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May 25. 2021

정세균의 ‘장유유서’는 박정희를 떠올린다?

21세기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바른 정치가가 아니다.

정세균이 이준석을 논하는 자리에서 ‘장유유서’를 꺼내 들었다.      


정세균은 1950년생이니 이제 71세다. 그의 이력을 보니 전라도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검정고시와 전주공고를 거쳐 고대 법대에 입학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다. 학생회장을 역임했지만 그 당시 다른 운동권 학생회장과는 달리 ‘별’을 달았다는 경력도 없이 얌전히 졸업하고 나서 중견기업인 쌍용 그룹에서 17년 동안 착실하게 근무하여 상무이사라는 다른 별을 달았다. 장유유서의 정신이 몸에 배일만한 경력이다.     


그런 그가 1995년 느닷없이 정계에 입문하여 이제는 직업 정치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의 주요 정치 경력을 보니 원내부총무, 총재 보좌, 정책위원장, 원내대표, 장관 등등 윗사람을 충실히 모시는 데 주력한 것이 드러난다. 역시 장유유서 정신을 체현할 만한 경력이다.     


이런 경력을 훑어보니 그의 ‘장유유서’ 발언은 실언이 아니다. 이제 나이도 들고 경력도 쌓았으니 그동안 대접만 해온 보상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슨 망언인가? 그것도 이준석을 상대로 말이다.      


장유유서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나이에 따라 순서를 지키자는 것이다. 이는 유교의 오륜 가운데 하나로 가부장제도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500여 년 전 혼란과 무질서가 극에 달하던 중국 춘주 전국 시대의 공부자가 내세운 사상을 제자들이 계승 발전시킨 유교는 실질적으로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중국의 여러 왕조가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유교야 말로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료제도의 확립에 최적화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박정희가 군사독재 철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면서 효만 강조하지 않았던가? 원래 효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자애에 대한 화답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복종만을 강조하며 효의 원 뜻을 망가뜨렸다. 맹자의 정명론을 응용한다면 이미 2300년 전에도 아비답지 않은 아비에게는 아비 대접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군자라는 통치자를 중심으로 확립된 질서만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유교에서 특히 어린 이들과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고 오로지 군주나 가장의 권력 도모를 위한 통치를 받는 도구에 불과했다. 흔히 유교가 인본주의 사상이라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 곧 ‘人’은 지배 계급의 성인 남자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유교 경전에서 정신 훈련에 대하여 장황하게 나열한 도덕적 가르침도 모두 君子 곧 통치자의 덕목일 뿐이다. 유교 어느 구석에도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배려는 눈을 부릅뜨고 유교 경전 전체를 뒤져 보아도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남성중심주의적 사회의 ‘질서 유지’만을 목표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한심한 유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한심한 장유유서를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정세균이 입에 담았다는 사실은 민주당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당장 석고대죄를 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정세균이 왜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는 이제 끝난 것이다.     


정명론과 역성혁명을 주장한 맹자와는 달리 공자는 논어에서 아버지가 도리에 어긋나거나 위법한 일을 했다고 해도 자식의 도리는 얼굴빛을 공손히 하여 세 차례 간언을 하고 그래도 아버지가 뜻을 굽히지 않으면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도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불륜만이 아니라 불법을 저질러도 가장, 사장, 대표, 곧 ‘갑’은 큰소리치며 갑질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가정폭력을 행사해도 아버지이니 견디고 참아야 한다. 자식을 학대해도 아버지이니 다시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자식을 돌려보내야 한다. 남성중심주의적 조직에서 고위직에 있는 자는 불륜과 불법을 저질러도 흔히 무죄 방면된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옳고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한심한 정신이 바로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런 제도가 가져오는 병폐가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고 있다. 가정폭력만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단체에서도 나이와 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개인적 구조적 폭력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 유교적 서열주의이다. 나이, 성별, 학력, 출신 지역으로 철저히 서열을 짓고는 어리고, 여자이고, 지방대 출신이고,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멸시 천대한다. 기가 막힌 것은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출신인 사람들도 그 모양인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도에 편승해서 갑질 하는 것이 그리 좋은 모양이다.     


21세기 한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10대 강국에 들만큼 선진국이 되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어떤 나라가 아직도 가부장제도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장유유서를 내세우는가? 이미 한국의 선진 기업들은 사내 직위 직급 파괴를 시행하고 있는데 어디서 시대착오적인 장유유서를 내세우는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답답해서 정세균의 사주를 찾아보았다.     


O甲丙庚

O辰戌寅 乾命 1大運     


현재 갑오 대운에 들어서 있다. 인성이 전무한 사주이니 부모 공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편재를 능히 다스리니 이재에도 밝을 것이다. 지장간을 보아도 무토가 사령을 하니 평생 편재의 영향을 받을만하다. 그러니 그리 오래 샐러리맨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런데 편관 하나로 정계에 입문할 수 있나? 그래서 대운을 보니 수목으로 달려왔다. 흔히 말하는 대로 운칠기삼을 잘 보여주는 사주이다. 그런데 이제 더구나 화운이 들어온다. 원래 갑목이 병화를 보면 출세하는 법이니 사주 원국이 좋다. 게다가 화가 들어오니 최고의 운이다. 


운이 좋아지면 보통 사람들은 기고만장해진다. 뭘 해도 잘 되니 말이다. 그러나 유교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정도는 잘 알 것이다. 그러니 그럴수록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의 제1덕목인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정도 사주 원국과 운이라면 앞으로도 잘 풀릴 것이다. 그럴수록 구설수에 얽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장유유서’는 일과성의 실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사주와 운이 아깝지 않은가?   


사회 질서 유지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존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그 존중과 존경은 반드시 상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수직적이거나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권위가 있는 인물이 되고 싶은 자는 반드시 상대방의  자발적인 동의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힘에 세다고 상대방에게 존경을 강요하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이다. 그리고 이 권위주의에서 갑질이 나오고 남성중심주의가 나오고 가부장제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존경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가 인격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어야 한다. 돈과 권력과 나이와 성별과 종교와 사상은 여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이미 1948년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나이로 서열을 따질 수 있다는 말인가?  꼰대냐 어른이냐는 나이든 사람이 하기에 달려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한예슬의 남친과 후안 페론의 아내들의 비교가 가능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