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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9. 2021

한국도 의원내각제의 선택을 고민할 때인가?

독일 녹색당의 수권 가능성을 보며 생각을 해본다,

최근 독일 슈피겔지(Spiegel)가 의뢰하여 Civey가 2021년 4월 26일 10,0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독일연방의회에서 67석으로 자민당은 물론 극우인 독일을위한선택당과 극좌인 좌파당에도 밀린 6위에 머물고 있는 녹색당이 9월에 있을 총선에서 대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정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아데나워 집권 3기에 단 1차례만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2017년의 19대 총선까지 18개의 정부는 모두 연정 형태로 권력을 분배해 왔다.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하고 그 폐해를 처절히 체험한 독일 국민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독재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독일 녹색당은 1983년 제10차 총선에서 27석을 얻으며 혜성같이 등장하였다. 통일 직후인 1990년에 치러진 제12대 총선에서 겨우 8석을 차지하며 존폐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 이후 꾸준히 50-60석을 차지하여 왔다. 그리고 14대와 15대 정부에서는 사민당과 연정을 이루어 정권을 잡는 경험도 해 보았다.  

    

사실 2017년 총선에서도 녹색당(Grüne)은 지역구에서 단 1석 만을 건졌을 뿐이다. 다만 정당명부제 덕분으로 비례대표를 66명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은 지역구에서는 185석을 거두었지만 비례대표는 15석만 확보하는데 그쳤다. 참고로 사민당(SPD)은 지역구에서 59석을 확보하였으나 비례대표를 94석 확보하여 제2의 정당이 되었다. 그리고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선택당(AfD)의 경우 지역구가 3석에 그쳤으나 비례대표를 91석이나 얻어 제3당이 될 수 있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자민당(FDP)이 지역구에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하였으나 비례대표 의석을 80석이나 확보하여 제4당이 된 것이다. 일당 독재를 철저히 견제하는 독일 선거 제도의 묘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당제를 근간으로 하는 의원내각제의 최대의 장점을 독일 정치가 잘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가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던가? 최고의 달변가인 그는 국민의 아픈 곳을 너무 잘 알고 그곳을 집중 공략하여 독일 민족의 마음을 문자 그대로 샀다. 그는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고 국민이 스스로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단 정권을 장악하자 독재자가 되어 잔인한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국가 운영을 자신의 뜻대로 하였다. 그 결과 독일은 그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패배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빚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언 듯 보면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제가 국민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중영합주의자가 군중심리를 조작할 경우 국민의 이성이 마비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일어났던 현상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쉽게 독재를 낳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실정을 할 경우 탄핵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어려운 탄핵을 한국인은 이루어 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의원내각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단 당이 여러 개가 존재하여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은 좋지만 이 정당들의 종횡패합(縱橫捭闔)으로 정부가 자주 바뀌어 정정의 불안이 가속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더한 정당명부제로 총선 때 부는 바람인 민의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민의가 무엇인가? 민의는 바람이 불기 전에 넘어지고 바람이 그치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다. 곧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며 군중심리에 쉽게 좌우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중우정치가 된다고 경계한 것이다. 



겉으로는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집단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견제 심리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거의 모두가 ‘예!’라고 할 때라도 극 소수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가 참된 민주주의 사회인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이 승자독식이 낳는 독재이기 때문이다. 한 번 제도화된 독재를 타파하는 것보다는 그 독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 아닌가? 최근에 본 대로 미국의 트럼프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독재에 가까운 짓을 해도 그가 일단 대통령이면 천하의 미국 의회라도 막을 길이 없는 것이었다. 여전히 이른바 '민의'가 그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증오를 바탕으로 하는 민의는 참다운 민의가 아니라는 진리를 독일의 히틀러와 미국의 트럼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사유의 원칙에서 마련된 독일의 의원내각제와 정당명부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의 정치의 안정의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독일연방의회의 의원들이 민의를 대변하여 수상을 선출하는 제도는 형식적으로는 간접선거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패러다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사당의 경우 바이에른 주에서는 늘 압승을 거두지만 정당명부제에 걸려 중앙 정부에서는 기민당과 사민당을 넘어서지 못하는 구조 안에서 지역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당의 전횡을 부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29%의 지지를 얻어 24%인 기민당/기사당 연합, 15%를 얻은 사민당, 11%를 얻은 자민당을 압도하고 있다. 이제 연정을 구성할 때 주도권을 녹색당이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독일 국민은 녹색당이 기민당/기사당 연합과의 연정, 그리고 사민당과 좌파당과 연정을 수립하는 것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지지하고 있다. 이 여론조사의 지지율만을 놓고 볼 때 이 두 가지 연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어느 것이든 녹색당이 주도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는 전후 독일 정치를 사실상 ‘지배’해온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몰락을 의미한다. 독일이 의원내각제의 다당제를 유지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당제나 다음 없이 이 두 당이 독일의 정치를 지배해 왔다. 이는 또 다른 의미의 독재다. 국민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양대 정당이 정권을 주거나 받거니 하는 가운데 독재의 최대의 질병인 부패와 무능의 곰팡이가 양대 정당 안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된 것이다. 이를 참고 보지 못한 독일 국민이 2017년 극우 정당에 12.6%의 지지를 보내 경고의 목소리를 이미 보냈다. 그러나 그 이후 대연정으로 위기를 방어한 양대 정당의 행태를 더 이상 못 견딘 독일 국민이 이제는 안정된 대안인 녹색당 카드를 내밀면서 양대 정당의 실질적 독재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도 이승만의 독재에 질린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4.19 민주의거 이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가 의원내각제를 시도한 바가 있다. 그러나 박정희의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독재로 그 싹이 채 피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대통령제가 이어져 오고 있지만 과연 이 제도가 민의를, 특히 소수의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역주의가 공고한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대통령제와 양당제는 분열을 고착화할 뿐이다. 편 가르기와 내로남불의 시대정신이 한국의 정치의 패러다임이 돼버린 지 오래이다. 독일을 보면서 현재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정부도 정치 제도 개혁의 담론을 제기한 상황이니 이제 의원내각제와 정당명부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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