근의 총을 맞고 죽은 독재자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한국 헌정사에서 최초로 탄핵을 당한 인물이다. 둘 다 법을 어긴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에 대하여 공적과 사면을 운운하는 정서가 국민의힘의 하늘 위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마치 1848년 유럽의 하늘 위를 배회하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나 박근혜를 그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처럼 지역 당파가 아니라 엄연한 전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이 공식적으로 이들을 기리거나 동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범법자를 동조하자면 어쩌자는 것인가? 아무리 지역구가 영남이라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서울 부산 보선에서 당선되었다고 해서 국민이 국민의힘보고 영남당이 되라는 권한을 위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여론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말하지만 국민의힘이 이뻐서 오세훈을 뽑아준 것이 아니다.  

   


대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변변한 대선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과거의 계파 수장들이 군웅할거하는 형국의 국민의힘에서 각자도생 하겠다고 지역 편향적인 색깔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결국 문자 그대로 영남당으로 쪼그라들 날이 올 것이다. 실질적 양당제인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그동안 국민의힘은 사실 거저 보수 세력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남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제3지대가 규합되어 새로운 중도보수정당이라도 출현하게 된다면 국민의힘은 실질적인 영남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는 국민의힘의 지역주의 선전선동에 골몰하는 의원들에게만 이익이 되고 정작 영남에는 큰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권성동의 소탐대실을 따라 할 요량이면 그리 하라. 어차피 정계 개편과 선거 제도를 포함한 정치 개혁이 한 번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마침 이재명과 윤석열과 같은 강력한 대선 후보군이 모두 외인구단이니 정계 개편이 오히려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김종인과 안철수도 정계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니 이들이 정치판을 한 번 크게 흔들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영남은 독일과는 달리 영남당으로 쪼그라들기에는 상황이 다르다. 그러니 국민의힘의 자신의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일부 이기적인 의원들이 수작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안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역주의를 선동하여 자신의 재선에만 골몰하는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을 혁파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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