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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un 29. 2021

윤석열의 이른바 ‘대선 출마 선언문’을 비판한다

일부 민중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선전 선동가의 작태를 멈추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뭐 대단한 ‘변’이 나올 줄 알고 잔뜩 기대한 내가 바보인가 보다. 너무나 실망스러워 글을 안 쓰려고 했지만, 윤석열에게 몇 가지 가르쳐 주고자 써본다.     


일단 그 선언문 전체는 온갖 잡탕의 개념이 범벅되어 있지만 결론은 현재 이 사회에서 분노하는 이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선전선동을 해보겠다는 저의가 너무나 뻔히 보인다. 누가 이 글의 초안을 만들고 다듬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지적되어온 아마추어리즘의 바운더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준석은 이제 겨우 이립(而立)을 넘어 불혹(不惑)을 한 참 남겨 나이라도 어리니 치기를 부려도 용서가 되지만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난 윤석열이 20대의 흔한 ‘분기탱천’의 논조를 이어간다는 것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60대가 20대의 어조를 사용한다고 신선해 보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야권에서 정치 활동을 할 경우에 무조건 여권을 비난하고 보는 것이 고리타분한 전략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이 ‘선언문’은 비난만 담겨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나면 상대방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계획과 전망을 제시해야 하다. ‘지평선’이 아니라 ‘지평’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지평’은 커녕 ‘지평선’도 안 보인다.     


이 글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자.     


서두에서 전준영, 이찬호, 마포의 자영업자를 내세운다. 이들을 국가가 내팽개치고 희생만 요구했단다.      


그래서 정말인가 하여 검색을 해보았다.      


전준영은 이제 34살로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이다. 천안함 사건 때 전사한 46명은 모두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다. 생존 장병 58명 가운데 24명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이 중 12명이 인정을 받아 연금을 받고 있다. 20대의 이찬호는 2017년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장애를 입었다. 그 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유공자 연금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름을 밝히기 힘든 마포의 자영업자는 자격이 된다면 이번에도 작년에 이어 4차에 이르는 국가의 지원금을 받을 것이다. 그것도 국민 전체가 낸 세금을 아껴 모은 돈으로 자영업자에게만 주는 ‘특혜’에 가까운 돈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싸잡아서 이들을 ‘국가가 내팽개치고’ 있다는 막말을 한다. 뭐 ‘선언문’이니 서두를 강하게 치고 나가자는 강박관념이 있으리라. 그러나 너무 치졸하지 않은가? 60을 넘긴 자가 겨우 20-30대 젊은이들의 분노나 이용하자고 들다니. 좀 그러지 말자. 대권을 노린다면 좀 통이 커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아마추어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일단 넘겨본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더 가관이다.      


자기는 국민의 상식에서 출발하여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단다.     


자유민주주의, 법치, 공정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켕기나 보다. 그다음 글에서 정부를 한참 욕하는 글을 이어가더니 다음과 같이 한 마디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승자를 위한 것이고 그 이외의 사람은 도외시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에도 종류가 있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있으니 ‘억압민주주의’도 있나?      


자유민주주의는 외래 개념이다. 영어로 liberal democracy다. 그런데 이 liberal은 윤석열이 이 ‘선언문’에서 이를 설명하면서 말한 자유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글로는 다 같이 자유로 번역되지만 서양의 사상사에서 자유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하나는 liberty이고 또 하나는 freedom이다. 이 두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liberty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개념과 관련된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Statue of Liberty이다. 영국의 귀족들의 억압에서 해방된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liberation은 liberty와 늘 함께 사용된다.


그러나 freedom은 신이나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근원적인 자유이다. 이는 인간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 종속되기 이전에 태생적으로 지닌 가치이기에 그 누구도 손상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대한제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지만 그 본질적 자유를 빼앗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신이 고스란히 간직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일제의 불법 부당한 침탈에서 벗어났기에 8월 15일 광복절을 영어로는 Liberation Day로 표기하는 것이다. 일제의 만행에서 '벗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이 두 개념의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     


“인간은 본래 모두 평등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고 모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서양 사상에서 freedom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짜장이 뭔지 짬뽕이 뭔지 모르면서 뒤죽박죽으로 개념을 혼용해 쓰고 있다. 국민이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liberty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중세 귀족들의 독점 권력에 맞선 신흥 부르주아들이 내세운 것이 바로 liberty이다. 곧 자기들이 맘대로 돈을 벌고 맘대로 살겠으니 귀족들은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다. 귀족들의 간섭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세 귀족이 몰락하니 자본가들이 그 귀족의 특권적 자리를 차지하여 독점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을 투자하여 잉여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10살 먹은 어린이를 탄광에 밀어 넣어 하루 종일 착취하는 것도 자본가들의 liberty였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면서 긁어모은 돈으로 룸살롱에 가서 창녀들과 놀아나도 고용주의 liberty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집단의식에서도 돈이 최고라는 사상을 심어주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미친 생각 말이다.      


이러한 liberty,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결합된 liberty는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 곧 freedom을 파괴하는 사악한 것이다. 자본가들의 맹목적인 독점적 이윤 추구는 극소수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와 향락적 물질 소비의 liberty는 보장하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인간들의 근원적인 행복추구의 권리의 근간이 되는 freedom은 파괴하는 것이다.  


유럽에는 아예 이 소수 자본가를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파가 있다. 독일의 경우 정당 이름 자체가 자유민주당, 곧 자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FDP)이다. 유럽연합 의회 차원에도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있다. 그런데 이는 앞에서 말한 대로 극소수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독일 자민당의 경우도 1948년 독일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이나 독일사회민주당(SPD)과 같은 다수당에 붙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박쥐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1955년 창당된 일본의 자민당의 경우이다. 이 당의 영문 표기는 물론 'Liberal Democratic Party'이다. 일본 사회당의 세력 강화에 위기를 느낀 미국이 CIA를 동원하여 1954년부터 1964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일본 자민당에 자금을 대며 그 세력을 키운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이른바 반공주의를 명분으로 말이다. 사실 반공주의는 미국 이익 중심주의와 동일한 말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을 양극으로 벌어진 냉전은 1990년 구소련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더 이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하는 국가 이기주의의 대결장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오늘날에도 일본이 여전히 아시아에서 미국 이익 수호의 철저한 앞잡이가 된 것은 바로 이 잘난 친미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자민당의 '혁혁한 공로'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일본의 수상이 미국 대통령은 물론 그 아래의 정치가들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고 애완견처럼 헐떡이는 이유는 단지 패전국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종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아직 미국으로부터 해방(liberation)이 되지 못한 식민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일본제국시대의 이념인 충효(忠孝)의 정신이 21세기 일본에 그대로 살아있으니 말이다. 한번 미국에 충성하면 영원히 충성하는 나라 아닌가? 일본을 이끄는 당의 명칭인 자민당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본 자민당의 짝퉁 사상을 주장하는 친일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잘못 내세우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대한민국을 일본의 짝퉁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앞잡이요 애완견인 일본과는 전혀 다른 국격의 나라이다. 단일민족으로 시작하여 수천 년 동안 그 정체성을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해온 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 된다. 강력한 민족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조차도 서기 70년부터 1948년까지 국가 없이 디아스포라(diaspora)로 근근이 버텨왔다. 대한민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친일 매국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결국 미국만의 국익 증진,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극소수의 대자본가들의 탐욕 충족을 궁극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겠다고? 미친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이나 앞잡이가 될 수 없는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국익이야 말로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되어야 할 뿐이다. 그런데도 일부 극단 세력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마치 신성불가침한 가치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이데올로기는 쓸모없는 도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친미냐 반미냐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가 참된 잣대이다. 그럼에도 일부 불순 세력은 친미 아니면 나라 망할 듯이 광분하며 국론 분열에 혈안이 되고 있다. 마치 일본처럼 미국의 애완견이 되는 것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결코 일본이 아니다. 이승만과 그 뒤를 이은 군사독재 정권이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인 충효((忠孝)를 앞세워 일제 강점기의 정신을 계승하던 시대는 이제 갔다. 그럼에도 이 구 시대의 잔재는 끈질기게 남아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웅숭그리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것이다.


창고로 독일의 헌법에 나온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그냥 자본주의도 아니다. 독일에서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이다. 중세 귀족의 몰락 이후 고삐 풀린 말처럼 극단적인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천박한 물신주의에 빠진 자본가들의 사회적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른바 '순수' 사회주의도 아니며 '순수' 자본주의도 아닌 독일식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민족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독일 실정에 맞게 토착화하여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독일은 1949년 이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어 왔고 2008년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천민자본주의가 일으킨 금융위기도 성공적으로 극복하였고 2019년 말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어진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독일 실정에 맞도록 그 어떤 이데올로기라도 토착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헌법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Eigentum verpflichtet. Sein Gebrauch soll zugleich dem Wohle der Allgemeinheit dienen.

(독일 헌법 제14조 2항)


직역해본다.


(사유) 재산에는 의무가 따른다. 재산의 사용은 반드시 공공의 복리에 기여해야 한다.


일부 신자유주의에 물든 타락한 자본가들이 주장하듯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것'이 선진 자본주의가 아니란 말이다. 참다운 자본주의는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둔 이윤 추구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천박한 자본가들은 중세 귀족의 억압에서 벗어난 이후 정작 자신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이를 간파한 현명한 독일 정부는 자본가들의 사회적 책임을 헌법에 규정해 버린 것이다. 과연 극소수인 자본가들의 liberty가 중요한가 아니면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의 freedom이 중요한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독일 국민과 독일 정부는 이미 1948년에 정답을 내놓았다.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미국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경도된 몰지각한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 미쳐 날뛰며 국민들을 뻔뻔하게 속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윤석열은 그에 맞추어 변죽을 울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경도된 세력이 이 자유의 개념을 가지고 장난하면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국민들의 freedom이지 일부 극소수 자본자들과 권력자들의 liberty가 아닌 것이다.


윤석열은 정말 이를 모르고 함부로 떠들고 있는 것인가? 만약 모른다면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반성하고 입 닥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법을 알고 양심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해괴망측한 해석을 하다 말더니 갑자기 기술혁명을 논한다. 게다가 그 내용을 보니 초딩 수준의 상식적인 워딩이다. 논술 학원을 잘못 다닌 학생이 여기저기 남의 이야기 긁어모아 자기 글인 척하는 모양새이다. 그래서 이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런저런 주제를 다 끌어 모아 비빔밥도 아닌 잡탕을 만들더니 결론에 가서 느닷없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정권교체’란다. 이게 논리인가? 수능을 다시 봐야 할 수준인 것 같다. 아님 적어도 논술 학원을 다시 다니든지.


한국이 대통령 중심제이니 대통령이 바뀌면 정권이 바뀌는 것은 맞다. 그러나 국회를 이미 강력한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야 말로 독재자적 사고방식 아닌가? 정권이 대통령 혼자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니.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삼권분립 정신을 어찌 까먹었는단 말인가? 아님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나? 그 무지몽매 또는 막무가내에 기가 막힐 뿐이다.


서울 시장이 오세훈으로 바뀐다고 해서 서울 시정이 그 마음대로 되나? 지금 시장 당선된 지 거의 3달이 되어가지만 오세훈이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0년 동안 와신상담한 오세훈이다. 인생의 쓴맛을 본 그가 한껏 고개 숙이고 서울시의회와 협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 그래서 서울시장이라는 권좌의 주인이 교체되었지만 서울 시정은 여전히 'business as usual'이다.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시장이나 대통령이 단독으로 정치를 맘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더구나 법치 국가라면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윤석열은 정권 교체가 안 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전선동이나 하고 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보여줄 새로운 나라의 ‘지평선’ 아닌 ‘지평’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말이다.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논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조상님들의 말씀을 새삼 가슴에 새겨보는 오후이다. 너무 실망이다. 수십 년 검사로 일한 사람의 문장의 논리력이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좀 더 센 거를 보여 달라. 윤석열!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제발!  차라리 같은 날 발표된 홍준표의 '출사표'가 훨씬 더 돋보인다. 좀 보고 배워라! 모르면 배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마치 수능 보듯이 3개월 속성 과외로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준석이 능력주의로 나가겠다더니 윤석열은 3개월 만에 대통령 되는 신공이라도 보여줄 모양이다. 국민이 그리도 우스운가?  아무래도 윤석열은 사시를 9수 만에 합격한 이력을 거울삼아 대선도 9수는 해야 제대로 해낼 모양새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5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대선은 대입이나 사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차대한 일이니 그 정도의 공은 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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