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Jun 17. 2021

윤석열이 원하는 것은 꽃가마라고?

윤석열이 당장 필요한 것은 논술이다.

이준석과 윤석열이 버스와 택시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더니 급기야 윤석열이 ‘나는 내 갈길 간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언제나처럼 스스로는 말을 삼가고 이른바 대변인인 이동훈의 입을 빌려 ‘국민을 통합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정치만 생각하겠다. 여야의 협공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을 것’이란다. ‘국민 통합’, ‘국가적 과제 해결’, ‘큰 정치’ 이런 거대 담론이 자신의 ‘격’에 맞는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데 그 길이 지평선 저 너머에 있는지 아님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 옆의 새로 난 ‘성찰의 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신비주의의 약발이 이른바 ‘김대중 도서관 방명록’ 사건으로 한 방에 날아가 버렸으니 더욱 몸조심 모드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앞으로 공개적인 행보가 거듭될수록 실수, 아니 실체가 더 드러날 것이 너무 뻔하다. 그것을 윤석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이니 몸조심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통령 선거가 3월이니 딱 10개월 남았다. 신비주의로 버티기에는 시간이 없다. 물론 이준석에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현시점에서 국민의힘에 평당원으로 입당하는 것은 영 위신이 서지 않는다. 학력으로나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이준석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윤석열이 이준석 당대표님 앞에서 어찌 고개를 숙인단 말인가? 이준석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자기를 모셔 와야 될 것 아닌가? 그런데 스스로 알아서 평당원으로 들어오라고? 평생 영감님 소리를 들은 윤석열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리 오너라!’,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한 번 호통을 치면 다들 알아서 설설 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윤석열을 위해 꽃가마를 대령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윤석열이 이해하는 세상의 이치가 아니란 말이다. 그리 살아온 윤석열이 여당은 물론 야당의 행보를 보면 괘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제 검사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고 일개 평민이다. 평생 정해진 법에 따라 범죄 수사와 공소의 제기와 유지를 하는 ‘기술자’로 살아온 그가 하루아침에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치인은 법을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정당에 몸을 담고 선출직 관리가 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그래서 정치가는 경청하는 능력과 더불어 언변이 뛰어나야 한다. 상대방, 더 나아가 국민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운 말로 의사소통이라고 한다.


검사는 문자 그대로 국민의 극히 일부인 범죄자들만을 상대하며 일방적으로 호령만 해온 그가 쌍방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언제까지 대리자들을 내세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통고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내 갈길’ 간단다. 도대체 뭔 길일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검사의 길 밖에 없는데 뭔 새로운 갈 길이 있을까?   

  

언론 보도를 보니 여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MZ세대를 겨냥한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한단다. 그것도 현재로서는 이재명과 상대가 안 되는 군소 후보가 말이다. 이낙연은 청년들과 롤 게임을 하고, 정세균은 힙합 차림으로 틱톡에 나오고, 박용진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댄스를 춘다. 그리고 최문순은 신인가수 ‘최메기’라는 ‘부캐’(부캐릭터)를 만들었단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수구 언론의 기레기는 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리기에 혈안이다. 20-30대의 의견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만을 보도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정치가이다. 남들이 보기에 우습기 짝이 없고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존심, 체면 다 버리는 것이 정치가이다. 군소 후보라서 당선 가능성이 없어도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눈물 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가이다. 그래서 아무리 욕을 먹어도 선거철이 되면 시장에 가서 순대도 먹고 떡볶이도 먹는다. 언론에서 아무리 쇼하지 말라는 욕을 먹어도 말이다. 그런 것이 쇼라는 것을 정치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한다. 그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높은 곳에서 여전히 자신이 포청천 정도 되는 줄 알고 ‘네 이놈!’이나 외치는 것은 정치가가 아니라 몽상가나 망상가이다.     


윤석열과 이준석 효과가 각각 방명록 사건으로 한 방에 가버리는 모습을 보고 여당에서는 은밀히 안심하는 분위기가 보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다. 정치판은 원래 더럽다. 부정부패가 넘쳐서도 더럽지만,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바닥을 기어야만 살아남는 곳이기에 더러운 곳이다. 그런 곳에 어쭙잖게 이회창 같은 판관 ‘영감님’이나 안철수 같은 의사 ‘선생님’이 기웃거리다가 이미 문자 그대로 박살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윤석열이 만약 정치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내길’이 아니라 ‘네 길’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의 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똘똘 몽친 ‘ego’를 버리고 자신을 타자화 하는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 범죄자들 다루기는 쉽다. 어차피 이기는 승부이니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 된다. 그러나 국민과 소통하고 정적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정치는 대의를 위하여 고집을 버릴 줄 아는 소양을 요구한다.  

   

유감스럽게도 윤석열이 지금까지 걸어온 ‘내길’에서는 그런 소양의 흔적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다. 오죽 답답하면 조선일보를 포함한 여러 수구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윤석열에서 ‘이제는 그만 나와라’ 하고 외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협공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을 것’이란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국민을 통합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정치만 생각하겠다.’고 하니 뭔 말인가? ‘지평선’과 ‘성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논리적 사고의 능력도 부족한가 보다. 소통을 안 하겠지만 ‘국민을 통합’한단다. 여야의 의견 제시는 ‘협공’으로 여겨 일절 대응 안 하고 혼자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겠단다. 그리고 정당 정치라는 ‘작은 정치’는 안 하고 ‘큰 정치’만 한단다.      


지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열심히 이른바 ‘대권 공부’를 한다는데 그보다는 한글 공부, 특히 논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가 언론을 상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보나 마나 수사학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 근데 10개월 안에 그것을 다 배울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마 대권도 9수 정도는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럼 합격증이 나올까?


그나저나 이준석이 큰소리친, 그 유명한 제갈공명이 조자룡에게 주었다는 錦囊妙計, 곧  3개의 비단 주머니는 언제 풀어보나? 아니 아직 안 건네주었나? 아님 짝퉁이라 체통에 안 맞나? 궁금한 것이 왜 이리 많을까?

작가의 이전글 이준석이 몰아낸 것이 꼰대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