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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y 24. 2021

한예슬의 남친과 후안 페론의 아내들의 비교가 가능한가?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관한 가세연의 횡포를 논박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한예슬이 자신보다 10살이 어린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세간에 알리자마자 강용석의 가세연이 그 남자의 ‘정체’를 밝혔다. 가세연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이른바 ‘비스트보이’라는 것이다. 그 진실 여부를 떠나 이는 황색 저널리즘의 극치를 달리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강용석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하자.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21세기에 들어서 자신의 성적 파트너의 선택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르는 사적 영역의 기본권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사귐에서 그 어떤 인종이나 종교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신분’을 걸고넘어질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강용석은 황색 저널리즘의 잣대로 대중의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여 조회 수를 올리고자 하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은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성문제, 특히 여성 연예인의 이성 문제에 비이상적으로 과민 반응하는 계층이 사회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한예슬을 둘러싼 잡음을 보면서 문득 후안 페론의 두 아내가 떠오른다. 세간에는 그의 둘째 부인인 에바 페론이 더 잘 알려져 있다. 흔히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그는 부유한 농장 주인인 후안 두아테르의 첩의 딸로 태어나 기구한 삶을 살다가 연예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마침내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의 둘째 아내가 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들의 나이 차이는 24살이었다.


그리고 후안 페론이 대통령 후보에 나서자 바 페론은 그 미모와 말솜씨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남편이 1946년 마침내 아르헨티나 제29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자신의 기구한 삶을 기억한 에바 페론은 빈민 구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성해방운동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51년 남편의 재선에 공을 세웠으나 자궁암으로 고생하던 바 페론은 그다음 해 3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빈부 격차 축소를 위한 노력과 국민들의 사랑은 아르헨티나에서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에바 페론보다는 그의 다음으로 후안 페론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고, 남편 사후에 아르헨티나의 42대 대통령으로 즉위한 이사벨 페론이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불 수 있다. 이사벨 페론은 극빈층에서 태어나 역시 연예계에 진출한 다음 후안 페론보다 36살이나 어린 나이로 그의 비서로 일하다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후 후안 페론이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비록 1976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으나 2년 동안 대통령으로 일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기록을 당당히 남겼다.


아르헨티나는 1542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다가 1816년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16년 첫 자유선거가 실시되고 사회적 경제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1946년 후안 페론이 집권하면서 남미에서 최초로 사회 복지 제도의 정착과 참정권을 중심으로 한 여권 신장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빈민 구제와 여권 신장은 전적으로 에바 페론의 공적이었다. 에바 페론의 정치적 무게는 그의 사후에 일어난 군부의 쿠데타가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사회 통합의 구심점이 되었던 에바 페론의 사망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그러나 군부 세력의 권력은 흔들리고 이를 틈탄 후안 페론의 41대 대통령으로서의 재집권은 이사벨 페론을 정치의 중심부로 이끌게 되었다. 비록 이사벨 페론이 1976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였으나 그의 중요성은 군사 독재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중화학 공업 육성과 자본과 무역 자유화로 아르헨티나 경제와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리면서 역설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정치와 법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두 여성이 아르헨티나의 정치 역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페론 집권기에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와 빈곤율이 최저로 떨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군사독재 기간에 군부가 저지른 만행에서도 페론 정권의 치적이 역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러한 후안 페론의 역사적 평가에는 반드시 그의 두 아내의 공적이 연관된다. 그만큼 에바 페론과 이사벨 페론의 정치력은 현대 아르헨티나 정치사에 강력하게 미쳤다.


과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에바와 이사벨 페론의 이른바 ‘출신 성분’을 문제 삼았다면 후안 페론의 페로니즘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능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능력이 국민을 위하여 행사될 수 있다면 비록 천출(賤出)이면 어떤가?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아니 더 길게는 신라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골품제적 집단의식은 한국의 일반 시민들의 머릿속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남의 연애도 ‘출신 성분’으로 문제를 삼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사실 더 문제는 법적인 배우자가 있는 데도 다른 여자나 남자를 ‘건드리는 것’이 더 문제 아닌가? 더구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불법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정치계나 법조계의 인물들이 그런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뻔뻔하게 법적 절차의 잘잘못을 따지며 후안무치하게 나서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연예계와 정치계는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세계이다. 그리고 대중이 매우 친숙한 듯이 생각하지만 사실 그 내부는 잘 모르는 것이 또한 연예계와 정치계이다. 그래서 이른바 ‘카더라 통신’에서 나오는 ‘가짜 뉴스’가 가장 범람하는 세계가 연예계와 정치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러한 소문에 경도되는 수요층이 두터운 사회에서는 한예슬의 남자 친구에 관한 소문이 관음증을 조장하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권력이 막강한 정치가에 비해 힘이 없는 연예인, 특히 여성 연예인이니 말이다. 한예슬은 미혼 여성이다. 그가 어떤 ‘계층’의 남자와 사귀든 그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라 존중되어야 할 일이다. 유부녀가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유흥업소에서 불법적으로 매음을 한 것도 아니다. 10살 연하면 어떻고 후안 페론처럼 35살 연하면 어떻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가세연에서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불륜관계에 있던 김미나와 공모해 사문서를 위조한 죄로 법정 구속까지 당했던 강용석이 말이다. 아무리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해도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켜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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