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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un 04. 2021

'조국의 시간과 이준석 현상의 시대정신'이 어떻다고?

윤평중을 앞세운 조선일보의 윤석열 밀기  선전선동에 이제 화도 안 난다

윤평중이 ‘조국의 시간과 이준석 현상의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을 글을 조선일보에 실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기묘묘해서 한 자 적어본다. 

    

윤평중이 누구인가? 1956년 생으로 한국의 고려대학교와 미국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1989년부터 한신대 철학과에서 밥벌이를 해왔다. 그러면서 원래 진보의 산실이던 한신대의 ‘정신’과는 다르게 이른바 자칭 보수 논객의 길을 걸어왔다. 사상도 중요하지만 역시 밥은 먹어야 하는 노릇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도 원고료 두둑이 주는 조선일보에 열심이 글을 올리고 있다.  

   

이번 글에서도 그는 조선일보 사주와 편집장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조국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막말을 하면서 말이다.     


“조국은 자신이 쏟아낸 거짓말과 내로남불로 쌓은 ‘조만대장경’ 앞에서도 태연자약하다.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는 1심 법원에서 범죄 혐의 총 15가지 중 10가지를 유죄로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조국 자신도 11가지 혐의로 재판받고 있지만 순교자 연기(演技)에 지칠 줄 모른다. 불세출의 뻔뻔함과 음흉함을 화사한 낯빛으로 분장해 ‘순결한 정의의 사도 이미지’(不厚不黑·불후불흑)를 연출한 후흑의 최고봉이다. 열광적 추종자들은 이런 조국에게 환호한다. 그 대가는 총체적 재앙이었다. 불의가 정의를 겁박하고 선악이 뒤집히는 집단 착란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중국의 학자도 거들먹거리고 있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뻔뻔함과 음흉함’(面厚心黑·면후심흑)을 난세의 통치술로 설파했다. 조국 회고록 ‘조국의 시간’은 절정(絶頂)의 후흑학을 증언하는 기념비적 보고서다.”    

 

미국서 미국식 정치 철학을 배우고 온 줄 알았더니 어느 사이 중국도 다녀온 모양이다. 그 박학다식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각설하고...     


그러면서 이른바 ‘이준석 열풍’의 책임이 조국에 있단다. 음... 이런 논리를 뭐라고 하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윤평중은 여기에서 귀납법을 사용하면서 단 하나의 사례를 들고 나오면서 보편적 결론을 내리는 신공을 보이고 있다. 대단한 철학자의 식견인가 보다. 그러더니 역시 서양철학자답게 헤겔도 인용한다.  

   

“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반동적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오는 아이러니를 ‘역사의 간지(奸智)’라고 불렀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미국에서 독일 철학자인 헤겔의 역사철학을 깊이 연구한 모양이다. 영어로 완전히 번역된 것이 아직도 없는 상황에서 독일어로 정독을 하고 연구를 한 모양이다. 정말로 그의 박학다식함 앞에서 모자를 벗고 싶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헤겔이 말했다는 ‘역사적 간지’라는 것이 있고 이런 식으로도 해석이 되다니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788년 튜빙엔대학교에 입학하여 5년 동안 공부한 헤겔과 먼 동문인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을 윤평중이 이리도 간결하게 해설해주니 말이다. 국제 헤겔학회에 연락하여 그의 이름을 ‘날릴’ 또는 ‘날려버릴’ 기회를 주고 싶을 정도이다.   

   

헤겔은 '역사의 간지'를 말한 적이 없다. 그가 말한 것은 정확히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이다. 그리고 이는 ‘반동적 개인의 뒤틀린 욕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의 간지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개인의 관심과 열정을 이성의 목적, 곧 세계정신(Weltgeist)의 의지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유도하는 일종의 계략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이성은 영웅들의 관심과 열정을 활용한다. 세계정신의 완성은 이성을 그 정점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반동적 개인의 뒤틀린 욕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매우 긍정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헤겔이 1822년 1828년 1830년에 각각 베를린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취합한 책인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에 나와 있다.     


물론 조선일보가 워낙 견강부회와 거두절미를 일삼으며 왜곡과 인신공격을 일삼는 기레기들이 모인 찌라시 수준의 저질 신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니 이따위 왜곡은 이제 우습지도 않은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어도 교수는 사기는 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고액 원고료가 탐난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윤평중이 이런저런 외국의 저명한 학자를 들먹이기에 뭐 거창한 결론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론이 가관이다.    

 

“박근혜·문재인의 처참한 대(大)실패로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적대적 공존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았다. 윤석열처럼 이준석의 비전도 여물지 않았고 비르투(virtu·능력)도 검증 단계다. 하지만 보수·진보 간 적대적 공생의 시효(時效)가 끝난 공간엔 폭발적 정치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이준석 돌풍은 민주를 넘어 유능한 공화(共和)의 시대를 알리는 섬광(閃光)이다. 조국의 시간을 타고 날아오른 이준석 현상이 태풍으로 커지고 있다. 진보·보수 앙시앵레짐(구체제)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다.”    

 

이 뭔 멍멍 소리인가?     


문제인 대통령을 박근혜와 하나로 묶어 놓고는 처참한 대실패를 했단다. 아직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9개월이나 남아 있는데 이미 그 결론이 보이나 보다. 철학 공부하러 미국만 간 것이 아니라 점을 배우러 미아리 고개도 들락거렸나 보다. 하긴 미아리 점집들은 고려대에서 한 걸음에 달려갈 거리에 있는 것 아니던가? 그러더니 갑자기 ‘공간에 폭발적 에너지’가 흘러넘친단다. 이건 뭐 최순실이 모은 그 어마어마한 ‘우주의 기’를  찜 쪄 먹는 소리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능한 공화의 시대를 알리는 섬광’이 보인단다. 이제는 예언자들의 전매특허인 환시의 능력까지 보유한 모양이다.      


아! 이래서 조선일보가 버티나 보다. 이미 기레기들의 찌라시로 전락하여 휴지로도 사용을 하기 어려운 조선일보가 이런 최순실을 능가하고 신천지를 능가하는 신공을 지닌 자들의 글로 연명하나 보다.     


참으로 애잔하다...    

 

어디 정말로 두고 보자 윤석열과 이준석이 어떤 에너지를 흘러넘치게 하는지. 그래서 최순실을 능가하는 ‘우주의 기’를 모아 ‘유능한 공화의 시대를 알리는 섬광’으로 우리 국민들의 눈을 얼마나 멀게 하는지. 꼭 지켜볼 일이다. 


조선일보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싶은 모양인가 보다. 그러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말고는 문자 그대로 시대정신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은 헤겔의 논리를 따르자면 세계정신의 뜻을 실현하는 과정에 드러나는 것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고 그것을 조선일보와 같은 찌라시가 밀어준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틀러가 여론을 기만하고 괴벨스가 선전선동을 하여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당시 독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언론 독재 덕분이었다. 곧 소수의 친 독재 언론이 선전선동을 통하여 진실을 왜곡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글과 영상으로 민중의 현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 그럴 일은 없다. 소셜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개인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시대에 조선일보 정도의 공력으로 그 모든 정보에 대한 gatekeeping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저 자기 패거리들과 주거니 받거니 근친상간적인 놀음에 몰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참으로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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